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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Sep 28. 2022

 만다라-불교적 세계관과 양자역학

나를 버려야 깨달음을 얻는다

만다라에 비친 세계관 그리고 양자역학                        

1981년 김성동원작으로 임권택 감독 연출한 영화이다이 소설과 영화는 파계승을 옹호하고 한국불교를 부패한 집단으로 묘사 했다하여 종단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다자신의 경험이 가미된 이 소설로 인해 작가 김성동은 결국 조계종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한다.

 여기서 만다라(曼陀羅·曼茶羅)라는 그림의 의미는 불법(佛法)의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경지를 나타낸 그림을 말하는데 티벳불교의 만다라 그림 수행은 원과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그림으로 그린 것인 바 모든 것은 공하다라는 깊은 뜻을 깨우쳐 주는 수행과정으로 행해진다.  




1.줄거리 요약     

대학졸업을 1년 남기고 법운(안성기)은 애인인 영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그리고 진리에의 갈망에 벽에 부딪히자 학업을 그만두고 입산을 한다그는 만행수행 도중 옳은 중이 못되어 승려증이 없고 주민이 못되어 주민증도 없는 스스로 잡승 땡초라고 자조하는 지산(전무송)스님을 만난다

지산은 절에 놀러온 삼수생 옥순의 유혹과 매력에 이끌려 그녀와 이층(섹스)을 쌓아 버린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자에게 겁탈당하고 절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고 지산은 범인으로 몰려 곤욕을 치룬다다행히  진범은 잡혔으나 이사건을 빌미로 그는 승적을 박탈당하고 파계승이 된다그럼에도 그는 환속하지 않고 만행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를 깨우치려 노력한다.  

처음에는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지산의 행태가 못마땅하였으나 그와 대화할수록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법운은 그와 동행한다둘은 창녀가 되어 버린 자신의 옛 애인 옥순을 찾아간다지산은 옥순과 밤을 보내고, 법운은 홀로 자는데 창녀중 한명이 자신을 급습하자 놀란 법운은 도망을 나오고 지산과 결별을 한다법운은 다시 수도에 정진하는데 거기서 만난 동료 승에게서 살아있는 부처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어떤 섬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어느 스님이 도망가지도 않고 그들을 위해 예불을 드리고 바닷물에 씻기고 보살펴 결국 전염병을 이겨 내어 주민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고마운 나머지 그에게 절을 지어준다는 섬사람의 제의도 뿌리치고 사라졌다는 것인데  그 중이 바로 지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감명받은 법운은 다시 지산을 찾아 나서고 결국 어느 가게에서 만나 그와 함께 산중의 폐절에서 수양을 한다눈이 많이 내린 겨울부처의 점안식을 마치고 오는 도중 지산은 홀로 술집에 들렀으나 다음날 까지 행적이 묘연하다. 지산은 기도하는 자세로 석탑옆에서 얼어 죽어 있었다그의 죽음을 옥순에게 알리고 법운은 홀로 수도의 길로 나선다          



2 영화와 불교사상

이 영화가 성불을 하기 위해 위해 고뇌하는 지산(전무송)스님의 고행을 법운(안성기)의 시각으로 기록한 영화로 읽는데 이의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승적도 없는 지산은 율법을 어기며 나름의 방식으로 도를 깨우치기 위해 애쓴다며 술을 밥 먹듯 하고 여자도 고기도 거절하지 않는다중이 절이 싫으면 떠냐야 하는데 이처럼 계율을 어기면서도 그는 결코 승복을 벗지 않는다이러한 그의 태도는 불교의 세계관에는 찬성하지만 수도와 득도를 하는 방법론에서는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왜 이렇게 그는 파격적인 행위를 하는가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지산의 대사를 통해 이를 알아 보도록 하자.     


3. 지산스님과 불교사상     


<1> 제행무상(諸行無常


극중 지산은 이렇게 한탄한다.

