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증샷이란 단어가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어. 사람들은 왜 사소한 것까지 사진으로 남기고, SNS에 올리고 싶어 할까? 물론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내가 남들보다 재미없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단순히 난, 그러한 행위의 필요성에 잘 공감되지 않아. 조금 더 개인적이고 세세한 이유를 생각하자면, 이미지주의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사상과, ‘단순히 사진으로 남기고 공유하며 기억하기’라는 행동조차 버겁게 느끼는, 나의 빈약한 정신력 때문이란 걸 먼저 고백하며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
물론 모든 사진 찍기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 더불어, 이 가치론으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는 선전을 하는 것도 아니야. 사진은 기억을 현상하는, 또는 현상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또 다른 현상화를 창조하는, 생활에 밀접한 예술의 일종이야. 나도 수많은 사진에 수많은 감명을 받지.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왜 수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사진 찍기가 있다는 것과, 관습화된 사진 찍기의 남발이 무엇에 기인했는지 추론해 본 순간, 좀 씁쓸한 현실을 들추게 되었다는 정도의 얘기야. 물론 상당히 오만한 발상인 걸 인정하지만, 내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일단 넘어갈게. 언젠간 뭐, 고칠 날이 오겠지. 이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진 찍기의 첫째는 인증샷같은 사진 찍기고, 둘째는 이미지주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진 찍기야.(어쩌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기준에 대해 헛된 의심을 가지는 걸지도 모르겠어.) 이 글에선 크게 주제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첫째 요소만 설명할 계획이니 안심해. ‘이미지주의’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다루는 게 더 적절하다 생각하거든.
인증샷은 참 이상한 사진 찍기인 거 같아. 인증샷의 목적은, 인증에 있어. 우린 무엇을 누구에게 인증받고 싶은 걸까? 예전의 난, 그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었어. 나도 인증샷같은 사진을 몇 번 올려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왜 이러는지 정확하게 집어낼 순 없었지. 참 희한해. 하지만 요즘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거 같아. 사람들은 참 외롭게 살잖아? 존재 자체가 외롭기도 하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아우성 중, 용인되는 것이 ‘인증샷’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인 거야.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우린 모두의 마음속에 거대한 구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이건 내가 몇 안 되게 확신하는 사실 중 하나야.) 인증샷은 그 구멍을 메꾸는 이 시대의 방식 중 하나란 거지. 외로운 사람들에게 얼굴 대 얼굴이 아니라, 화면 대 화면으로 손쉽고, 에너지가 덜 들며, 무작위적으로 구멍을 메꿀 수 있는 방식을 이른바 SNS에서 제공하는 시대야. 구독이나 광고비를 받고, 모두의 싱크홀을 감수해 주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진솔하게 구멍을 메꿔내기란, 꽤나 난해한 과제야. 결국 화면이라는 매체에서 일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쉬이 해낼 수 있는 업적은 아니지. 많은 경우(예술작품, 광고 캠페인 등)에 이것은 전문가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소모해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진정성’을 가장 저렴하게 획득할 수 있는, ‘일상’에서 피사체를 찾는 현상에서 ‘인증샷의 공유’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라고 봐.
디지털적인 구멍 메꾸기 작업의 한계는 우리의 인식론에서 찾을 수 있어. 내가 ‘인증샷’이라는 개념을 이해는 하면서도, 근본적으론 인정할 순 없는 이유지. 사람은 아날로그로 세상을 인식해. 디지털시대에 접어들고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우리는 우리 본연의 인식을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없어. 오만하게도, 화면 속의 무언가는 다른 세계나 차원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선명하며 실감 나는 화소 기술을 탐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어. ‘구멍’을 손쉽게 메꿀, ‘완벽한 소재’를 찾는 여정이니까. 아주 오래 전의 내가 남긴 글귀로 마무리하면 좋을 거 같네.
‘인증샷이 될 만한 것을 탐색하는 에너지와 시간으로, 자신의 소중한 아날로그의 경험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페이스북에 올리기 위해서나, 선명한 화질로 남기기 위해 불꽃놀이나, 자식의 연극을 통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알겠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그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물론 남들과 미래의 가족에게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눈으로 ‘직접’ 추억을 챙기는 순간을 놓쳐야 할까? 그들의 생생한 눈으로 기억 속에 남기는 것과 화면으로 선명히 남기는 것 중에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난 고민 없이 전자를 고를 거 같아. 어떻게 자기 아이의 연극을 휴대폰을 들이밀면서 볼 수 있지? 역으로 아이의 입장에선, 휴대폰으로 자기를 보는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연기를 화면이 아니라, 눈대 눈으로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까? 사실 아직까지, 이 불편하고 모호한 감정의 이유를 잘 모르겠어. 이상한 거부감이 드는가 봐. 나, 정말 꼰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