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때는 바로 지금

단계별 접근과 상담의 필요성

by 김양희

"환자가 공부를 안 하려고 해요. 핸드폰만 보고"


어느 환자분의 아내분이 답답해하면서 환자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달라 하셨다. 저 멘트는 어디서 들어봤는데... 학생 때 엄마에게 들었던 잔소리 같기도 하고, 내가 아이한테 하는 잔소리 같기도 하다. 나이 60이 넘어서 저런 말을 들으면 어떨까. 아주 유치한 낱말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서 슬프기도 하겠지만, 저런 잔소리를 듣게 되면 화가 나게 되고 또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환자분은 연필의 모양과 사용법, 어디에 놓여있는지 등등을 다 알지만, 우리가 /여ㄴ피ㄹ/(정확하게는 /yənpɪl/)이라고 발음하기로 정해놓은 발음이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보호자분들은 연필의 의미, 사용법, 모양조차 머릿속에서 통으로 지워졌다고 생각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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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들 역시 대개 마음이 급하다. 병 전의 상태로 오랜 시간 살았기 때문에 병 이후에 마비된 내 몸에 적응이 안 되고 병 전의 상태로 빠르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발병 이후의 몸 상태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여 발병 전의 몸상태와 비교를 하신다.

나는 종종 환자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리에 마비가 와서 일어서기도 힘들잖아요. 근데, 뛰면 어떻게 돼요? 뼈가 부러지면 걷지도 못하고 결국 재활도 어려워져요. 발병 초기에 열심히 재활해야 좋아지는 병인데 부러지면 못 움직이잖아요. 도루묵 돼요."


"입으로 못 드셔서 콧줄로 유동식 드시는 분들이 된장찌개 먹고 싶다고 드시면 큰 일 나잖아요.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는데 재활도 그래요. 보통 콧줄 하신 분들은 죽도, 물도 드실 수가 없어요. 잘못하다가는 폐렴이 오거든요. 아직 밥 먹는 단계가 아닌데, 밥 드시면 체하는 게 아니라 큰 일 나요. 뭐든지 단계가 있듯이 언어치료도 단계가 있어요. 차근차근 시작해 보아요."


"이미 일어난 일은 어떻게 되돌릴 수가 없어요. 앞으로의 일에 더 집중해 보세요. 제가 몇 년 동안 많은 분들을 만나보니까 좋은 생각으로 웃으면서 지내는 분들이 재활의 결과도 좋아요. 이 병으로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 이만큼 더 좋아졌구나. 입원했을 때보다 이만큼 더 움직인다, 이렇게요. 우리 어머님도 잘 웃으시고 긍정적이니까 좋은 결과가 올 거예요."


실제로 어느 어머님은 입원했을 때보다도 손가락이 더 펴진다고 치료실에 올 때마다 자랑하고 웃으셨다. 그분은 병의 호전도 좋았고 마음이 편안하여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편하게 해 주셨다.



말씀을 잘 못하시는 환자분들도 어떻게든 빠르게 호전되기를 바라고 있다. 병원에서 종종 다투시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대개 보호자분의 마음이 환자분보다 더 앞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자분들은 '선생님은 이 병이 안 와봐서 모르죠. 기분이 어떤지'라고 하신다. 맞다. 백 번 옳은 이야기다.


유튜버 중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재활 과정을 담고 재활의 경험담을 올린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가 그랬다. 병실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환자와 간병인의 사이인 경우보다도, 환자와 가족인 보호자분이랑 다투는 경우가 더 많다고. 그런 경우, 환자의 보호자분들의 마음이 환자의 현재 몸 상태보다 몇 단계 앞으로 나아가서 조바심을 내는 경우라고. 그러나, 실상 보호자보다 더 급하고 절실한 건 바로 본인이라고. 본인이 재활에 더 마음이 급하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분은 힘든 재활 과정 내내 웃기만 했다고 말했다. 내가 힘드니까 일부러 더 웃었고 간병하는 부인을 보며 즐거운 추억담이나 농담을 더 하게 되었다고. 힘든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니까. 힘내자, 미안하다, 는 말보다 눈만 마주치면 자주 웃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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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도 그분만의 재활 단계가 있다. 그리고 단계에 맞춰서 언어치료도 숙제도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 무작정 아이들이 배우는 과제를 주거나 유치한 걸 드리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아이들처럼 맨 처음부터 학습하는 게 아닌데, 가나다부터 쓰라고 하면 상당히 기분이 나빠하신다. 어른들의 치료는 아이들의 치료와 확연히 다르다. 학습된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것과 없는 상태에서 학습하는 단계는 완전히 다르다. 아이들의 단계는 하나씩 배우는 단계이고, 어르신들은 이미 갖고 계신 자원들을 꺼내오지 못하는 상태이다. 주변의 상황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말씀은 잘 못하시더라도 주변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다 파악하고 계신다. 아이와 다르게.


환자분에게 지금의 치료는 어떠한지, 어려운지, 쉬운지, 유치한지, 적절한지. 현재 치료는 만족스러운지, 앞으로 어떠한 치료를 하면 좋은지, 어떠한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에 대해 여쭙고 확인해야 한다. 보호자 분과도 충분히 대화해야 하는데, 환자에 대해 제일 잘 알기도 하고, 실제 생활할 때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어떤 언어적인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또 치료 시간 외에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언어를 활용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안내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을 놓치게 되면 치료의 방향이 엉뚱하게 흘러갈 수도 있고 환자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어른들이 말했었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재활에도 때가 있고, 단계가 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한다면 후회는 덜할 것이다.

좌절하고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지금 시작한다면 남는 후회는 더 적을 거라고.


나도 때가 있으니 미루지 말자고.

지금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자, 이제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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