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빼앗긴 한류 - 찐막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몇 번이나 비슷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이제야 이 시리즈의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다시 한 번 여기까지 따라와 준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찐막편에서 얘기한 내용의 핵심은, <케•데•헌>이 서양권 사람들의 ‘문화 컬랙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야. 상당히 잔인한 말이지만, 이미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라는 확실한 사례가 있고, <케•데•헌>에 ‘K팝’을 수식하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 시장의 주도권을 온전히 빼앗길 거라는 게 내 눈엔 훤히 보이기에, 이 입장을 철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찐막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심지어 우리는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적으로 저항할 수단을 견고히 하지 않고 있지. 오히려 우리에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 물론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처럼 압도적인 내수 문화의 내공을 바탕으로(특히 일본도의 제작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해), ‘K팝’의 오리지날리티만은 잘 지켜내고 있다는 것엔 동의해.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면, 이건 완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고 말아.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가 ‘블록버스터 영화’ 분야에서 서양 세계에 파이를 빼앗기는 것처럼, ‘K팝’이란 키워드도 ‘애니메이션’으로 빼앗기고 있다는 거지.
앞 문단에서 한 얘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 ‘K팝’이 ‘애니메이션화’하는 것이 완전 다른 차원이라는 말은, 이것이 서로 다른 분야의 사업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무언가로 공략당해서, ‘K팝’이라는 키워드를 잠식당할 위험이 있다는 의미야. 여기서 말하는 ‘분야와 차원’은, ‘현실’에서의 퍼포먼스와 ‘가상’ 인물의 표현, 이 우주의 ‘실제’(아날로그) 피사체를 담아내는 것과 ‘피조물’(디지털)의 세계관을 견고히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얘기하고 있는 거야.
한국과 일본 같은 동양권 문화 강국이 자신의 문화를 부족한 분야에서 하이잭 당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를 ‘소비적인 액션 영화’에서 빼앗기고 말았지. 그것은 순전히 ‘소비적인 액션 영화’제작 기술에서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J팝’의 오리지날리티는 자신들이 앞서있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전혀 도전당하지 않았고, 그 상승효과를 점점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상황이지.
찐막편의 마무리에서 얘기했던 걱정을 다시 가져와 보자고. 그럼 우리는 ‘K팝 애니메이션화’라는 키워드 앞에,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케•데•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할 수 있고, 어떠한 전략으로 이 시장에 임해야만 진짜 ‘국위선양’을 하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지의 철학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거야.
여러분의 예상과는 다르게, 난 한국의 국산 애니메이션 시장의 역량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어. 우리에겐 몇몇 막대한 성공을 이룬 사례가 존재하지. 웹툰 시장의 성공을 잘 보여주는 <나 혼자만 레벨업>이나, 유튜브 플랫폼을 주 무대로 하는 <핑크퐁 아기상어>와 <라바 (Larva)>, 영유아 굿즈를 고급 브렌드화한 <하츄핑> 시리즈의 영화, <사랑의 하츄핑>의 흥행까지. 절대 한국에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절대적 역량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성공이 이미 존재하지.
물론 아직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만큼 ‘만화’가 더 다양하고 넓은 의미의 ‘광장’을 이루지는 못한다는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K팝의 애니메이션화’를 논하는 데엔 이러한 단점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K팝’은 우리가 당당하게 내세우는 성공 키워드고, 우리가 가장 잘 만드는 음악 그 자체인걸! 난 우리가 이 시장의 선두주자를 놓쳐야만 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K팝 애니메이션화’라는 키워드를 최초로 고민했을 때엔, 경제학적 개념을 사용해서 이 이유를 설명해 내려고도 했어. ‘비교우위’라는 개념이지. 당시에는 내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을 낮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KDA’ 정도의 하이잭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어. 지금도 ‘KDA’의 사례는 ‘K팝’에 충분한 리스펙을 보이는 사례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어낼 역량이 부족하다면 다른 나라의 헌정적인 창작으로도 ‘비교우위’적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지. 우리가 현실에서 양질의 K팝 시장을 세계적으로 유지하고, 서양권 애니메이션 영화사와의 계약으로 추가적인 이득을 챙기는 구조 말이야.
하지만 이번 <케•데•헌>의 사례를 보면서, 나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그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어. 우리가 ‘K팝’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적인 철학을 확고히 하지 않는 한, 그들의 문화 하이잭은 점점 더 도를 넘어서는 것이 될 거야. 난 <케•데•헌>이 그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고 보고 있어.