허무에 부딪혔을 때 초극하기 위해 입산했다네허무를 뛰어 넘으면 더 큰 허무가 기다리고 있더라 허무의 첩첩산중 허무의 꼭대기에 부처가 있네부처가 되고 난 후의 허무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법운과 재회한 지산이 되뇌인다.

“ 태어나지를 마라 죽기가 괴롭나니..죽지를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나니..”

부처가 되고 난후에도 허무는 멈추지 않으며 삶과 죽음은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근본 사상인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에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이는 영원불변한 존재를 가정하는 전통 주류 서양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주장이다.  세계는 변하는가불변하는가이에 대해  변화를 부인하는 파르메니데스와 변화만 존재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립이 있다또한 불교사상을 재조명하고 과학화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세운 양자역학의 입장도 알아보자     

  

(1) 영원불변설

이에는 세상너머에 영원불변세계가 있다는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그리고 세상엔 영원불변한 존재가 있다(부동의 원동자, 일자, 원자)는아리스토텔레스, 데모크리토스등이 있다. 


1) 현상은 가짜이고 현상너머 참세계는 영원불변하다파르메니데스플라톤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전제에서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 없으므로 생성은 없다또 유에서 무가 될 수도 없으므로 소멸도 없다고 주장한다. 언어 논리상 세상엔 생성도 소멸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운동이 가능하려면 진공(=)이 있어야 하는데 무는 없으므로 운동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그럼 눈에 보이는 생성과 소멸, 변화와 운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눈에 보이는 이세계는 미친 환상의 세계라는 것이다따라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세계야 말로 참 세계이며 영원불변한 세계인데 이는 감각경험이 아닌 이성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플라톤도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세계는 가짜이고 현샹의 배후에 있는 이데아세계야 말로 영원불변하는 참세계라 주장한다     


2) 현상은 가짜 아니고 운동 변화하지만 현상의 배후에 영원 불변한 것이 있다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은 현상세계는 가짜이며 참세계는  영원불변하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철학자들은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가짜가 아니며 변화를 인정하지만 신영혼원자등은 영원불변하다고 주장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질료와 형상론을 발전시켜 4원인론, 목적론적 세계관을 주장하였고, 그 목적의 정점에  영원불변한 부동의 원동자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이어받은 기독교 역시 하나님과 영혼의 영원불멸을 주장한다

또 원자론은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작은 입자(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원자의 영원불변성을 인정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도 원자와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현상은 변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 서구의 주류철학의 경향이다     


(2) 만물유전설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영원 불변한 것은 없다.


1)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생성 변화 운동하고 있다는 만물 유전설을 제기하였다그는 아무것도 안정되어 있지 않으며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다며 그 누구도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 갈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무한영겁회귀사상을 주창한 니체, 생철학, 실존철학등으로 계승된다.  


3)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전통철학적 입장보다는 불교철학의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다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불변의 입자라 주장되었던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또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누어 지고 양성자는 업쿼크 2개 다운쿼크 1개 중성자는 업쿼크 1개 다운쿼크 2개로 이루어져 있다또 쿼크는 어떤 것으로 쪼개질지 아무도 모른다. 원자의 역할을 대체한 초끈이론의 초끈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이러한 결과는 영원불변의 입자라는 생각은 설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이처럼 아무리 작은 미립자의 물질이라 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너지에 불과하며원자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물리ㆍ화학적으로 찰나 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양자역학의 성과는 불교의 제행무상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겠다.     



<2> 연기법(緣起法)

  예불드리러 법당에 간다는 법운을 향해 지산이 말한다

예불은 뭐하러 모시나지금 그 법당에 부처님이 계실까그대의 눈엔 이 술잔이 무엇으로 보이나내겐 이 술잔이 부처로 보인다 이말이야이것이 부처와 중생의 차이지그대가 찾는 부처는 법당안에 있고 내가 찾는 부처는 이 방안이 술잔에 있다네.”

