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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Jun 08. 2024

속이면 속아야지

누가 그에게 선비라고 했던가!


선비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반듯한 아이, 그 아이가 3학년 때 자기 방을 갖고, 혼자 자고 싶다고 했다. 새벽에 방에서 나와 목이 마르다고 물을 마시는데 이건 자다 깬 아이 모습이 아니었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나왔다고 하며 그렇게 며칠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는 일,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아들이 밤새 핸드폰으로 시리즈물을 보느라 새벽까지 폰을 보다 시력이 많이 떨어진 건 그런 일탈의 며칠 덕분이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너무 반듯하게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자라고 있는 아들이었기에, 이런 일탈도 할 수 있구나 신기했다. 어두운 방에서 쪼그리고 핸드폰을 볼 때 엄마한테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과 불편한 자세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도 누군가를 속이려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아들이 다시 덥다는 이유로 혼자 자고 싶다고 했다. 덥다는 표현과 표정이 뭔가 어색했지만, 언제까지 엄마 곁에서 잘 수는 없는 일, 독립을 허락했다. 


알람 소리가 울리면 바로 깨던 아들이 잠을 못 깨고 피곤해했다. 얼굴이 좋지 않았고 목이 뻐근하고 아프다 했다. 엄마가 켜 놓은 불빛이 밝다며 불을 끄고 자라고 재촉하던 아들이 그 시간에 잤으면 아침에 잘 일어나야 하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했는데, 병원에서 재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핸드폰 사용 기록을 살폈다. 아이고 깜짝이야 놀래라. 평일이 이렇게 긴 시간을 쓸 수 있다니, 이래서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 읽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밤새 불을 끈 방에서 게임을 했단다. 엄마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가 들리면 숨을 들이 마시고 내 쉬면서 자는 연기를 했단다. 엄마가 지나가는 그 시간 게임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는지, 게임하다 멈추고 싶지 않았을 텐데 멈춘 네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웃었다. 어두운 방에서 핸드폰을 대가로 너는 시력을 잃었고, 이는 돌이킬 없으며 엄마를 속이려 두 번이나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엄마를 너무 슬플게 한다고 말했고 아이는 미안해했다. 


크게 소리쳐 아이를 야단쳐야 하는 건가 고민도 됐지만, 난 어떻게 생겨먹은 엄마인 건지, 화가 난다기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 상황이 그려지면서 아이가 했을 행동들이 떠올라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시력이 너무 떨어져 조금 더 나빠지면 라식 수술도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이는 겁을 먹었다. 엄마가 혼내는 말 보다 그게 더 효과가 있어 보였다. 게임을 하고 싶으면 불을 켜고 하고, 이왕이면 패드로, 노트북으로 하라는 엄마 말에 아이는 한숨을 쉬며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게임의 중독, 스마트폰의 중독에서 어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 마음은 금세 사라질 테지.


종일 PC화면을 보고 일하고, 시간이 날 땐 스마트폰을 보다 보니 내 눈도 흐릿하고 점점 번져 보인다. 작은 글씨는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찌푸린다. 나 또한 PC화면을 보다 멈추고 자연을 보고 눈을 쉬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잠시 시간이 나면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으니 누가 누굴 혼낸단 말인가. 사춘기란 이름으로 더 엇나가지 않고, 엄마한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아들의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 


우리 모두 불쌍하다. 눈이 혹사당하는 이 시대, 이 순간, 눈아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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