먼저 ‘애니메이션’적인 철학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리가 갖추고 있는 ‘애니메이션’적 역량은 ‘K팝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에서 충분히 열려있지 않은 부분이 더러 보이거든. 애니메이션을 주로 어린 연령층이 소비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이나,(뽀로로, 하츄핑, 둘리 등의 예시로, 이러한 장르에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애니메이션 영화를 ‘예술작품’이나 ‘영화계의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텃새(?)가 존재하지.(한국의 3대 영화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청룡, 백상, 대종상 모두, 애니메이션을 위한 시상 분야가 없거든.) 최근에는 영세한 국산 애니메이션의 경우, 과도한 PPL 계약을 통해 수입에서의 구멍을 메꾸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는 자료도 보았어.
하지만 이것만으로 ‘K팝 애니메이션화’가 좌절되는 거라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란 말이지. 막대한 돈을 분명하게 벌어들일 시장이고,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에 ‘K팝’이라는 예술성과 철학을 접목해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란 말이지……. ‘K팝’이나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분명 이 생각에 도달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야. 아니면 이게 나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한가? 차라리 그런 거면 속이라도 편할 거 같은데…….
‘K팝’적인 철학은 훨씬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이 시리즈의 극초반에 다룬 것처럼, ‘K팝’은 ‘팝’의 아이덴티티와 한국적인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케•데•헌>에서 다뤘던 아이돌의 음악만이 ‘K팝’인 것도 아니지. 여기엔 ‘다국적 K팝 아이돌 그룹’•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 진출, 활동하는 K팝 그룹’• ‘한국의 국악을 기반으로 한 퓨전음악’• ‘기존에 한국적 내수에 잘 맞는 감수성의 명곡들’ 등, ‘K팝’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모습들이 포괄되어야 해.
이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K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잘 해내고 있고, ‘K팝’의 범위와 철학을 앞으로도 확장•강화할 과제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야.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선보일 준비와 시기를 충족했고, 이미 ‘노 바운더리’라는 중요한 철학에 상당히 접근했다는 말이지. 노래의 가사, 영화의 주제, 다룰 수 있는 분야의 다양함, 그 속에 ‘한국’적인 해석이 무엇인지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역량과 세계관 말이야!
이 과정에서 ‘K팝 애니메이션화’는 자연스레 따라와야 하는 상승효과였어야 했어. 우리가 쉽게 주도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고. 하지만 <케•데•헌>에 결정적인 선두를 빼앗겨 버렸고, 그 징조는 ‘KDA’의 사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지. 우리는 이 시장의 가장 유리한 고지를 너무나 순순히 빼앗겨 버렸고, 이제 어떤 ‘K팝 애니메이션’이 나오든 <케•데•헌>과 의 비교대상인 무언가로 시작할 뿐이야.
슬슬 <케•데•헌>에 국뽕이 차오르고, 이것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콘텐츠라고 생각하는 데에 거대한 의구심이 들지 않아? 이 글이 조금이라도 그런 영향을 당신에게 미치고 있다면 정말 다행이야. 생각보다 우리의 ‘한류’ 긍정론은 무비판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니 말이지. ㅎㅎ
부연 설명을 하자면, 여러 분야에서 ‘한류’는 성공한 사례가 그 자체로 대명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야. 무슨 말이냐면, ‘K팝’이나 ‘애니메이션’에 있어서의 ‘한류’는 그 장르 자체가 다양한 풀의 아티스트나 전체적인 작품 수준•문화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BTS’, ‘블랙핑크’, ‘하츄핑’, ‘뽀로로’라는 주체로 대변되고 있다는 거지.
한 마디로 그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나 그룹을 가져와서, ‘이것이 한국의 위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거야. 조금 더 좋은 예시로 설명하자면, 손흥민 선수는 다시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선수이고, K리그(한국프로축구리그)도 수준 높은 플레이와 전략이 오가는 장이지만, ‘한류’라는 수식어로 대표되는 것은 손흥민 선수지, 그가 자라온 나라의 축구 인프라가 아니라는 거지.
이런 ‘대명사형 한류’의 장점이자 단점은 좋은 사례의 사업모델을 잘 드러내는 만큼 특수한 사례를 벗어난 한류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철학이 빈약해진다는 점이야. 난 우리의 이러한 약점이 ‘KDA’와 <케•데•헌>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해. 우린 분명 진정한 의미의 ‘K팝’에 몰두하고 있지만, 이 작업이 가지는 거대한 의의를 넓은 시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몇 개의 성공으로 ‘K팝’이라는 막대한 시장을 키워냈지만, 막상 우리도 이것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케•데•헌>에게 크게 한 방 먹어버린 거지. 우리가 ‘K팝 애니메이션’에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빼앗기는 형태로 말이야. 아주 잘 돌아가는 현실이네.
