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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하신 것을 후회하십니까

불편하지만 솔직한 나의 마음을 고백한다

by 크레이지고구마

2024년 11월


입양하신 것을 후회하십니까?

네... 후회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파양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오!


이 질문은,

봄이가 사춘기의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

잔잔한 파도를 맞아대고 있을 때인,

2년 전 10월 마지막 날에 쓴 메모였는데

며칠 전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2년 전엔 내가 왜 저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는 사실은 저 질문에 대한 답이

2년 사이 두세 번 바뀌었다는 것이다.



봄이의 사춘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는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봄이가 상담선생님께 했던 말은, 정말 의외였다.


“내가 이 가족에 맞추어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이제 나는 이 가족에게 맞추어서 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나답게 살 거예요! “


그 이후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고,

봄이가 말한, 나답게 살아가기가 시작되었다.


중학생이 된 봄이는,

내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었고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잦은 지각과 결과, 결석과 무단조퇴 그리고 거짓말들.

가출, 흡연, 음주. 나를 향한 욕설.

나는 그 어느 것 하나 허용할 수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10시까지 집에 온다던 봄이는 점점 귀가가 늦어졌고,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였다.

친구집에서 잠을 자는 날도 있었지만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며 노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았다.


정말 무서운 시간들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출신고를 했고,

봄이를 찾는 날도 있었고, 찾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봄이의 가출은 처음에는 하루였다가,

이틀이 되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나가기를 일 년 동안 여러 번 반복하였고,

그때마다 나는 정말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다.


봄이는 며칠을 친구집에서 지내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이 아프면 집으로 돌아왔고,

그럴 때면 나는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다시는 나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밥을 정성껏 해 먹였고,

마음껏 자게 놔두고,

한약을 먹여 체력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봄이가 이런 나의 마음과 정성을 알아주고서

다시는 가출하는 일이 없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몸이 회복이 되면 봄이는 또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반년 이상 이런 생활을 반복하였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아주 나쁜 생각이지만,

뉴스에서 사망사고 소식이 들리면,

그 대상이 차라리 나였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

아니면 집을 나가 있는 봄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평온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우리 집의 상황을 잘 아는 이성적인 친구 한 명과

우리 부모님과 남동생이 파양을 권하였다.


우리 엄마는 딸을 잃고 싶지 않다고 하였고,

지윤이는 엄마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파양을 권할 때쯤, 봄이도 말했다.

”이 집이 너무 싫어.

이게 무슨 가족이야.

엄마아빠오빠가 내 가족이라는 게 너무 싫어.

이 가족이랑 함께 있느니 쉼터로 가서 살래.

나를 버려줘.

제발 나를 버려줘. “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닌 ‘이 가족’이라는 말이 계속 남아서

내 마음을 멍들게 했다.


온 세상의 검은색이 나에게 모여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혼자 놓여있는 것 같았다.

헷갈렸다.

자신을 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버려달라는 딸.

봄이는 여러 번 이와 같이 이야기했고,

너무 진심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봄이는 정말 우리에게서 분리를 원하는 것 같이 느껴졌고,

파양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알아보았다.

하지만 파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파양은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안 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였다.

나를 위해서였다.


봄이의 일탈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 다시 심해지고 잦아들기를 반복하였고,

여전히 나도 흔들리며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안된다고 해도,

봄이는 그냥 저질러버렸고,

이제 나의 생각과 말은 중요하지 않구나!

라고 생각할 무렵,

모든 것을 내려놓아버렸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일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가서 들어오면 좋고,

안 들어오면 어쩔 수 없고,

봄이에게 내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나쁜 일이 생겨도

이젠 정말 어쩔 수 없으며,

사고나 부고소식이 들려도 이젠 정말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에 들어오면 먹이고 재워주고,

최대한 집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안 나가면 좋지만 나가서 안 들어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큰 사고나 나쁜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예전에는 봄이가 무사히 돌아오고 정신 차리기를 기도했는데,

지금은 봄이를 지켜달라고,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나는 조금씩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내가 조금 편안해지기 시작하고 나서,

봄이가 한창 사춘기 바다 한가운데에 있을 때,

봄이 혼자서 그 폭풍우에 흔들리고 막아내다 쓰러지며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 학교 선생님들과 경찰들 전부

봄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비난했다.


봄이는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다.


봄이 말대로, 봄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외롭게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봄이는 중3이 되면서, 조금 달라졌다.

이사로 인해 환경이 바뀌었으며,

경찰은 우리 가족의 봄이를 향한 꾸준한 노력을 보며 우범소년제도를 법원에 신청해 주어

봄이는 단기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그 또한 봄이의 행동을 제한해주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봄이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함께 눈물을 흘렸던 그날 이후,

봄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봄이는 사춘기 바다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다.

우리 가족과 주변인들은 봄이 편이 되어

열심히 응원과 기도 중이다.


봄이는 그 기대를 다 느끼고 있다는 듯이,

웃음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작년에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고,

앞으로 더 잘해나가겠다고 매일 결심을 이야기한다.


이 얘기를 듣는데 내 얼굴도 마음도 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내가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해서 미안해.

나와 다른 너의 시간들을 함께하며 응원할게. “


이제 나는 봄이를 입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입양을 후회했던 시간과 파양을 고민했던 시간들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 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본 것 같아서

비참했고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내려간 깊이만큼 다시 올라오면서

내가 조금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기 때 봄이를 사랑했던 것과 다르게

온 마음을 다해 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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