이러한 지산의 언사는 만물이 서로 상호의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사상의 표현이다이를 연기법이라 하는바 부처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此滅故彼滅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겨나고 원인과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한다는 것이다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진리이다즉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천둥은 먹구름 속에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는 발상은 바로 불교의 연기론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서구의 과학적 결정론적 사고로 보면 전혀 관계없는 미신쯤으로 치부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세상은 고립된 체계인가?(기계즉 기계적 운동인가아니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나?(유기체에 대하여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1) 기계론적 자연관세계는 고립된 체계이다

근대 자연과학자들은 세계는 최소 단위의 입자(원자)로 구성되며자연세계는 이러한 입자들의 분리와 결합 등의 운동즉 기계적 운동이 이루어 지는 곳으로 보았다이처럼 자연의 변화를 기계론적 인과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자연을 생명이 없는 물질적 재료로 간주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데카르트는 인간을 정밀 기계에 비유한 바 있으며가장 대표적인 기계론적 사고라 할 수 있는 라플라스는 이 세계관의 극단을 보여준다수학자 라플라스는 만약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입자 단위로 그 존재와 위치운동성에 있어 전부 알 수 있는 악마가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이 악마는 100%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자연은 뉴턴의 운동 법칙에 의해 기계처럼 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2) 유기체적 자연관-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1) 동양의 자연관

동양은 자연을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며그 속에서 만물은 상호 의존하여 조화를 이루고 생명을 지속하는 터전으로 본다자연은 있는 것 가운데 최선의 존재이며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하였으며그 속에서 인간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고 여겼다 이렇게 우주를 상호 유기적 연결 속에서 통일된 전체로 파악하는 입장을 유기체적 세계관이라고 한다유기체적 세계관은 세계를 분리된 부분들의 귀납적 전체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 보는 것이다유교불교도가에서 말하는 만물 일체가 바로 유기체적 세계관을 보여 주는데이때 만물 일체란 모든 존재가 하나의 유기적 형태로 연결되어 생명 간에 연관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2)카오스이론

카오스이론은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기상 모델을 연구하면서 이론적 발판을 마련하였는데 이른바 초기조건의 민감한 의존성, 즉 작은 변화가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북경의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의 허리케인이 된다" 비유로 표현되는데 이는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의 기계적 운동을 전제하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카오스 이론은 유기체적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론이 아닐 수 없다.  



3)양자역학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은 둘 이상의 양자가 가지는 상관관계를 말한는데두 양자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존재한다양자 세계에서 입자 하나가 둘로 쪼개진 경우 서로 짝을 이루는 상관관계를 가진다예를 들면하나의 입자가 붕괴되어 입자 A와 입자 B로 나누어졌을 경우 이때 양 입자는 자체적으로 회전(스핀)을 하는데하나가 UP 스핀이면 다른 하나는 DOWN 스핀을 한다이때 아무도 관찰하지 않으면 입자의 스핀 방향은 중첩되어 있어 결정되지 않는다이 상태에서 두 입자가 반대방향으로 날아 100만 광년 떨어져 있더라도 이때 입자 A를 관찰하여 입자A가 UP스핀으로 결정되면 100만 광년 떨어져 있음에도 즉시 입자 B는 DOWN 스핀으로 결정된다이를 양자 얽힘이라한다.

그런데 이는 빛의 속도 보다 빠른 것은 존재치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위배된다빛이 100만년 날아갈 정도로 떨어져 있는데 동시에 정보를 주고 받아 결정된 다는 것은 4차원 시공간안에서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다이를 이해 하려면 다차원 세계의 존재와 불교의 연기사상이 필요하다데이비드 봄은 두 입자는 우리가 사는 4차원 시공간에서는 단절 되어 있다고 보이지만 5차원이나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우리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한다이로써 아인슈타인에게는 절망을 주었지만 모든 것이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계불교철학의 연기설에 힘을 실어 주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3> 제법무아(諸法無我)

