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먼지와 형태

대학시절에, 친한 친구의 글을 봐줬던 때가 기억나. 이런 건 괜히 격려의 말을 섞기 마련이지만, 녀석은 진지한 평가를 요청할 정도로 내 솜씨를 높게 쳐주고 있었지. 감사한 마음 덕에, 짜디짠 평가를 솔직하게 내놓을 수 있었어.


녀석의 글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아니지만, 흥미가 돋지 않는 글이었어. 확! 와닿지 않는다고 조언했었지. 그는 몇 번이나 글을 수정해서 가져왔지만, 여전히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느꼈어.


그렇게 4번 정도 같은 부분의 글을 피드백했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어. 이 작업의 반복이, 녀석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겠다고 느꼈지. 잘 생각해 보니, 계속 도입부만 가져오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고.


그건, 처음으로 녀석이 내게 글을 보여줬을 때였지. 임팩트나 의미의 함축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이렇게 조언했었어.


“이야기는 도입부에 거의 모든 것을 축약하는 게 좋아. 이 글을 통해서 전하고픈 이야기와 플롯이 무엇인지, 한 파트 안에 전달할 필요가 있지. 그러면 독자의 이목을 끔과 동시에, 이 글의 방향성을 점검하거나 수정할 때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어.”


이 말 자체는 크게 문제없었다고 생각해. 지금도 그런 철학으로 글을 써오고 있지. 하지만 그 친구에겐 이 조언이 처음으로 받은, 글을 쓸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던 거 같아. 그 조언의 유용함이나 날카로움과 상관없이, 처음 도전하는 장르에서,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게 받은 첫 조언은, 맹목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지. 일종의 순서효과 말이야.


맞아. 녀석은 계속 의식적으로 소설의 첫 부분을 고쳐 적고, 내게 검사를 받고 있었어. 2번째 수정본을 받아 들 때, 아차 싶었지. 바로 카톡을 열고, 너무 초반에 매몰되진 마라고, 첫 도전에 완벽하게 될 수 없는 거라고 얘기했지.


그렇게 우연찮게 나름 의미 깊은(?) 조언을 하게 되어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어. 그게 이번 글의 핵심 내용이야. 녀석과의 카톡 내용을 적는 게 좋겠네.



친구: 사실 소설 도입부 다시 썼는데, 보여주기 민망해서

나: 뭔가 미안해 ㅠㅠ. 내가 기를 죽였구나

친구: 너 때문이 아니라 내 글이 좋지 않아. 겨우 안 나쁜 수준까지가 한계야

나: 그런 걸 어찌 알아? 그런 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친구: 오늘만 도입부 10번을 필사했어 ㅠㅠ

나: 도입부는 도입부가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친구: ㅠㅠ제일 재밌고 황당해야 하니까 제일 어렵지 첫 줄이

나: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야 도입부는 가장 마지막에 완성될 수밖에 없거든

친구: 그러면 소설을 어떻게 쓰냐 이 사람이 조각조각 써서 마지막에 맞추나?

나: 바보야 도입부에 맞춰서 글을 쓰겠니? 글과 도입부를 발맞추겠니?

친구: 나는 도입부를 자르고 뒷수습을 하는 편이야

나: 글은 써지는 거고 써지는 건 알 수 없고 누구나 도입부를 써놓고 고치는 거야 인생도 그런 거지 네가 도입부를 쓰면 다음 이야기가 막 떠오르고 그럴 거야 네가 네 이야기를 봐버린 거니까 그거 웬만하면 바로바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도입부에 너무 발목 잡으면 놓치는 묘사 꽤 많을 걸?

친구: 술술 쓰다가도 아 여기 좀 더 괜찮을 수 있는데 아 여기 좀 거 이러다 보니 ㅋㅋㅋㅋ

나: 그거는 다 쓰고 하는 거야 ㅠㅠ 그렇게 하면 너무 피곤해 ㅠㅠ

친구: 음 청소랑 비슷하구만 분리수거하고 쓸고 청소기 돌리고 걸레로 닦고

나: 그래! 그런 느낌이지

친구: 큰->작 밤에 스탠드 키고 앉으면 오늘은 거칠더라도 되는대로 써야지 막 써야지 하다가 얼마 안 지나서 아 여기… 저기… 이러고 있는데 ㅋㅋㅋㅋ

나: 글엔 먼지가 앉는 법이야 먼지떨이가 있어도 먼지가 앉을 때마다 털진 않아 내가 생각해도 좋은 말이네?

친구: 졸작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나: 너 지금 전 인류를 모지리로 만들고 있다~~~~ 그렇게 자신 있다 이거지~~~~ 알았어! 신경 안 쓸 거임!

친구: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관계가 좋은 관계냐? 아니면 그 이상 기형적일 수 없는 지옥 같은 관계냐

나: 그럴 수 있지?(전자)

친구: 나는 후자라고 생각해

나: 어째서?

친구: 서로의 갈증을 완벽히 풀어주는 사이에 익숙해지면 어째서! 먼지 하나만 앉아도 눈치를 채거든 너무 완벽해서 지옥이 아니면 뭐람 이게

나: 완벽히 푼다는 건 없잖아 그런 상태는 오지 않아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지 네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완벽하게 쓸 순 없어 네 글엔 먼지가 앉을 거야 우리가 완벽하게 생각하는 글들도 먼지가 앉지만 먼지가 언제나 없는 거처럼 보이는 건 그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먼지를 털어주기 때문이야 크~~~~

친구: 좋네 그거 여기서 쏴주 한 잔 마셔주면 딱이네 물론 나는 물 마시고(술을 못 마시는 친구)

나: 덕분에 명언~~~~ 그런 아이디어로 짜는 건 좋네

친구: 지옥이야 지옥

나: 나도 사실 그런 거 느끼긴 하거든

친구: 얘넨(친구의 소설 속 인물들) 나 때문에 뭔 죄냐 ㅋㅋㅋ

나: ㅋㅋㅋㅋㅋ 잘 관찰해 줘라 그러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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