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론적 확신

자신의 직관으로만 살아온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어. ‘원자론’이란, 인간의 ‘직관’으로 시작하고 발전한, 철학의 역사야.


물론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이’, 후대에 ‘원자론’으로 수정되었다는 것이 진실이지만, 난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우선 ‘4원소설’과 ‘자연발생설’이 어떤 직관을 가진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


‘4원소설’이 ‘원자론’에 완전히 무너진 게 120여년 이지만, 여전히 그 정신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어. ‘4원소설’을 구성하는 공기, 물, 흙, 불은, 너무나 자주 판타지적 세상의 초능력으로 쓰이고, 풍수지리 같은 동양적 신비나 철학과 함께 등장하고 있지.


엠페도클레스나 동양철학의 시조들의 생각을 내가 알 길은 없지만, ‘4원소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의 ‘직관’으로 탄생한 철학이야. 인류가 ‘역사’를 가지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자신의 존재의의와 세상을 연결하며 찾아낸, 원초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지.


쉽게 말해서, 원시 이후에 몇 명의 별난 놈이 공부하다, 자신은 누구이며 세상은 무엇인지 고민했다는 거야. 여기에 내가 확신한 ‘직관’을 덧붙이면, 그들이 그 시대에 도달할 결론이란 전혀 무작위적이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4원소설’에 도달했을 거라는 거야.


물론, 이상한 운명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모두가 ‘원소론’적 결론에 도달했다는 말도 아니고. 실제론 ‘4원소설’과 판이한, 무작위의 가설이 함께 등장했겠지.(특히 종교에서 비롯한 설명은 매우 강력했을 거야) 하지만 ‘원소론’을 하나의 정론으로 인정하고 계승할 거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았을 거라고 주장할 거야.


‘원소론’은 명백하게 세상의 구성 물질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철학이야. 이 설의 연구자는 모두, 자신이 누구이며 세상이 어떤 재료로 이뤄져 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무리지. 이것은 우리가 세상의 기본이 되는 ‘물질’에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야. 인간이나 동식물이 그 존재 자체로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 적어도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인간의 탁월하고 날카로운 직관에서 탄생한 이론이라는 거지.


슬슬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올 거야. 우린 어떤 과학적 근거 없이, ‘원자론’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이미 완성한 상태였어. 크게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상은 무언가 작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을 밝혀내는 것에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결론에 다수의 지식인이 도달했다는 거지.


난 이 정신을 ‘원자론적 확신’이라고 부를 거야. 비록 우리가 ‘원소론’과 ‘원자론’을 분류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두 이론은 같은 직관을 뿌리로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지. ‘원소론’적 사고에서 흔히 등장하는, 신이 흙과 물로 인간과 동식물을 빚었다는 것과 현대의 ‘양자역학’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거야.


그런 맥락에서 ‘4원소설’은,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재료에 대한 추론이라고 할 수 있지. 어느 환경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유기체에게 필수적이며, 그 자체로 거스를 수 없는 재앙이 되는 요소를 엄선했겠지.


여기선,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라인업이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해. 고대 이전부터 다듬어진 우리의 직관이, 예상보다 세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는 거니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이 4원소를 다루는 매체는 쉽게 유치하다는 평을 받지만, 우리가 이런 틀을 가지는 세계관을 이제껏 소비하는 데에 거대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야.


물과 공기는 지구형 외계생물의 생존에 필수요소지. 따로 설명하자면 다수의 논문이 필요할 정도로, 물과 공기(지구의 대기)가 지구에서 운용되는 방식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싶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에서 비롯된 거니까. 불은 에너지가 형태를 가지는 것이라, ‘원자론’의 초안에 들어가기에 참 적절한 현상이지. 지구의 초기 내핵 물질의 합성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해도, 이 라인업에 흙이라는 요소는 빠질 수 없을 거야. 우리가 발을 내딛고 있는, 이 세계에 관한 거니까.


요점은 우리의 직관이 이미, 우주의 진리에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원자론’을 시작하게 했다는 거야. 이쯤에서 ‘자연발생설’을 살펴보면, 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 우리의 직관이 관찰할 수 있는 세계를 연역적으로 추론하면, 생각보다 현대의 우리가 알고 있는 퍼즐에 가깝지만, 동시에 인지나 관찰이 불가능한 영역을 비과학적인 틀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야.


서로 모순된 두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유는, 직관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구간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야. 내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념을 알 재간은 없지만, 그가 나름대로 ‘4원소설’을 정립하면서 발견한 딜레마를 충분히 예상할 수는 있어. 세계의 재료는 그렇다 쳐도, 어떤 조합식으로 생명이 탄생한 거지?


‘원자론’적 직감으로 ‘원소설’을 만들어도, ‘어떻게’라는 요소가 결여된 걸 과학적 이론이라고 칭하지 않아.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에테르’라는 제 5의 원소를 사용하는 한이 있어도, 이 과학적 추론을 또 종교의 족쇄에 빼앗기는 일을 최소화하고 싶었을 거 같아. 아마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데아’라는 개념을 들먹였던 스승을 참으로 미워했겠지.