 묵언수행 끝에 자신의 손가락을 넷이나 봉양한 수자가 법운에게 말한다

어리석은 짓이었네 내가 나를 뚫고 나가야 하는데 손가락 타는 고통을 견디며 보살님 도와주소서를 외치다니...이번에 깨우친게 있지죽치고 앉은 참선으로는 안된다는 거야타인속으로 가서 타인속에서 나를 찾는 거야.  ”

이에 법운이 자기 속에서 자기도 못찾으면서 어떻게 타인 속에서 자기를 찾으려 하는가?”

하자 나와 남은 따로 없다네내가 남이고 남이 나야관음 보살은 중생이 다 구제되기 전에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했지

이는 제법무아를 표현한 말이다     

제법무아란 끊임없이 연기하는 존재물에 자아(실체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괴로움만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괴롭다고 생각하는 도 실체가 없다즉 무아이다 ‘라는 존재는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연기해 있는 것이이처럼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라는 존재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주위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여섯 감각기관을 통해서 형성된 주관과 이에 상응하는 정보들로 형성된 객관과의 상호작용이 또한 를 형성한다이런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겨난 상대적 개념이 를 부자 혹은 가난한 사람지위가 높은 사람 혹은 비천한 사람선량한 사람 혹은 악독한 사람 등 자화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관계의 그물망의 산물일뿐이다관계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아가 존재하는가자아를 부정하는 관계론과 자아를 인정하는 실체론의 대립이 있다     


(1)  실체개념

실체(substance)라는 개념은 본질이라는 개념과 구별할 필요가 있으나 동일하게 쓰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이를테면 실체가 신, 또는 이성이라거나 또는 우리 삶의 실체는 맹목적 의지(쇼팬하우어)라거나  권력의지(니체)라고 말할 때 이는 실체를 본질(essence)이라는 용어와 동일하게 쓰이는 경우다.  여기서는 실체는 본질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실체는 문장에서 주어로만 쓸수 있을 뿐 술어로는 쓸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의하면 소크라테스, 홍길동등 눈에 보이는 하나하나의 사물들즉 개별자이다그러려면 우선 눈에 보이고 시공간 상에 존재해야 한다두번째로 실체 끼리는 분리가능하고 독립적으로 존재 한다즉 개개인간개개 코끼리개개의 나무가 실체인 셈이다.

 데카르트는 그 자신에 의하여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실체라고 말했다. 인간이나 토끼, 소나무는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을 영위해 나가므로 실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체론을 인간 세상으로 좁히면 자아론이라 할 수 있다자아란 자기의식즉 홍길동이 자신은 홍길동이라는 인식자기동일성(때로는= 정체성= 주체성)을 의미한다나이가 먹고 모습이 현저히 변해도 홍길동은 자신을 홍길동이라고 여기는 것이 자아이다실체론은 이런 인간의 자아는 존재하며 세상은 자아가 활동하는 세상이라 한다     


(2)실체 긍정론

1)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근거해 실체는 질료-형상설, 4원인설가능태-현실태의 상호운동을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실체는 질료와 형상이 결합된 복합체, 예를들면, 개는 피와 살의 질료와 개의 모양(형상)이 결합함으로 개별적인 개가 된다는 것이다형상은 플라톤에서 현상 너머 이데아에 존재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개별사물 마다 형상이 들어있다고 본 것이다이로써 우리가 마주한 현상은 플라톤에서는 가짜였는데 이제 진짜 세계가 된 것이다또 이러한 실체들은 4원인 질료인형상인작용인목적인에 의해 운동 변화한다도자기공(작용인)이 팔기위해(목적인)이 흙(질료)에다 도자기 모양(형상)을 입혀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다.또 실체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전화한다즉 실체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생성하고 소멸하고 운동을 한다.  예를 들면 씨앗이 꽃이 되는 경우 씨앗은 가능태 꽃은 현실태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촉발하는 건 목적에 대한 욕구라며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고 아리스토는 주장한다씨앗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집이 된다면 씨앗의 목적은 나무이고 나무의 목적은 집이고 집의 목적은 사람사는 것이 되는 것처럼 만물은  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바로 이러한 목적이 사물에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

요약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들이 4원인에 의해 운동 변화하는 세상이라고 정의한다이런 생각이 데카르트까지 이어졌다.     


