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빼앗긴 한류 - 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이제 이 길고 긴 시리즈의 진정한 마무리를 장식할 수 있겠어. 여태 내 구구절절한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네. 막편의 마무리 부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글에선 <케•데•헌>과 우리의 ‘한류’문화에서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을 설명해 볼 생각이야.
물론 외국 기업에서 만든 작품에게 전적으로 우리 입맛에 맞기를 기대하는 건, 거대한 착각이야. 필연적으로 고증이 충분히 완벽할 수 없고, 한국의 ‘정체성’보단 이해타산이 우선되며,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와 방식을 사용하는 인력이 작용하지.
사실 내가 이 시리즈를 통해 겨냥하는 것은 <케•데•헌>이 아니라, <케•데•헌>을 ‘한류’의 성과로 치부하는 프레임에 있어. 난 이 작품을 전적으로 우리의 성과로 치부하며 기뻐하는 행위에 거대한 의구심이 들고, 일종의 정신착란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으려 하고 있지. 물론 나의 이러한 사념은 과한 기우일 순 있지만, 적어도 ‘K팝 애니메이션화’에 있어서, 우리가 막대한 돈벌이 기회를 놓쳤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주장할 생각이야.
앞에서도 여러 차례 살펴보았던 ‘KDA’는 ‘K팝 애니메이션화’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 <리그오브레전드>를 서비스하는 ‘라이엇게임즈’사는 ‘K팝 애니메이션화’의 역사에 두 가지 큰 의의를 남겼지. 하나는 헌정의 형태로 문화를 하이잭하는 것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는 서양의 방식으로 충분히 효과적인 ‘K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개인적인 생각으론 ‘KDA’가 보여준 우리에의 ‘헌정’은 리스펙이 충분히 담겨있었어. 가사에서 우리의 말이 잘 들리고, 그룹의 리더는 거의 전적으로 한국풍의 캐릭터이며, ‘KDA’의 노래가 공식적으로 상연되는 장은 한국 플레이어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케•데•헌>은 훨씬 과감한 하이젝을 시도하고 있어. 여전히 서양적인 콘텐츠로 ‘K팝’의 이름을 빌리려 하고 있지만, ‘KDA’에 비해 ‘한국’에 대한 리스펙이 음악에서 화면으로 얇게 퍼져나가고 말았어. 영화의 다른 모든 요소에서 한국에의 리스펙을 표하고 있지만, 음악으로 넘어가면 ‘K팝’으로 수식하기 어려운 팝송이 흘러나오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세세한 고증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간판사기만은 구별해 내야 해. 우리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K팝 애니메이션화’라는 시장을 유린당하고 있어. 기회를 빼앗기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이 글을 구상하면서 들었던 가장 절망적인 생각은, <케•데•헌>이 서구권 문화 지배가 ‘한류’라는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액자 역할을 수행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몇몇 영화에서 서양의 재벌이나 특수요원이 일본 전통 갑옷이나 일본도를 자랑스럽게 전시, 사용하는 장면을 접해왔기 때문이지. 이 글을 위해 찾아보니, <007>, <울버린>, <킬 빌>, <메트릭스>, <워킹데드>, <데드풀> 등, 이러한 이미지가 생각보다 많은 시리즈 미디어에 사용된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물론 위와 같은 작품에서 일본풍의 문화를 업신여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내겐 서양권의 미디어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일본풍의 문화를 소유, 소비하기 위한 장면으로 보이는 걸 피해 갈 수가 없었어. <케•데•헌>을 통해 우리의 문화도 전시, 사용되기 좋은 형태로 변형되고 있는 거라고 단정했기 때문인가 봐.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내 직감이 괜한 확신을 하고 있는 거겠지?
일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관련된 자료를 뒤적이면서 요상한 글을 발견했단 말이지. <일본 회사가 만든 한국색 가득한 K팝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K팝데몬헌터스>라는 제목의 글이야. 솔직히 처음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어.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영어: Sony Pictures Entertainment, Inc.)는 일본의 소니가 1987년 미국에 설립한 소니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자회사이자 다국적 미디어 지주회사다.”
라는 내용을 위키백과에서 찾을 수 있지만, 엄연히 미국에 설립한 회사이고, 정확하게는
“코카콜라가 1987년에 설립한 콜롬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1989년에 소니가 인수해 1991년에 이름을 바꾼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 출처: 나무위키
원래 미국 기업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소니가 인수한 사례거든. 지주는 일본회사이지만,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는 엄연히 미국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해. 제작이나 운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본사도 미국에 있으며, 미국 인력으로 만들어져서,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은 미국 기업으로 보는 게 가장 타당하지.
내가 기존에 느껴왔던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생각해도, 이 회사가 일본풍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거나, 관련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은 전혀 받을 수 없고 말이야.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과 일본풍 애니메이션을 비교하면, 작품의 분위기나 철학, 기법이 근본적으로 다른 분야란 말이지.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을 분류하자면, <디즈니>나 <픽사>, <드림웍스>로 대표되는, 서양식(미국식) 애니메이션 회사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는 게 적절해. <케•데•헌>도 그러한 풍의 작품이고 말이야.
글쓴이가 어쩌다 <일본 회사가 만든 한국색 가득한 K팝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K팝데몬헌터스>라는 글을 쓸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의 어그로성 제목이 필요했나 봐. 무려 일본의 회사가 ‘K팝’을 고증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억지스러운 국뽕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한 효과가 있겠지.