내 뇌피셜을 계속하자면, ‘자연발생설’은 ‘원자론적 직감’을 궤도에 올리기 위한, 중대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해. ‘원소설’과 함께, 생명의 기원 연구를 관찰과 실험실 속으로 끌어들이고, 무의식적으로 은근하게 불완전한 이론을 일단 세워두기 위한 장치 말이야.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앞에서 얘기한 ‘제 5의 원소’와, 자연발생설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위한 개념인 ‘생명의 배(胚, pear)’를 봤을 때, 이론의 근간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짚고 있는 부분이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어찌 보면 뻔뻔하고 과감한 ‘원자론적 직감’ 밀어붙이기는, 정말 대박이 터져버렸어. 그의 이론은 한동안 박제라도 된 듯, 거의 완벽히 보존되다가, 한 순간에 해일이 들이닥치듯 반박을 받고, 최고급 거름이 되었지. 만약 이게 노린 거라면, 그는 정말 다시없을 천재야!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도가 분해되는 과정에는 ‘연금술’이라는 흥미로는 과도기와 르네상스, 산업혁명이라는 훌륭한 결과가 있었지. 난 특히 ‘연금술’은 인류의 ‘원자론적 확신’이 가장 활발하게 가지를 뻗은 시기라고 평가하고 있어. 존재와 세상은 분명, 기초적인 ‘재료’를 가지고 있고, 그 조합식만 알아낸다면 금이나 인체를 연성할 수도 있다는 판타지는 분명, 수많은 똑똑이를 매혹시켰으니까.


이른바 ‘정설’을 만드는 학계에서 ‘자연발생설’이 돌턴의 ‘원자론’에 완전히 대체되는 시기가 18세기에 찾아왔지. 물론 그들의 말처럼, 고대 그리스 시대에 ‘4원소설’과 대립했던,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적 맥락이 다시 부활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야.


하지만 난 이걸,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4원소설’에서 시작한 ‘원자론적 확신’이 결국 ‘가지치기당하기’에 성공한 사례라고 보고 있어. 물론 그렇게 대수로운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살펴보기에, 당시 그리스에서 토론하던 ‘4원소설’이나 ‘원자설’이 대동소이한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지. 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리스토텔레스나 후계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 토론의 본질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어떤 설을 지지했든, ‘원자론적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동시에 아직은 어떤 것도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진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인류는 이 ‘원자론적 확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도구를 거의 완벽하게 확보하는 수준에 도달했어. ‘나’와 ‘세상’은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는 직감이 정말 과학이 된 거야. 물질은 기본적으로 원자와 전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의 전자기적 이동을 관장하는 게 전자, 물질의 본질적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원자의 혼합과 배치지.


원자는 4원소의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지만, 맨눈으로 관측되지 않는 세상에서, 장대한 세상을 착실하게 구성하고 있었단 거야. 거기엔 우리가 바란 대로, 일정한 패턴이 있었고, 그것의 인위적인 조합으로, 몇 가지 의도한 효과를 실현할 수도 있었어. ‘원자론적 확신’의 여정은 사실상 이 단계에서 끝났다고 봐야겠지.


이제 우리의 직관과는 동떨어진, ‘입자의 불확실성’ 부분이 남았지만,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은 아닌 거 같아. 대신, 내가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영감을 소개하며, 마무리할까 해. 아래가 그 내용이야.



우주 공간에서 무언가의 운동을 멈췄다고 생각해 보자. 그건 정말 고정되어서, 아무런 변화 없는 순간을 경험하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아. 우주의 진공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거든. 물론 비어 있지 않은 진공은, 내 상상일 뿐이지만, 우주에 넘쳐나는 중력장이 신입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생각해.


좀 모호하게 주장을 한 거 같아. 결론은, 어떤 것이든 매 순간 변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는 거야. 난 언제나 추상적이지만, 이걸 꽤 오래전부터 확신하고 있었어. 아마 매끄러운 종이를 확대하면, 수많은 미세 칼날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인 거 같아.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어릴 때 원자론의 역사를 다루는 만화책을 읽었거든. 그곳에 대충 1cm의 무언가에 1억 개의 원자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 있었어. 1억이란 숫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몰랐지만, 조그만 것에, 더 작은 재료가 가득하다는 사실에 열광했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내게 정말 신나는 일이었거든.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원자론은 기대 이상으로 신나는 거였어. 어떤 것도 가만히 존재하지 않아. 보기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원자 수준의 세계에선, 언제나 격동이 일어나고 있거든!


덕분에 난,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직관이자 가정을 확신할 수 있었지. 정말 맘에 쏙 들어! 감이 안 오겠지만 난, 내 직관이 들어맞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야. 모든 게 언제나 변하는 세상이, 반대보단 훨씬 재밌으니까! 이 가정이 아마도 정답이라 정~~말 다행이야. 변화가 우리의 중요한 본질이라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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