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자궁 밖으로 간신히 목을 내민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바로 엄마의 품 냄새였다. 나는 감각으로 엄마를 만났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커다랗고 아늑했던 품이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크기만큼의 그릇으로 줄어드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엄마 또한 삶이 벅찬 한 인간에 불과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사랑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인생의 쓰라린 단면을 함께 걸어간 것이다. 사랑의 순간은 어린아이일 적부터 찾아오므로, 우리는 사랑 앞에서 언제나 어린아이이며, 때로는 삶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서도 바람에 뚝뚝 떨어지는 새파란 잎사귀처럼 사랑의 미욱한 단면을 마주하고야 마는 것이다.
나의 이십 대 시절은 어린아이이지 않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다. 나의 가장 미숙하고 감정적인 면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고백하자면 두려웠다. 완벽하게 치유되는 상처는 없다. 모든 상처는 하얀 식탁보에 묻은 검은 얼룩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버린다.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는 두려움을 냉소로 바꾸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비난했다. 너의 외로움을, 나약함을, 인간적이고 여리고 취약한 관계의 속살들을. 너의 그릇이 작아서라고 마음이 강하지 않아서라고 그렇게 상처를 주었다. 연약함, 어린아이, 두 발로 걷는 동물들, 천연덕스러움, 사랑을 때로 사랑이게 하고 마음 언저리를 저리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 그것이 만드는 둥근 원 안에 너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비난했던, 실은 서툴러 상처 주었던 너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게 너의 등은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남겨졌다.
눈 앞에 펼쳐진 끝없는 수평선을 본다. 내가 향해야 한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나는 깨닫는다. 삶에는 어떠한 법칙도 정해진 의미도 없다는 것을.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가는 내가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가고 세상을 숨죽여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갈 뿐이라는 것을.
나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온몸을 바짝 조이는 추위와 실내의 따뜻함, 속삭거리는 사람들의 소리, 스쳐 지나가는 삶들, 삶, 삶, 그렇다. 나는 비로소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바라 왔는지를 깨닫는다.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너의 눈을 바라본다.
집의 문을 연다. 바깥의 온기와 함께 네가 야옹, 소리를 내며 몸을 비비며 반긴다. 너의 눈은 우리의 첫 만남을 상기시킨다. 너의 눈을 보는 순간 나는 결심한다. 아, 이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어.
내 등 위로 현관문이 닫힌다. 긴 이별의 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사랑의 온기가 나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