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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Sep 20. 2022

졸업-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부터의 졸업

프로이트와 결별 그리고 새로운 주체

영화-졸업(THE GRADUATE)     

 1967년 마이크 나콜스 감독에 의해 연출된 이 영화는 소설가 찰스웨브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졸업이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벤자민을 내세운 제목이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더 졸업할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인가? 도대체 그는 무엇을 또 졸업해야 한단 말인가? 과연 작가와 감독은 무엇으로부터 졸업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1.줄거리 요약

 헬림험상을 받는 등 대학을 수석 졸업한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은 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귀향한다. 파티중 로빈슨 부인(앤 밴 크로포드)이 그를 유혹한다. 그녀는 벤의 아버지의 사업파트너의 부인이자 이웃 친구인 일레인(캐서린 로스)의 엄마이다. 망설이던 벤은 그녀의 성적 매력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고 있는 벤을 안타깝게 보고 있던 벤의 부모는 일레인과 결혼을 권유하고 자리를 마련해준다. 로빈슨 부인의 강력한 반대에 벤은 일레인이 자신을 혐오하도록 스트립쇼 클럽으로 데리고 간다. 모욕받았다고 느낀 일레인은 뛰쳐나와 벽에 기대고 흐느낀다. 벤은 그녀의 순수한 모습에 넋을 잃고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집착욕 강한 로빈슨 부인은 일레인과 헤어지라며 벤을 협박하다가 스스로 자신의 불륜을 딸에게 노출 시켜 버린다. 이에 일레인은 충격을 받고 버클리에 있는 학교로 돌아간다. 자신의 참사랑이 일레인임을 자각한 벤은 그녀를 찾기 위해 버클리로 가서 집요하게 사랑을 갈구한다. 일레인도 벤을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의대생인 칼과 결혼을 결심한다. 벤은 간신히 산타바바라에 있는 교회를 알아내고 결혼식장을 급습한다. 결혼식 도중인 일레인을 납치하고 둘은 버스에 올라탄다. 탈주한다.     


2. 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는 로빈슨여사와 그녀의 딸 일레인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따라 이 영화는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로빈슨여사 VS 일레인

 엄마 로빈슨은 기성세대이며 일레인은 신세대이다. 로빈슨은 과거, 보수주의를 일레인은 미래, 자유주의 상징이다. 둘 사이에 벤을 대입하면 로빈슨과의 사랑은 성적, 충동적 수동적, 노예적이나 일레인과의 사랑은 주인의 주체적 순수 플라토닉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다양한 시각

두 여인의 이런 차이를 긍정하고 이 영화를 감상하면,  일단 이 영화는 로빈슨 부인은 욕정의 대상, 일레인은 사랑의 대상으로 구분하고 벤자민이 욕정을 벗어나 참사랑을 찾아가는 영화로 읽을 수가 있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견해는 로빈슨 부인의 사랑은 충동 내지 광기, 일레인에 대한 사랑은 이성적 사랑으로 구별하여 충동을 벗어나 이성적 사랑을 그린 영화, 또 지인이나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면서 자신들의 욕정만을 채우기 급급한 세 인물의 추악한 욕망을 그린 막장 드라마로 이 영화를 기억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사랑의 파괴적인 면을 고려하면 이 필름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하는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빈슨 부인은 과거의 타락을, 일레인은 미래의 순수를 의미한다고 보고 과거에 갇혀 퇴행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는 젊은이를 그린 영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들이 모두 의미 있지만 필자는 로빈슨 부인을 엄마의 대체적 존재로 보고 이 영화를 무의식적 성적 충동에 빠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졸업을 그린 영화로 읽고자 한다, 즉 우리 고귀한 인간 주체가 고작 무의식의 성적 충동의 노예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문화가 우리의 본능을 억제해 행복을 파괴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반문명적, 반 주체적 태도를 보이는 프로이트 사상과 결별 졸업하고 건강한 주체를 확립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보자는 의미이다.        


3. 프로이트 사상 요약     

(1) 무의식의 발견

지킬과 하이드처럼 내 안에 내가 통제 못하는 나도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불안 초조 또는 순간적인 흥분, 충동등이 그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했던 경험에서 환자의 의식의 이면에 예외 없이 성(性)에 관한 과거의 불쾌한 기억(Trauma)를 안고 있음을 발견한다. 인간은 욕구가 저지 되었을 경우 마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체험내용을 기억의 저편으로 몰아낸다고 해석해 낸다. 이를 억압이라 한다. 불유쾌한 체험이나 비정상적인 체험이 갖는 에너지를 억압하여 무의식이라는 감옥으로 넣어 버린다는 것이다이렇게 하여 무의식의 영역에는 다양한 본능적 충동과 감정을 동반한 정보가 억압되어 있고 그것들은 주전자 안에서 펄펄 끓고 있는 물처럼 밖(의식)으로 넘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동들이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무의식의 충동의 조종을 받는 노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극단으로 제시하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왕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이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인간 행동의 근원을 성적 충동에서 찾는 프로이트는 누구나 이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3) 무의식의 구조

