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분의 이름은...

친근함 더하기

by 김양희

그분의 이름은 유명한 운동선수의 이름과 같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는 이름.


더 잊을 수가 없는 건, 코로나 이전에는 1~2년마다 한 번씩 내 얼굴을 보고 가셨었다. 지금도 말씀을 잘하시는 편은 아니라서 그분의 마음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눈빛에는 그 무언가의 고마움을 담고 계신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분의 행동에서 느껴진다.



몇 년 전 육아휴직 후 복직을 했을 때, 그분이 복직 후 첫 환자였다. 나의 빈자리로 인하여 치료실은 바쁘게 움직였었고, 환자도 많았었다. 많은 환자를 소화하지 못하여서 복직하기도 전에 다른 선생님이 내 스케줄을 미리 짜 놓았었다. 그런데 첫 환자인 그분은 조금 특별했었다. ‘얼마를 기다리더라도 경력이 있는 선생님께서 우리 남편을 좀 치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사연이었다. 고작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뿐인데 한 달도 기다리시겠다니!


보통 언어치료를 하기에 앞서 언어평가부터 시행한다. 정확한 평가가 되어야 치료의 방향과 계획을 세워 재활의 길로 잘 갈 수가 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말을 잘 나오지 않을 경우 표준화된 평가도구를 이용하여 알아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평가에는 채점 매기듯 각 영역에서의 점수가 중요하기도 하고, 각 영역별로 어느 부분을 잘하고 어느 부분에서 수행이 어려운지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적인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지, 한 단어 수준에서 이해하는지, 다양한 단어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지. 말을 할 때 짧은 문장으로 말하는지, 긴 문장으로 내용에 맞게 말하는지, 단어로만 말하는지, 단어조차 안 되는지. 어떠한 언어적 특징들이 있는지 등등 질적인 평가가 참으로 중요하다. 뇌에 손상이 온 이후, 말하는 내용과 양식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실어증이 올 수 있다. 가끔 드라마에서 충격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인물이 실어증에 걸렸다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정확하게는 심인성 실성증이라고 부르고, 성대-목소리를 내는 기관-에 문제는 없으면서 정신적 충격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이다. 실어증은 뇌의 손상에 있어야 증상이 나타나므로 완전하게 다르다.


그분을 만났을 때 크게 화를 내거나 평가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보호자 말씀으로는 이전 병원에서 어린 치료사 선생님한테 치료를 받다가 어느 날부터 치료실에 아예 들어가기를 거부했다고 했다. 나는 워낙 노안이어서 어려 보일 일은 없어 다행이다 싶었지만 입실을 거부할까 봐 심기를 살피고 등에 진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여하튼 그분은 정해진 기간 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향상되는 부분도 있어서 잘 마무리되었다. 치료 기간이 너무 짧아서 다른 병원으로 가시게 되면 꼭 언어치료를 지속하라고 말씀드렸는데, 2년 후에 만났을 때 들어보니 이후에 언어치료를 완강히 거부하여 언어치료를 아예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분의 속내를 완전하게 듣지를 못하여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그분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환자분들이 이 분처럼 나를 좋아해 주지도 않고, 가끔은 내 환자분이 다른 치료사에게 치료받고 싶다 할 때도 있었다. 내 주변에는 친절한 치료사도 있고, 나이 어린 치료사들, 경험 많은 치료사들이 있는데 치료 경험을 이야기할 때 문득문득 느끼고 배울 때도 있다. 일단,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약점은 아닌 것 같다. 열정적으로 치료를 준비하고 연구한다면 그것이 또 장점일 수 있다. 또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쓰러지거나 교통사고로 오신 젊은 환자분은 나이차가 나지 않는 젊은 언어치료사를 선호한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어떤 환자분들은 의사 가운을 입은 치료사들을 의사로 인식하고 지레 겁먹기도 한다. 그래서 한 할머님은 의사만 만나면 목소리가 떨린다고 하였다. ‘저는 의사 아니에요’를 반복해서 말씀드려도 하얀색 병원 가운만 보면 긴장된다고 하셨다. 병나기 전에 병원에 잘 가지 않았어서 더 그런 것 같다고 보호자 분과 함께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언어치료사는 환자분을 만났을 때 딱딱한 얼굴을 풀고 다정한 목소리로 웃으면서 맞이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한편으로 감정노동자일 수도 있겠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처음 평가 스케줄을 정하고 환자분을 만났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할까? 보통 병원에 가면 인사하고 이름 묻고 바로 검사를 진행하기 일쑤다.-병원 접수대에서 인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도 같다- 일단 밝게 인사하고 이름을 여쭙고, 오늘의 기분이나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 여쭈어야 할 것이다.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 호감이 있어요를 몸으로 표현해줘야 하지 않을까. 말의 내용 뿐 아니라, 목소리톤, 표정, 제스처를 동원해서.



'성공하는 치료사의 7가지 습관'이라는 논문이 있다. 그 습관 중의 첫번째가 환자와의 관계를 우선시,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말을 열심히 듣고, 관심 있게 질문하고, 더 반응해주고, 잘 웃고, 농담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환자분들은 특히나 갑작스러운 병에 당황스럽고 걱정만 한가득이다. 입원해서 새롭고 낯선 환경들에 혼란스러운데 또 평가라니. 무언가 잘해내야할 것 같은 긴장감도 생긴다고 한다. 으레 평가란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오니까. 그럴 때 미소 띤 치료사를 만나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지 않을까. 누구나 호의를 좋아하지만, 힘든 분들에게 따뜻한 눈빛은 너무나도 힘이 될 것이다. 따뜻한 미소와 정감있는 어조로 인사를 나누면 긴장하는 마음도 풀린다. 적절한 관심과 호의 정도를 표현하는 일이다.


과도한 친절은 나는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과하게 친절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적절한 선이 좋다. 남자분들에게 과하게 친절하게 대하면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나를 좋아하냐', '놀리지 말아'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천성적으로 과한 친절이 부담스러운 나는 과한 친절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과한 친절을 주는 방법도 잘 모른다. 진심으로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더 편안할 수 있다. 환자분을 위한 진심만으로도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 친절도 좋지만, 친근함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이러한 습관들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적용이 될 것이다. 상대의 눈을 맞추고 더 많이 듣고 반응해주는 것은 상대가 좋아할 것이고, 나 또한 바라는 일이니까.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치료한 지 8여 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찾아주시는 그 환자분을 보면서, 어쩌면 나의 어떠한 행동 하나가 그분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착각으로 오늘도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치료실 문을 열고 환자분과 눈맞춤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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