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요리사로 본 기획의 시사점
최근 가장 이슈인 흑백 요리사. 저도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회차 8, 9화에서는 '흑백 요리사' 이름 따라 그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었는지 또, 기획자로서 어떤 시사점을 얻었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8, 9화의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80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 20인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오직 맛으로 승부를 걸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 취지에 나온 '흑수저'와 '백수저' 그리고 '맛'이라는 키워드는 프로그램 포스터에도 강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흑'과 '백' 1:1 대결로 오로지 '맛'으로만 심사 보는 '안대 심사' 라운드가 화제를 이끌며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죠. 제작자는 '집 앞 김치찌개 맛집 요리사와 파인 다이닝 요리사 중 누가 진짜 음식 잘하는 요리사일까'란 호기심이 프로그램 기획의 시작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흑백 혼합전'은 '흑', '백' 상관없이 팀을 꾸려, '매출', '심사위원 종합평가(레스토랑 운영 및 대처 능력, 요리 테크닉, 팀 기여도)' 심사 기준에 따라 생존자가 결정되는 방식인데요. 그동안 '흑'과 '백'의 대립을 강조한 경연을 선보였지만 이번 라운드에서는 장치로서 어떠한 역할도 없었습니다.
또한, 심사 기준이 '장사'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음식만 맛있어서 나 이걸로 장사할 거야.' 이렇게 장사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는 출연자 인터뷰를 내보낸 만큼 '맛'보다는 '장사'가 이번 경연에서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3, 4위의 매출 차이를 공개하고 주문을 유도하는 방식은 특히나 '장사' 경연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였습니다.
'장사를 전략적으로 잘하는 것도 요리사의 자질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맛으로는 이미 다 평가가 되었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대립 의견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최고의 요리사를 뽑는 경연'이라는 관점에서는 적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을 표하는 많은 시청자가 받아들이고 기대를 했던 포인트가 '오직 맛으로 승부를 건다'였던 만큼 프로그램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맛은 기본! 최고의 자질을 갖춘 육각형의 요리사를 뽑는다'가 취지였다면요?
세부적인 정책에서도 개연성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미션 중간에 각 팀에서 '레스토랑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한 명을 방출한다'는 제도와 '방출된 팀은 부족한 인원과 시간으로 다시 처음부터 준비한다'는 페널티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는 맛으로만 심사를 보는 승부에서 '왜 갑자기 방출을 해야 하며, 왜 페널티를 받아야 하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콘텐츠에 개연성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Gen Z 콘텐츠 이용 트렌드>에 따르면, 특히 Z세대의 경우 장르와 매체를 불문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드라마, 예능, 영화를 볼 때 스토리의 논리성이나 타당성보다는 재미와 흥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응답 비중은 밀레니얼 세대 43%, Z세대 42%, X세대 40%, 베이비부머 세대 34%로 나타났으며, '예능이나 웹툰에서 웃기는 장면이 있으면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응답 비중은 Z세대 45%, 밀레니얼 세대와 X세대 각 42%, 베이비부머 세대 2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재미와 긴장감을 유도하는 요소로만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특히 방출 제도나 그 방식에 대해서는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빗대며 적절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불안정하고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상황이 '나 또는 내 친구나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감으로 이어지며 부정적인 시청 경험이 된 것이죠.
이에 반해 '예능인데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을 하냐'는 의견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공감 능력'이 중요한 사회적 능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편집된 방송의 단편적인 상황만 보고 부정적인 경험을 원색적인 비난으로 되돌려주는 것은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할 수 있기에 자제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프로그램 기획과는 무관한 서비스 기획자이지만 결국 기획으로 시작하고 귀결하기에 흑백요리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서비스 기획의 시사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 차이에 따라 목적과 목표가 불분명해지거나 퇴색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비스 기획자는 명확하게 정의한 목적과 목표를 기반으로 프로젝트의 중심을 잘 잡아 그 안에서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도록 적절히 유연성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 가치를 높일 경우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인입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가 실제 경험과 상이할 경우 또는 이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경우,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이탈까지 우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에게 서비스의 가치를 진정성 있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UI 뿐만 아니라 사용자 여정, UX writing, 서비스 정책, 서비스 운영 등을 시의성, 명확성, 타당성 등에 따라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적이며 짜임새 있는 기획을 하여야 합니다.
물론 서비스에 대한 의견과 경험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모든 사용자 피드백이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서비스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은 필요하며, 이는 서비스 개선과 고도화에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맛있다'는 기준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경연을 긴장감 있게 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요소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원초적으로 '맛'이라는 기준에 중점을 두어 '맛'을 두고 펼치는 전략 싸움과 같이 다양한 접근 방식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맛'으로 승부를 두는 것이니까요.
참고
/ 썸네일 : 미드저니, 작가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