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루의 24시간이 어찌나 길고도 짧은지 시간의 속도가 말해준다.
남편과 나의 자유시간은 육퇴 이후 대략 9시에서 10시 사이가 된다.
근데 둘째의 낮잠 텀이 어떠냐에 따라 생후 4개월 된 아이는 밤 10시를 넘어 잘 때도 있다.
그리고 엄마 껌딱지 시기인지 벌써 자는 시간에는 아빠 품이 아닌 엄마의 품을 찾는다.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내가 안으면 뚝 그치는 매직
매직이라기엔 남편도 슬프고 나도 슬프다.
하지만 또 그 이면에 기특함과 귀여움도 숨겨져 있다.
밤 10시 이후의 육퇴시간에는 드디어 온전한 나의 자유라는 기쁨과 이면에 오늘 하루 크느라 애써준 아이들 생각에 사진첩을 뒤적인다. 육아는 참 신비한 여정이어서 어느 것 하나 어느 것이다 말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그 양쪽의 이면이 띄는 특징이 애매하지 않고 뚜렷하고 확실하다.
<육아의 양면성>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아 보인다.
혼자 있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다.
얼른 크면 좋겠는데 천천히 크면 좋겠다.
너무 얄미울 때가 있지만 너무 귀엽다.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이면서도 너무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감사한데 버거울 때가 있고
무겁게 느껴지다가도 가볍게 넘겨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겁나게 힘든데 겁나게 행복하다.
어느 한 면의 모습만이 진짜 '육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양면의 모습을 한 육아의 세계에서 여러 가지의 모습과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육아'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것이 하나의 모습에 담긴 그 이면의 또 다른 모습 그리고 그에 맞는 우리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결국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 위에 오늘 마주한 모든 것에 또 다른 모습은 늘 존재함을 느끼며 주어진 하루에 오늘 내가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에 담백한 나의 진심을 담아갈 수밖에. 육아를 마친 오늘의 피곤함 이면에 최선을 다한 나의 사랑의 노력들이 줄줄이 꿰어있음을 느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