2)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실체가 필요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실체라 한다그리하여 신은 제1의 실체정신은 사유하는 실체물질은 연장있는 실체라 한다여기서 연장이란 수학적인 길이 부피등이 있어 공간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그는 자연에서 목적론적 요소나 영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오로지 수학적 기계적으로만 파악한다이러한 그의 태도는 자연을 적극이용해야할 당시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로 뉴턴든 과학혁명을 이끄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즉 자연은 실체들이 수학적 기계적 운동하는 터전이라는 것이다이는 칸트등 독일관념론자후설등 현상학자사르트르등 실존주의자들이 취하는 태도로 오늘날까지 서양의 주류이론으로 받아지고 있다.       


(3) 실체 부정론관계론     

실체 부정론은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였으나 여기서는 소쉬르와 양자역학의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소쉬르의 언어 구조주의

인간은 언어세계에 살고 있다언어 없이 인간 없다해도 과언아니다구조주의의 선구자인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지시물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언어지시설)  언어기호와 지시대상은 서로 무관하다는 것이다(자의성). 우리가 개(실제 개)를 개(언어)라고 이름 지을 아무런 필연적 이유가 없다개를 악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즉 개는 이처럼 dog,  hunt  犬 등등 다양하게 부른다이처럼 언어는 사물과 필연적 관련이 없는 자의적 계약적 관계이며 언어는 지시물과 관계없는 그 자체의 관계의 그물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소쉬르는 사물이 먼저 있고 이후 언어가 있다는 것(인식도구설)도 부인한다언어는 기표(음성이나 문자)와 기의(의미)로 이루어 지는데개의 의미(=본질=정체성)가 먼저 있고, 개라는 음성 내지 문자 언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개의 의미는 기표들 간의 차이와 관계에 의해,  예컨데 개는 비둘기가 아니고고기도 아니고 장미꽃도 아니므로(차이와 관계에 의해서), 컹컹짓고, 4발로 기어다니는 육지 짐승을 개라고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즉 개의 의미, 사람의 의미(=본질= 실체성=정체성= 주체성)나무의 본질이 따로 따로 있어서 나중에 언어로 그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다른 기의와의 차이와 관계에 의해서 한 기표의 의미(=본질=진리)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기표를 만들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개의 본질나무의 본질장미꽃의 본질이란게 실체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에 의해 이름 붙여지기 전에는 물체나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프랑스는 나방이라는 언어가 없어 나비와 나방을 구별하지 못하고 둘다 빠삐용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언어가 먼저 생기고 그후 차이와 관계망에 의해 사물의 정체성, 주체성이 부여 되었다는 의미이다.   각각의 언어기호들은 그 속에 고정된 의미를 튼튼히 끌어앉고 있는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차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자아의 정체성은 부정된다


2) 양자역학

양자중첩은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하나의 양자에 동시에 존재하며측정하기 전까지는 양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전자는 관측 전에 입자인 상태와 파동인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즉 둘 이상의 양자 상태가 합쳐진 상태로측정하기 전까지는 측정에 의한 여러 결과 상태가 이미 확률적으로 동시에 존재한다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관측전 까지 삶과 죽음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입자가 오른쪽으로 도는 방향과 왼쪽으로 도는 방향이 있고두 방향 중 한 방향을 골라 그쪽으로 돌아야 할 때두 상태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둘 다 50% 확률로 존재한다즉 양자는 여러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고측정하기 전까지는 그 상태를 알 수 없다또한 중첩된 양자는 관측하는 순간 중첩 상태가 붕괴하기 때문에 하나의 상태로 귀결된다즉 이러한 현상이 말해 주는 것은  존재는 고정불변한 동일한 속성만을 가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양립할 수없는 이중적 속성이 중첩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즉 전통철학과 과학이 주장하는 자기동일성의 실체론을 무너뜨리는 이론인 것이다               


4. 지산의 괴로움

1) 법운이 이렇게 방황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는 질문에 지산이 답한다.