정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토당토않는 제목의 글이야. ‘K팝 애니메이션화’의 역사가 거의 전적으로 서양의 무대인 이유가 있거든. 하나는 우리나라가 애니메이션 영화 분야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점이고, 하나는 애니메이션 최강국인 일본의 입장에선 ‘K팝’을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
앞에서 얘기한 이상한 제목의 글 덕분에 후자를 먼저 얘기하자면, 일본에겐 ‘K팝’이라는 소재를 다룰 메리트가 전~혀 없어. 오히려 그들에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종합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선택지지. 일차적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제관계의 문제가 있어. 그들의 입장에서 한국에 전적으로 우호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일본 내•외부를 막론하고) 절대 지지받을 일이 될 수 없지 ㅎㅎㅎ.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야.
이차적으론 일본 입장에선 ‘J팝’이라는 절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거야. 이건 ‘J팝’이 형편없는 장르라는 얘기가 아니라, ‘J팝’도 ‘K팝’처럼 성장,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산업이라는 얘기야. 일본회사의 입장에서 ‘J팝’을 밀어주지 못할망정, ‘K팝’을 다루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이유가 존재할 수는 없다는 거지.(우리와 다르게, 이미 ‘J팝’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도 있어. 이 부분은 이 글의 후반부에 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서양의 영화사 입장에선 ‘K팝’이나 ‘J팝’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일말의 거리낌도 느끼지 않을 이유가 있어. 그것은 ‘팝’의 근간은 이미 절대적으로 서양적이고, 이미 동양의 문화를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루는 것에 문화적, 경제적 이점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오히려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동양의 어느 ‘팝’이 더 인기와 반향을 일으키고,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느냐를 정확하게 선택해 내는 것에 있지.
그들의 선택은 당연히 ‘K팝’이야. 하지만 국제적으로 ‘K팝’의 열기가 ‘J팝’보다 조금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 여기엔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데, 먼저 일본의 입장에서 ‘J팝’이 내수시장을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고, 더불어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인 영역이기 뿐이야.
‘J팝’은 ‘K팝’보다 더 자국민의 특수한 니즈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통통한 체형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나, 지하계 저렴한 인디 아이돌,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일삼는 캐릭터로 밀어붙이는 등, ‘J팝’시장은 특수한 취향과 아이디어로 혼합된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예시가 주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K팝’ 시장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실험이 줄줄이 시행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고 봐. (후첨: 전통적인 ‘J팝’이 단조 중심의 서정적인 가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봐. 일본 내수의 취향에 맞을 수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 대량으로 팔기엔 무리가 있지.)
이런 일본 연예계 문화는 ‘J팝’을 더욱 내수화 시키는 방향성을 만들고, 다른 나라가 ‘J팝 애니메이션’을 시도하는 데에 큰 벽이 되겠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훨씬 결정적인 장벽은, 일본 자체가 애니메이션 장르의 황제라는 점이야.
이미 일본은 오래전부터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J팝 애니메이션’ 시장을 확보, 성장시켰지. 특히 ‘J팝’이 내수에 치우친다는 단점을 완벽하게 극복해 내고, 일본의 방식과 철학, 주체성으로 ‘J팝’이라는 중독적인 인공 바이러스를 온 세상에 살포한 거야. 이 바이러스로 획득한 데이터와 돈으로 ‘J팝’ 자체에 더 대중적인(좀 더 세계인의 취향에 가까운) 진화를 유도하고, 젊고 세련되면서도 일본만의 독특함을 갖춘 뮤지션에게 음반을 팔도록 하는 시장이 거대한 애니메이션 사업으로 가능해진 경우라고. 어쩌면 완전히 다른 의미로 ‘X Japan’이 꿈꾸었던 ‘J팝’의 자유와 성공이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어.
반면에 <케•데•헌>의 2025년을 맞이했던 우리는 어땠을까? ‘K팝 애니메이션화’는 사실, 성공이 훤하게 예견되어 있는 시장이었어. ‘K팝’은 이미 막대한 투자와 인기를 확보한 장르가 되었고, 서양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3D나 카툰체 중심의) 확실한 수단(방법론이라고 하는 게 좋겠지. 굳이 2D식의 ‘J팝 애니메이션’과 같은 선상에 설 이유는 없으니까.)이 좋아 보였으며, 이미 ‘KDA’라는 모범적인 성공사례가 돈을 쓸어 담고 있는데 뭐.
하지만 우리는 우리 손으로 ‘K팝 애니메이션화’에 출자, 선점할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버렸지. <케•데•헌>을 보며 억지스러운 국뽕에 취하고 있을 뿐이야. 응당 불편해야 하는 현상에 당연하다는 듯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지. 중간에 언급했던, <일본 회사가 만든 한국색 가득한 K팝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K팝데몬헌터스>라는 제목의 글이랑 아주 판박이야. 어디에도 자랑스러워할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야.
어느새 흥분해 버려서, 또다시 진정한 마무리에 걸맞지 않은 글쓰기를 해버리고 말았어. 찐찐막편으로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겠네. 다시 한 번 나의 구구절절한 실력에 양해를 구하고 싶어. 이번 기회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