1) 이드

무의식은 이드의 영역이라 불리며, 신체의 본능적 에너지가 여기로 흘러든다. 이 에너지는 리비도란 성적 에너지라 부르는데, 인간의 모든 행위의 원천은 이 리비도라는 성적 충동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2) 초자아(슈퍼에고-superego)

-그럼 이러한 리비도를 억누르는 것이 무엇인가?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사려는데 돈이 없는 경우, 이때 도둑질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도둑질을 해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양심이 자신의 행동을 규제한다. 어머니와 자고 싶다고 모두가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는다. 이 역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양심이 자신을 억제한다. 이처럼 양심에 해당되는 것을 초자아(superego)라 한다. 도덕적 금기사항 사회적 도덕적 질서가 내면화(무의식화) 된 것이 바로 슈퍼에고이다. 이처럼 무의식에는 이드와 슈퍼에고는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긴장관계에 있다.

 

3) 자아(ego)

자아란 이드와 슈퍼에고 사이에 끼어 이 둘 사이와 외계를 중개하며, 둘을 완화하고 조절하는 영역을 가르킨다. 무의식이 감옥이라면 의식은 교도관인 셈이다. 예를 들면,이드는 평생 해외여행을 추구하나 초자아는 근면한 직장생활을 요구한다고 할 때 . 이때 자아가 개입하여 일년에 일주일 해외여행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된다. 이는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에 속하며 현실로 나타난다.     


(4)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의미

 인간이 무의식의 충동, 그것도 성적 충동에 의해 지배되는 노예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철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며 스스로 자유롭게 결단해 나가는 주체라는 전통철학의 근본을 뒤흔드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이래로 자아의 주체성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일단 자아가 이성적이며 주체적이라는 전제에서 근대의 철학과 학문은 가능했던 것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런 선험적 자아의 환상을 무참히 깨부수며 인간의 주체성을 부인하는 구조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이에 철학계는 또다시 주체를 새롭게 정립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4. 벤자민과 로빈슨 여사의 관계

1) 로빈슨 여사의 유혹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돌아온 벤(더스틴 호프만)의 환영파티 도중 로빈슨은 벤에게 접근한다. 남편과 각방을 쓰는 그녀는 자신의 등 지퍼를 올려 달라, 여자 속옷 입은 것 처음보느냐는 등 노골적으로 성적인 유혹을 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파트너의 아내이자 친구인 일레인의 엄마이다. 그런 그녀가 일레인의 방에서 벌거벗고 벤앞에 나타나 뱀처럼 유혹한다. “난 언제라도 좋아 오늘밤 아니라도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약속을 잡으면 돼 넌 아주 매력적이야“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있다. 로빈슨은 벤의 차키를 벤의 어항속에 던져 버린다. 어항은 벤의 무의식이고 그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 그리고 억압되어 빠져 있는 는 차키는 성적 충동인 셈이다. 로빈슨은 어항속에서 차키를 꺼내라는 것이다. 즉 무의식에 갇혀 있는 성적 충동인 오이디 푸스 콤플렉스를 세상으로 꺼내라는 것이다. 만약 이 키를 벤이 꺼낸다면 벤은 무의식의 성충동을 밖으로 표출하여 성적 쾌락을 향유하게 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차키를 어항에 둘 수는 없는 노릇, 벤은 어항속에서 차키를 꺼낸다.        


2) 벤자민의 갈등

1)이드-리비도

 로빈슨은 자신의 엄마의 대체재로 이른바 환치의 형태로 무의식에 억압되어있던 또다른 엄마이다.  벤자민의 무의식에서 이드와 슈퍼에고는 갈등을 벌인다. 로빈슨의 끈질긴 유혹에 엄마를 갈망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동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몇 장면이 있다. 벤이 어항속에 갇혀 유영하는 금붕어를 넋이 나간 듯이 쳐다 보는 쇼트, 수영하면서 물속의 몽롱한 기운을 자꾸 비춰주는 쇼튼. 이러한 장면들은 성적 충동으로 가득찬 이러한 벤의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리숙하고 순수한 벤은 그녀가 어항속으로 던져 버린 키를 꺼내고 그녀를 태우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2) 슈퍼에고

 하지만 무의식에 성적 충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도덕의식인 슈퍼에고도 발동한다. 벤은 그녀에 거리를 두려고 무지 노력한다. 남편이 오면 어쩌려고요? 그는 벌거벗은 그녀를 당장 비키라며 밀쳐낸다. 그녀는 친구의 엄마이며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 절대 자신이 넘보아서는 안된다는 도덕작용인  슈퍼에고가 작동하고 이드와 치열한 갈등을 일으킨다. 벤은 망설이고 주저한다.     


