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이용하고 판단하는 줏대 있는 의향 존중
서비스를 기획하다 보면 '사용자가 이렇게 이용하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아니 왜 그렇게 이용하는 거지?'라는 의아함이 듭니다. 그런데 저도 달리 할 말이 없는 게 서비스를 이용할 때 기획자가 의도한 바는 알지만 제 의향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의도와는 다르게 익숙한 습관대로 또 끌리는 의향대로 서비스를 이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용자의 의향
저는 '좋아요'에 박한 유튜브 스크루지인데요. 제가 좋아요 한 영상은 단 70개에 불과합니다. 일평균 2시간을 이용하는 나름 최다 사용 앱인데 말이죠. 그럴만한 이유가 저에게 '좋아요'는 '나중에 다시 보기 좋은 영상'을 저장하기 위한 기능으로 사용됩니다.
유튜브에 영상을 저장하는 기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저장한 영상의 재생목록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더 익숙하고 편리한 기능은 '좋아요' 기능입니다. 재생화면 최선단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좋아요'와 저장 기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기능이니까요. 그래서 '좋아요'를 위한 목적만으로는 잘 쓰지 않는 편입니다.
'좋아요'의 기능을 이렇게 사용하다 보니 당연히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기획자의 의도와는 다르니까요. '좋아요 리스트'에서 자주 보는 홈트레이닝 영상은 리스트 중하단에 위치해 있고, 순서를 수시로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중하단까지 스크롤을 내려 영상을 보고 있는데요. 물론 본 의도대로 저장 기능을 이용한다면 재생목록에서 드래그 앤 드롭으로 순서를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줏대 있게 '좋아요' 기능만 이용하기에 (줏대로 쓰고 똥고집으로 읽는다) '좋아요 리스트'에도 순서를 변경하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좋아요 리스트'에는 순서를 변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 의도대로라면 말이죠. 설령 많은 사용자가 해당 기능을 요청하여 '좋아요 리스트'에서 순서 변경이 가능하다 해도 마냥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기존 '좋아요' 기능의 간편함이라는 장점이 점차 희미해질 테니까요. '좋아요'는 어떤 폴더에 어떤 순서로 정리해야 하나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쿨하게 이용하는 기능이잖아요.
사용자의 의향
현재 제 휴대폰 기본앱에 등록된 알람은 53개입니다. 물론 평상시에 활성화된 알람은 6개 정도지만요. 이렇게 알람이 많이 쌓이게 된 이유는 제가 알람을 '타이머' 기능과 '다시 알림' 기능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두 기능 다 기본 앱에서 제공되고 있습니다.
우선 낮잠을 자거나 잠시 눈 좀 붙이는 용도로 타이머 대신 알람을 사용하는데요. 굳이 알람 기능을 사용하는 이유는 실시간으로 카운트가 되는 타이머가 중간에 멈추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일까요? 물론 제가 실수로 일시정지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신뢰도가 더 두터운 건 알람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또, 개별 알람에서 설정할 수 있는 '다시 알림' 기능은 9분 후마다 다시 알람이 울리는 기능인데요. 혹시라도 본 알람을 끄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기에 개별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고 기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에 6개 알람을 수시로 다 켜고, 아침이면 나머지 알람을 다 끕니다. 보통 첫 번째 알람에 바로 일어나지만 습관이 되어버려서 알람을 켜고 끄는 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개별 알람을 한 번에 켜고 끌 수 있는 기능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알람이 53개나 쌓인 건 전체 삭제가 불가능하고 개별로 삭제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괄 관리 기능이 제공되면 결국 '다시 알림' 기능의 단점인 불안감이 또다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저는 개별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획자의 의도
이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입니다. 당연히 모든 사용자의 의향을 100% 맞추기도 어렵고요. 커스텀이 아닌 이상 말이죠. 그렇다고 또 너무 과한 자유는 사용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도와 의향이 100% 일치한다면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작은 불편함 정도는 이용하는데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불편함이 주는 편함과 안정감이라고나 할까요? 마치 바닥에 앉아 소파를 등받이로 쓰는 K-가정집처럼 말이죠.
물론 많은 사용자들이 원하거나 이용하는데 정말 불편하다면 당연히 개선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의향을 잘못 이해했다가는 더 불편한 서비스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용자를 배려한 건데 사용자가 원치 않았던 배려라면 말이죠. 의도와 의향을 일치시키려면 사용자가 원하는 진정한 인사이트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사이트를 서비스에 잘 녹여 기획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WOW effect를 위해 한 번에 다 개선하려고 하기보다는 슬슬 개선하며 사용자의 반응을 통해 적합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23.11.06 | 24.07.29 최근 글과의 톤을 맞추기 위해 쓸데없는 말은 지우고, 레이아웃도 수정했습니다.
/ 썸네일 : 미드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