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직장동료들과 함께 먹으러 걸어가다 문득 동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점점 뒤에 남겨지는 자신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걸음속도의 차이는 장애인이 된 자신을 새삼 알게 해 준다.
그 와중에 그런 날 배려해서 같은 속도로 옆에서 걸어가 주는 인기척을 느낀다.
예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새로운 날.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마치 토기장이가 토기를 깎아내듯이 그렇게 비로소 역할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창 건강한 시기 고등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 아버지 회사에서 알바를 하러 가는 길에
동행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 아버지랑 동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작은 키에 짧은 다리의 아버지의 걸음을 쫓아가려면 가끔은 뜀박질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양복바지 끝자락 사이로 보이는 양말 뒤꿈치만
하얗게 닳아 없어진 것이 보였다.
이 길을 이십 년 넘게 저 속도로 걸어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또 수십 년이 흘러서 장애가 있는 다리로 그렇게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시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이름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온통 그런 아빠, 엄마, 아들, 딸 .. 각 자의 무게감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십년의 세월에 흔적들이 겹겹이 쌓이는 것처럼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이 길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니 어찌 부정적인 시간을 남길 여유가 있으랴.
만나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고 그 소중함을 낭비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내게 주어진 우주 같은 아이들을 키워 내는 것.
함께 지켜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은 의외로
어렵지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전처럼 빠르게 달려가지 못하지만 그래서 주위 풍경을 볼 수 있고
전과 다른 삶의 환경에 다소 불편함도 있지만 그래서 찾게 되는 방법들과 소중함에
대해서 재정립하면서 아름다운 가족,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행복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기에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행복을 꿈꾸며 다시 걸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