3)벤자민 로빈슨의 품에 안기다     

1) 성적 충동의 노예

 이드와 슈퍼에고간의 치열한 싸움을 중개하던 벤자민의 에고(ego)는 결국 이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벤의 행동을 몰아간다. 벤은 로빈슨에게 전화하고 결국 둘은 태프트 호텔에서 만나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둘의 목적은 오로지 섹스이고 서로 하고 싶은 대화나 서로 통하는 주제는 없다. 이는 둘 다 무의식의 성적 충동의 노예일 뿐이라는 의미이고 오이디푸스컴플렉스의 실현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 일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감독의 장면 편집도 벤의 현실과 무의식을 번갈아 보여준다. 몽롱한 의식으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데 로빈슨 여사가 벌거벗고 지나가거나 갑자기 자신의 엄마 아빠가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다가 벤이 수영하는 장면, 수영장 수면아래서 유영하다 수면의 침대보트에 뛰어 오르는데 로빈슨여사가 겹치는 장면등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장면들로 교차된다.       

2) 과거에 집착

 로빈슨여사는 구세대 즉 과거세대를 대표한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경제적으로는 부유해 졌으나  탐욕에 물들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주변이나 심지어 가족 같은 공동체의 윤리 도덕은 무시하고 돌진해 나아가는 기성세대의 세태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아집과 성욕으로 물들어 공동체의 기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리는 세력이 바로 자본주의 발전의 업보인 셈이다. 벤자민도 이런 부정적인 구세대의 가치관에 물들어 간다는 것을 로빈슨과의 교제로 의미한다. 이로써 과거의 부정적인 유산을 탈피하고 미래로 나아가야할 과제가 벤에게 주어진 셈이다.     


5. 벤자민과 일레인의 관계

1) 만남

부모님의 권유로 벤자민은 일레인을 만난다. 로빈슨여사의 강력한 반대에 의례적인 만남을 기획하고 심지어 자신을 혐오하도록 스트립쇼 클럽으로 일레인을 데리고 가지만 결과는 자신의 예상과 반대다. 벤과 쇼걸에게 심하게 모욕당했다고 느낀 일레인은 클럽을 뛰쳐나와 눈물을 쏟는다. 그 순수하고 참한 일레인을 본 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다.       


2) 결별

자신의 영역안에 가두어 두려는 로빈슨여사는 벤에게 자신의 딸인 일레인과 헤어지라고 협박한다. 벤이 거부하자 로빈슨은 일레인을 단념시킬 목적으로 벤의 불류상대가 자신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이에 충격을 먹은 일레인은  버클리로 떠나 버린다. 하지만 벤은 그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를 강간한 범죄자라고 비난해도 그건 오해라며 버클리에 숙소를 정해 두고 그녀의 뒤를 쫒아 다닌다. 벤의 추근거림에도 그녀는 의대생 칼과 사귄다.     


3) 일레인을 탈취하다.

일레인은 의대생 칼을 사귀면서도 집요하게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벤에게 사랑을 느낀다.  칼에 대한 사랑은 그저 결혼을 위한 사랑일 뿐이다. 급기야 위기감을 느낀 일레인의 아버지마저 벤에게 일레인 곁에 얼쩡거리지 말라고 경고를 날린다. 가족의 반대에 직면한 일레인은 어쩔 수 없이 칼과 결혼을 약속한다. 일레인의 결혼식장이 산타바바라 어느 교회임을 간신히 알아낸 벤은 결혼식장으로 돌진한다. 그는 일레인을 손을 강탈하여 도망을 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벤은 버스에 올라탄다. 탈주를 감행한다. 기성의 모든 것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한다.      


4) 주체의 자유의지 회복

로빈슨과의 사랑이 욕정에 휩싸인 수동적이고 비밀스런 사랑이라면 일레인과의 사랑은 주체적 능동적인 공개적인 사랑인 셈이다. 하지만 일레인과의 사랑도 지고지순하고 숭고한 사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과 예비신랑 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즉 공동체의 가치를 외면한  지극히 이기적이고도 맹목적인 사랑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주체의 자유만을 강조할 때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6. 맺으며

이 영화는 성적 충동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져 병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벤자민이 일레인을 만나 깨어나서 주체적 능동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그려낸 필름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런 성적인 충동의 노예로서 사는 삶을 졸업하고 새롭고 자유로운 주체를 정립하자는 것이다. 즉 우리 고귀한 인간이 겨우 무의식인 성적충동의 노예라는 프로이트의 사상으로부터 과감히 졸업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주인으로 살아가자는 의미일 것이다. 누가 이런 바람직하고 도덕적인 메시지를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는 좀 과도한 측면이 분명 있다. 주체정립과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고 두 사람은 탈주를 감행한다. 탈출한 두 사람이 버스안에서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짖지 못한다. 이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개인의 자유가 새로운 과제로 주어진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치 못한 프로이트 사상에 빠져 세상을 성적 충동의 노예로 살지 말고 새로운 주체의 건설을 훌륭히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명작중의 명작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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