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천천히 내려갔어. 초롱인 걱정만큼 침울하진 않아. 물론 괜찮은 척하는 거지. 눈이 흐릿하거든. 이해는 닿아도, 받아들일 수 없는 걸 만난 거야.
황금 들판과 자석처럼 가까워질 때, 태양이 장렬히 지고 있었지. 저 희붉고도 검붉은 신비가 없었다면, 우린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응? 태양? 아! 지금 녀석이 여기 와있잖아!
“푸른, 지금 녀석이 와있어.”
“왜 말 안 해주나 했다.”
“무슨 말이야?”
초롱인 여전히 흐릿하지만, 관심이 생긴 눈치야.
“오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아직?!”
“아하하, 걱정하지 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그 말 덕에 굉장히 불안해지는데?”
곧 져가는 태양이 눈 부신 끝에서 녀석이 오고 있었어. 아주 무섭고 소름이 돋는, 속도와 아우성이 다가오고 있었지.
“아하하하하! 보리야~, 푸른스!!!!”
“난 왜 이 경험을 두 번이나 하고 앉은 거야!”
아~. 초롱이도 저렇게 등장했구나? ㅋㅋㅋㅋㅋ 하긴, 초롱이도 그럴 아이야.
“응? 응?”
물론 가장 재밌는 순간은,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야.
우린 아직 그 형태를 분간할 수 없었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태양을 완전히 등진 녀석은, 하나의 뚜렷한 흑점일 뿐이었지.
물론 그런 순간을 절대로 길지 않아. 녀석의 주황색 곱슬머리가 가장 먼저 살랑거렸지. 그 순간, 푸른이의 절망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 하여간 감정을 못 숨기는 녀석이야~~. ㅋㅋㅋㅋ!
녀석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 앞에 와 있었지. 정말로 갑자기 멈춘 거 같아. 숨을 가쁘게 색색거렸지만, 전혀 힘든 거 같지 않아. 오히려 초롱이와 그녀는 거울을 처음 보는 거 같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지.
“우와! 안녕, 이 귀여운 친구는 누구?”
녀석의 첫 공격은 초롱이를 끌어안는 거였지. 거대한 곰 인형이라도 선물 받은 거 같아.
“흐어! 설마 푸른이가 친구를 데리고 온 거야?!”
다음은 데시벨 올리기네.
“홍시, 걘 초롱이라고 해. 초록 들판에서 왔고, 푸른이 친구야.”
“말도 안 돼! 정~~~~말 이쁘다, 너~~~~!”
다음은 숨 막히는 상대에게 얼굴 비비기? 오늘은 한층 텐션이 높네.
“아! 푸른이도 너~~~무 오랜만이야! 히히히!”
푸른인 안심하면 안 됐어. 틈을 타서 반드시 안으려 들 거니까.
“으!!!! 제발 껴안지 좀 마!”
언제나 그렇듯이, 푸른인 매정하게 떼어내지만.
“ㅋㅋㅋㅋ! 하여간 좋으면서~. 그렇지, 보리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뭐야!”
ㅋㅋㅋㅋㅋㅋ
“아하하하하! 쌤통이다~.”
“초롱이, 넌 웃지 마!”
“이히히히히!”
“이것들이 쌍으로!!!!”
이건 무슨 어린이 만화인가? ㅋㅋㅋㅋ
“초롱아, 소개가 늦었지. 이 친구는 홍시야. 때론 노래랑 살고, 때론 나랑 여기서 살아. 보다시피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지.”
“솔직하지 못하긴. 난 자유를 만끽하는 거라고!”
“넌 그 자유가 뭔지도 설명 못 하잖아.”
하, 푸른이가 또 시작했어.
“복잡한 건 쓸데없는 거니까! 딱 보면 각이 안 나와?”
그건
“우린 너만큼 똑똑하진 않아서 말이야.”
“그 반대지. 쟤만큼 멍청한 놈은 우리 중엔 없다고!”
뭐, 푸른인 그렇게 생각하겠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얘기해 줘!”
아! 초롱이도 있었지.
“미안해, 초롱아. 딱히 어려운 얘길 한 건 아니야. 그냥 서로 안부 인사 좀 나눴을 뿐이지.”
“응, 응!”
“…….”
푸른이 표정이 가관이네.
“초롱아, 안녕. 난 농담과 사람을 좋아하는 홍시야.”
“응! 난 음~ 초롱이야. 걷고 뛰는 걸 좋아해.”
(중략)
사실, 일그러진 푸른이의 표정은 안심하고 있단다. 죽이 잘 맞는 둘은 재잘거리며 잘도 산책하고 있어. 웃음이 끊이질 않지. 특별히 재밌는 얘기나 흥미로운 얘길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소소하고 단순한 주제들이지.
“우리 집 땅고가 나랑 어떻게 노는지 알아?”
“어떤데? 어떤데!?”
“그 크고 정신없는 개가 앞다리만 잡히면 얌전해진다? 재밌는 건, 1초 만에 표정이 슬퍼진단 말이지~.”
“아하하하! 귀여~워~.”
“내 생각엔 그 명상의 시간을 좋아하는 거 같아. 얌전하게 같이 3분이고 5분이고 서 있으면, 나도 녀석도 점점 차분해지는 거 있지?”
“오~~~~!!!!”
얼마든지 안심해도 좋아. 별 이유 없이 특별하지 않은 일에 이상하게 웃어버려도 좋아. 삶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의 연속이야. 그걸 추억이라고 불러도 좋고, 앨범에만 남아버린 사진이어도 좋지.
내 생각에 중요한 건, 뭘 하든 긴장을 푸는 날이 있어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거야. 아버지가 얘기해 준, 나무꾼 이야기의 교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