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너무 애쓰지 마
나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전에도 수없이 새벽 기상을 시도 했지만 실패했고, 글을 끼적거렸고, 책도 좀 읽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각 잡고 한 적은 없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노력 많이 한다. 열심히 하지마, 직장 다니고 애 키우느라 힘든데 뭐 그런 것까지 해. 너무 애쓰지 마. 남들 다 그렇게 살어 등등 그런 부류의 이야기들을 했다. 위에 말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 남편이다. 새벽 같이 일어나 공부하고 글 쓰고 책 읽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나 뭐라나,,,,남편은 나에게 회사도 그만 두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만 두라고 한다. 결혼하고 내가 회사 그만 두고 싶을 때는 그만한 회사가 없으니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으라고 하더니, 몇 해 전 소시오패스 상사를 만나 내가 공황장애에 가까운 공포를 겪는 것을 보며, 너가 힘들면 회사를 언제든지 그만두라로 바뀌었다. 아주 용의주도한 남자다. 안 그만 둘 것을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거다. 남편은 내가 밤 늦도록 줌 수업을 듣고 있으면 늘 한숨을 쉰다. 첫째는 늘 잘 시간이 되면 알아서 방에 들어 가 잔다. 둘째는 유치원 다녀온 복장 그대로 내가 잘 때까지 안 잔다. 남편은 그게 너무 싫단다. 나는 남편 눈치가 보여 줌 수업이 있는 날이면 둘째를 어르고 달래서 빨리 씻기고 재워보려고 하지만 아이는 하고 싶지 않단다. 엄마 잘 때 자기도 씻고 잘꺼란다. 처음에는 신경 쓰이고 싫었는데, 내가 수업 듣는 동안 둘째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종이를 접는다. 지금은 그냥 냅둔다. 결국 아이가 너무 졸려하면 씻기는 것도 재우는 것도 자기 몫이 되니, 그는 그게 너무 싫은 거다. 남편은 내가 줌 수업을 들으면 옆에 바짝 와서(화면에 잡히게) 쳐다보기도 하고, 너는 만날 그렇게 뭘 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민망한 것은 줌 수업중 마이크가 켜져 있는 상태에서 화장실 문을 닫지 않고 볼일을 보고 물을 내려서 너무 창피하다. 내가 하는 일들을 격려 하는 것 같으면서 방해하는 듯도 한, 아리까리한 남자다.
우리 엄마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 사람이다. 단언컨대, 내 평생 우리 엄마처럼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낸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런 애씀으로 엄마는 아빠가 집에 돈을 한푼도 가져다 주지 않아도 딸 둘을 공부 시켰고, 딸이 고3일 때 일본으로 공부하려 며칠씩 다녀오고, 이른 나이에 건물주도 됐고, 땅 주인도 됐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의 차고 넘치는 경력으로 오라는 곳도 많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그런다. 동창회 나가보면 젊은 시절 열심히 살든 안 살든 다 고만고만하단다. 고민도 비슷하고 몸이 고장나기 시작하면서 병원 다니는 이야기도 그렇고 다들 먹고 사는 것도 비슷비슷하단다. 많이 배워도 성품은 이상한 친구들도 있단다. 엄마 마음도 이해는 간다. 직장 다니고 살림하고 애 키우느라 매일을 그렇게 허덕 거리면 사는데, 새벽 같이 일어나 공부한다고 하니, 뭘 그렇게까지 애 쓰며 사느냐는 말인건 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 공부 한다는 것을 알고 내게 영어 공부 방법을 물어보는 동료들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방법 알고 있는 방법을 몽땅 털어서 가르쳐 주었다. "너 대단하다." 로 결국 대화가 마무리 된다. 말을 한 내가 오히려 머쓱해 진다. 애쓰지 않고 무언가를 잘할 방법이란 것은 없다.
나의 애씀은 무엇인가를 잘하고 싶고, 못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애쓰면서 꽤나 수고스러운 삶을 살 예정이다. 내 성정이 그렇다. 그렇게 생겨 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뭐라도 해야 하고 만족이 없다. 또 다음 목표가 설정된다. 그런 나는 "애쓰지 마." "남들 다 그렇게 살어." 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의기소침해 지곤 한다. 내가 이렇게 애 쓰면서 사는게 다 부질 없는 짓인가? 라는 회의도 가끔 밀려온다. 그럴때 나는 인스타그램의 내 영어 계정을 천천히 스크롤해서 본다. 난 비록 인스타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지난 날의 내 영어 기록을 마주하며 회의를 지운다. 나의 애씀을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는 기록으로 나는 위로 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해 왔던 대로만 해. 그러면 너에게 무지개 미래가 펼쳐질거야. 불혹이 넘게 살면서 무지개빛만 있는 미래는 존재 하지 않는 다는 것쯤은 충분히 안다. 하지만, 어차피 불확실한 미래, 좀, 무지개빛이란 말로 표현 해주면 안 될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나를 토닥이고 나를 위로 하고 나를 격려하는 한마디.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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