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순간은 정말, 예기치 않게 와버리는 걸까? 분명히 이유가 있는 결과에도, 난 그게 갑자기 떨어진 폭탄처럼 뭔지 알 수가 없어. 그냥 내 눈앞에서 무언가 터져서, 변해버리는 거야. 그냥 내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다는 걸 알아도, 그게 그냥 갑자기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인과응보는 아무리 되새겨도 부족할 만큼, 머리에 담기지 않는 지혜라고 생각해. 그런 걸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성현이라고 하겠지. 몇 안 되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우주의 진리야.
모든 결과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건, 있을 수 없어. 난 이 진리에 특히 감사함을 느껴. 이 진리를 처음 알았을 때, 현대 종교를 아예 등질 수 있었으니까. 또 세상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건, 세상이 가장 복잡하고 재밌는 퍼즐이라는 이야기니까. 우리 우주가 인과응보로 굴러가서 참 행복한 것 같아.
‘갑자기?’라는 소소한 밈이 생각나는 대목이네. 우린 자연스레,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심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이건 사회적이든 유전적이든 모두 해당하는 거야.
우리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그만큼 그런 문제를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습관도 강하다고 생각해. 흔히, 불길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고 여기고 있잖아? 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말이야.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 내 경우, 심리적으로 자기방어를 우선하는 버릇이 있어. 내가 배워온 세상은 ‘어디든, 나 말고, 책임 떠넘기기’라서, 뭔가 조금이라도 책잡힐 것 같으면 ‘난 아닌데?’부터 하는 거지.
많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건 정말 비겁하고 위험한 사고방식이야. 조금이라도 흐름이 정상을 벗어날 거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머릿속에 결론을 내려놓는 거니까.
사람이 무서운 건, 그런 결론도 찰떡같이 믿어버리곤, 스스로 기억을 조작해 낸다는 거야. 어느새 자신이 만든 거짓에 홀라당 먹혀버리곤, 그것을 거의 절대적으로 믿게 되지……. 나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무서웠어.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그랬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할 수 없었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런 비겁한 자신에 익숙해지고 말이야…….
아무튼 요점은, 난 여전히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를,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는 거야.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문제’란 절대 있을 수 없어.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타나는 거니까.
사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문제라고 느낄 수 있다면, 참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 느낌조차 없다면,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서 왔다는 걸, 알 길이 없을 테니까. 자신에게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라, 사고나 현상일 뿐이야.
‘문제’란 어디선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꾸준히 달려온 녀석이야. 녀석은 반갑지 않지만, 동시에 좋은 녀석이란 걸 알아줘. 문제는 인간이 만드는 거라, 우리를 쏙 빼닮았거든. 부디 우리가 녀석을 더 잘 감쌀 수 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