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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May 31. 2024

<너와 함께 >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관한 발언

이대일 개인전 'TECUM' 기획 후기

사랑한다

우리는 혹시 펫샵에서 순수혈통을 중요시하며 강아지를 쇼핑하고, 자기만족이나 허세로 멋진 대형견을 분양받고, 간식으로 보상하며 반려견에게 개인기를 가르치고, 어여쁜 가위컷과 염색을 해주고, 산책은커녕 집에 혼자 있게 하다가 결국 늙고 병든 아이들을 외딴곳에 버리고 있지 않나요? 반려견들 역시 당신을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를 약속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할까요? 이 작품은 오늘의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반려동물 문화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려인들이 쓴 반려동물에 관한 글들을 연필로 종이에 빼곡히 필사하고 배경에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들도 그려 넣었습니다. 그 절절하고 애정 넘치는 말과 글들의 덩어리에서 '사-랑-한-다'라는 네 글자를 지우개로 지웠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똥을 모아 작은 개를 만들어 액자에 넣었습니다. 굶주린 채 웅크려 버려진듯한 검은 개는 일어설 기운도 없어 보이고 형체도 흐릿합니다. 과연 당신들은 사랑하기나 한 걸까요? 그 애정은 상호적인 것일까요?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요?


주님의 어린양

 한 마리의 가죽이 벗겨진 채 러그처럼 전시장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동묘 구제시장에서 구입한 100% 순모 스웨터들을 이어 붙인 깔개형태의 이 작품은 그 위를 지나가며 밟을 때  물컹하고 폭신한 낯선 느낌을 줍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양들의  순백색은 전시 종료일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때가 타고 보잘것없이 초라해지고 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양에 대한 기억들은 매우 선택적이고 자의적이며 한정되어 있습니다.


12 지신상

무령왕릉 12 지신상 가운데 돼지석상을 소형으로 복제한 실리콘 거푸집에 소이캔들 파라핀과 향료를 붓고 굳혀서 부조를 제작했습니다. 긴 칼을 든 용맹하고 충성심 넘치는 신상이 전시장 입구부터 진한 편백향을 풍기며 이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세상을 구하기 위해 환생한 듯합니다. 하지만 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겹살과 소주 한잔을 즐길 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수호신상이 전해주는 구원의 메시지를 기억하기보다는 마이아르의 마력에 빠진 채 고된 하루를 잊고 싶은 건 아닐까요.


Your favorite cut

프랑스인들이 도축한 소의 부위들을 정육 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가죽공방에서 버려지는 형형색색의 소가죽 자투리로 연출한 미식가적 아이러니입니다. 버리는 부위가 하나 없이 '소모'되는 이 동물은 어떤 문화권에서 아직도 신성화되고 있기도 하며, 소가 귀한 재산이던 농경문화 전통의 한국에서 투뿔 한우는 특별한 날에나 식탁에 올랐었습니다.


East meets west

동서양이 만난 교역의 역사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사막을 건넜던 이 동물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습니다. 새로운 문물과 그 경이로운 융합의 상징을 강렬한 색상의 패브릭으로 상징했습니다. 현재 낙타는 동물원이나 사막지역의 투어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왕건은 고려와 피를 나눈 형제국가인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적으로 대했으므로 사신들은 가두고, 선물로 받은 낙타들은 만부교 다리 밑에 매어두어 굶어 죽게 했던 역사 속 슬픈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희망의 나무

닭뼈를 이어 붙여서 작은 나무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미래와 희망의 상징을 닭형해를 빌어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이 동물 하면 다이어트 때 지겨워하면서도 퍽퍽함을 참으며 먹어야 하는 필수식단인 가슴살, 그리고 완벽한 영양소를 가진 장수식 달걀, 혹은 야식으로 배달시켜 먹는 후라이드 치킨 정도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향신료의 제례

요리사이기도 한  내가 어류와 육류의 '잡내'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8가지 향신료를 센 불에 볶아 강력한 향기를 전시장 공간에 가득 채우는 행위를 보여주었습니다. 향신료 접시들은 각각의 작품 앞에 헌정되었고, 인류 역사에서 희생의 제례에 단골로 쓰이던 그들의 피 대신에 붉은 포도주가 테이블보에 뿌려졌습니다. 작은 보따리형태로 그 흔적을 남긴 이 퍼포먼스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미래를 새롭게 시작하는 데 있어 전제되어야 할 의미 있는 고찰들에 대한 발언입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동물 권리보호나 육식 비판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선사시대부터 지구에 공존해 왔던 인간과 동물 생태계, 환경과의 관계에 고민의 무게를 두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육체, 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 공존의 역사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미래에 어떻게 이어 나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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