나도 몰라무소유는 행복이라는데 난 누더기 바릿대 밖에 없는데 왜 이리 괴로운가

옥순의 집에서 헤어진 둘은 수년 후 어느 시골에서 재회한다담소를 나누던 지산이 말한다

“ 태어나지를 마라 죽기가 괴롭나니..죽지를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나니..”     


2) 불교에서의 괴로움의 의미.(일체개고(一切皆苦)) 

불교에서 인간이 사는 곳을 사바세계라 하는데 이는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하는 세계라는 뜻이다인간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그럼 인간이 끝없이 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인간에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이를 불교에서는 갈애渴愛라 부른다.  

싯다르타는 인간이 욕망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파하면서 라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물러서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고집하고 붙들 자아가 없다는 선언은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이 괴로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탐욕을 버림으로써 갈애를 소멸시켜 집착이 없는 상태즉 열반涅槃에 이르러야 한다이것이 멸제滅諦이다열반이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5. 지산의 수행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산은 정통 승려의 길을 걷지 않는다그는 하이데거나 니체의 실존주의후기 구조주의의 노마드 사상에 영향을 받은 듯 한다.     


1) 실존주의 그림자

 떠나는 지산의 짐에서 법운이 싸이나라는 독약이 발견하고 이에 대해 묻자

이 약은 부처님 급행권이지나는 순간순간 죽음과 대결하며 산다네

또 법운이 술마시는 이유가 뭐냐 묻자 지산은 말한다.

이유는 없다이 사바세계에서 이유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다만 존재할 뿐던져진 존재는 타인의 뜻이지.”

이는 하이데거의 죽음의 선구와 세계내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이다우리는 이유없이 세계에 던져졌지만 피투성이를 극복하고 죽음을 마주하고 기투해서 실존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실존의 회복이 불교의 깨우침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작가와 감독의 암시이리라.  (실존주의는 후술하기로 한다. )   


2) 노마드의 그림자

 옥순의 창녀집에서 스님은 경계가 없나요라는 법운에게

여기도 법당일세 왜 경계가 없겠는가부처가 아닌 이상 경계가 있다네경계에 부딪힐 때 법운은 여태껏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질까 경계하지만 난 온몸으로 부딪혀 뛰어넘으려 몸부림 치지애욕에서 벗어나려면 애욕을 알아야 돼번뇌에서 벗어나려면 번뇌를 삼켜버리면 돼부딪혀봐망설임과 후회가 없다면 그건 부처의 길이 아니지.”

다시 재회한 지산과 법운

포기는 안해절망으로 절망을 이기는 거야태어나지를 마라 죽기가 괴롭나니..죽지를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나니..”     

이는 이름과 자리를 버리고 경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생활양식과 진리를 깨닫는 노마드의 길과 불교의 수양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는 작가와 감독의 의지인 지 모른다후기 구조주의의 대표자 들뢰즈가 불교사상을 극찬하였음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노마드론도 후술하기로 한다.)     


6. 맺으며     

작가와 감독은 이름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수행의 길을 택한 지산의 입장에 우호적인 듯 하다그는 승려직을 버리지 않고 하이데거식의 실존회복위버맨쉬(초인사상), 노마드적인 수행을 통해 득도를 한 인물로 기억 될 듯하다술집에서 쫒겨나 동사해 버린 지산이 비극적 결말이 암시하는 바는 자못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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