그럼 대명사 말고 무엇을 ‘한류’의 철학으로 삼을 수 있고 적절한 것인지 제시해야, 내 말이 설득력을 가지겠지. 물론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케•데•헌>에서 보여준 아쉬운 고증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순 있었어.
이 시리즈의 막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케•데•헌>은 한국 고유의 귀신•요괴 문화를 잘 고증했다고 보긴 힘들어. 그리고 이것은 서양의 자본으로 작품을 만드는 주체에게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 디테일한 문화이기도 하지. 게다가 이 영화를 짜임새와 의도를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고증까지 신경 쓴다면 오히려 작품이 중구난방해 보일 거라는 것도 사실이야.
내가 주목한 부분은 오히려 ‘우리가 <케•데•헌>을 만들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K팝’에 더욱 한국어나 국악적 요소를 가미하고, 주연 캐릭터의 비주얼을 좀 더 한국인스럽게 만드는 것 말고도, 자연스레 우리에게 ‘퇴마’나 ‘미신’, ‘무속신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욱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우린 이 분야에 대해 이미 좋은 선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봐. 난 특히 <곡성>이나 <파묘>같은 국산 영화에 그 해답이 있다고 여겨. <케•데•헌>에서 보여줬던, 단순히 악한 몬스터를 처치하는 이미지와 대조되게, 두 작품은 한국에서 해석하는 귀신이나 요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작품이니까.
막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한국에서의 귀신•요괴는 민간의 생활, 친근함과 깊은 연관이 있고, 앞에서 얘기한 두 한국영화도 그러한 부분에 더해, 우리나라의 오컬트관이 다른 나라(특히나 일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두 영화 모두 일본에서 이 땅에 침투한 일본의 귀신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그 대조를 통해 우리나라의 귀신•요괴 문화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니까.
두 영화 모두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나 무속신앙적 뿌리에 그 기반을 두고 있고, <곡성> 경우엔 전통적인 한국의 귀신과 일본의 요괴를 대립시키면서도, 영화의 최후반부까지 두 세력의 선악(일련의 모든 초과학적인 현상의 원흉이 누구인지)을 확실히 하지 않는 구성을 가지고 있어. 개인적으론 이것이 우리나라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오컬트적 존재가 실질적인 육체를 가지는 모호한 현상을 영화의 전체 구조와 의도적으로 오버랩시켜서, 작품의 전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
<파묘>도 처음엔 한국의 귀신이 원흉인 줄 알았지만, 그 근본에는 일본의 귀신(일제강점기와 연관이 있는)이 연관이 있고, <곡성>보다 본격적으로 두 나라의 귀신•요괴관의 차이를 분석해 내는 영화지. 우리의 풍수, 무속적 뿌리를 잘 해석해 내고, 한국스러운 귀신•요괴관이 무엇이고 일본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가장 잘 정리한 영화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론 <파묘> 정도는 한 번쯤 보는 걸 추천하는 바야.
이쯤에서 각설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케•데•헌>에 이 정도의 디테일을 기대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지만, 우리가 이 시장을 선점했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철학을 지켜낼 수 있는 ‘K팝 애니메이션’을 누구보다 확고한 포지션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는 거야. 누차 말하고 있지만, 절호의 기회를 두 눈 크게 뜨고 놓친 거지.
이제 우리가 ‘K팝 애니메이션’을 도전하게 된다면(물론 우리의 역량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개인적으론 큰 기대를 걸고 있어.), <케•데•헌>이라는 ‘선입견 장벽’과 상대해야 한다는 게 현실이야. 심지어 이 작품은 외국 회사가 기획•제작한 작품임에도 충분히 좋은 작품에 한국에 대한 고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전략적으로 영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거지…….
만약 국산 ‘K팝 애니메이션’의 만듦새가 <케•데•헌>의 그것(그저 무난하게 ‘대중적’으로 존재하는)과 유사한 형태를 따라가 버린다면, 정말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이 분야에서 우린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짜’ ‘K팝’과 ‘한류’를 보여줘야 할 거야. 그것이 우리의 전략이자 철학이어야 하고, 우리가 시작한 문화적 흐름을 다시 확고하게 하이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