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아이 - 소설

푸른이는 푸른 아이야. 물론 난 푸른일 잘 모르지만, 걔가 반드시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어. 이건 그저, 네가 언제나 흘러내릴 거 같은 푸른 물방울 머릴 기르고 다니기 때문만은 아니야. 나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세상이 단순한 이유도 마찬가지고. 분명 푸른인 잘못 생각하고 있어! 좋은 사람도 잘못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근데, 푸른이도 알고 있을까? 우린 사실 정말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아 왔는데······. 네가 이따금 들판을 들릴 때면, 난 어김없이 알게 된다는 거 알아? 네가 오기 전부터 난 네 머릿결이 들판의 언저리를 따라 흐르듯 총총거리는 걸 볼 수 있어. 그 모습이 내게 너무 큰 힘이야. 물론 들판엔 좋은 친구들이 너무 많지만, 나랑 꼭 같은 친구는 없거든. 난 때론, 아니 항상 외롭지 않게 외로운 거야. 내가 내 생을, 네가 네 생을 소리로 말해줄 입도 귀도 소리도 없는 그런 생활들 말이야.


그래서 난 좀 위험해도 들판의 언저리를 찾아가게 돼. 너한테 이끌렸다는 게 증명이라도 되는 듯이 달려선, 언저리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검은 지평선 너머로 네 푸른 머리칼과 옷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난 딱 그 크기의 그 실루엣이 너무 좋아지게 된 거 같아. 분명 힘들어질 언저리에 와서도 난 전혀 우울해지지 않아. 오히려 더 싹이 돋아나는 거 같아!


난 언제나 언저리의 큰 바위 뒤에 숨어버려. 이끼가 아침 녘 까치집이 된 짧은 머리칼처럼 깊게 박힌 바위야. 우린 습관의 동물인 걸까? 적어도 난 항상 해오는 걸 하는 녀석인 거 같아. 널 우연히 처음 느끼고 보게 된 날, 슬프게도 난 널 몰랐어. 네가 무섭진 않아도 경계했던 거 같아. 하지만 곧 그건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렸고, 난 계속 이끼 바위 뒤에 숨어선, 널 바라보는 다른 잎맥을 새로 가지게 된 거야.


넌 언제나 걷고 있더라. 네가 너무 예쁘고 당연하게 걷고 있어서 오히려 난 압도당하는 거 같았어. 그걸 느끼고부터 난 네 앞에 도저히 설 용기가 안 났지. 이상하게 난 부끄러웠어. 이런 적 없었는데, 무언가 거리끼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넌 내게 껄끄럽게 좋은 녀석이 되어 있었어.


긴 물방울 머리 때문에 잘 볼 수 없는 네 눈은 이상하게 차가웠어. 그런 것도 내겐 처음이었지. 들판 어디에나 있는 내 친구 ‘흙’도 보기완 다르게 차가운 녀석이지만, 이건 좀 다른 거야. 흙이 물을 머금는 건 당연하지만, 물이 물을 머금는다는 건 이상한 거잖아. 아닌가? 아무튼, 그런 차이인 거 같아. 그래서 그런 것에 더 홀리듯 널 훔쳐보게 된 게 아닐까? 너처럼 멋진 존재가 따뜻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흙에서 내가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듯이 네 푸른 눈에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 거 같아.


하지만 이끼 바위 뒤에서 겨우 쭈뼛거리며 네가 다 지나가는 걸 바라볼 뿐이었어. 네가 내가 좋아하는 크기만큼의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버리면, 난 평소처럼 언저리에서 힘을 점점 잃게 돼. 오늘의 널 다 봐 버려서 낙심해 버리는 거 같아. 그러면 난 뛸 수도 없게 돼. 덕분에 오늘의 널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지만,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 널 보러 가는 건 하나의 중독인 거 같아.


오늘은 널 찾아 달려왔어. 사실, 누구든 상관없었지. 난 너와의 거리낌이 너무 싫었어. 이걸 벗어나려면 나도 너만큼 대단한 무언가를 가지고 가야만 할 거 같았지.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바랐던 명품 시계를 오늘 질러버린 것과 같은 일이야. 순식간에 하나의 중요한 열정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시계가 있어도 녀석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그래서 하룻밤을 설쳤어. 내가 나를 뒤지면서, 너만큼 내가 빛나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걸 원망하는 이상한 짓을 했어. 분명 시계가 어딘가에 있는데!


그건 시상처럼 갑자기 방문하는 오랜 손님과 같은 거야. 내 곁에 있지만, 집에는 가끔 찾아오는 것들에 관한 거지. 귀신은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거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무언가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거니까!


‘아버지?’


그건 그 모습만큼 단순한 것이었고, 그런 만큼 단순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거였어. 내 잠결과 꿈이 떠나가 버리는 와중에 느끼는 내 무거운 눈꺼풀, 풀잎으로 살랑거리는 옷의 감촉, 그 속에 기어 다니다 내 살에 맞닿아 갑자기 살구색 탐험을 시작하게 된 얼굴 모를 작은 친구. 그래, 그 감촉이 알려준 것에 불과한 거였어!


난 누군가와 이걸 같이 느끼고 싶었어.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들판을 던져버리곤, 그냥 내가 바라보기만 한 검은 지평선으로 달려간 거야! 이번엔 내가 네게 익숙한 크기의 새로움이 될 수 있으니까. 이번엔 내가 익숙하고 사랑하는 크기의 푸른색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네 익숙한 크기를 겨우 찾아왔는데, 뭐? 내 말이 틀리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전 04화홍시 태양과 -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