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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정 Oct 18. 2023

강의료는 안 주셔도 됩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우당탕탕 2023년.

오늘도 우리 1학년 9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6시 30분 기상해서 출근준비를 하고 7시 10분에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바쁘기만 하다.


학교에서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1학년 9반 아이들의 이야기 담긴 교실의 불을 켜는 일이다.


밝은 전등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통의 어느 날,

2023 읽걷쓰 학생저자 출판 모델학급으로 선정되어 우리 반 아이들과 시집을 만들게 되었다. 학생들의 글쓰기 역량 강화 지원을 통한 학생 저자 등용 활성화를 목표로 계획된 뜻깊은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국어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시험을 위한 시로서가 아닌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일상을 담은 시집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가 절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 쓰기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사님을 섭외하던 중,


서울의 양천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님으로 계시는 양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게 되었고

기쁘게도 강의를 수락해 주셨다. 


강의 주제는 '챗GPT로 배우는 시 쓰기'!


시 쓰기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선생님의

강의를 신청하며, 서울에서 인천까지 기꺼이 와주신 양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적은 예산이라 멀리서 오신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강의료가 아주 작아 머뭇거리던

나에게 "강의료는 안 주셔도 됩니다.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칠 수 있다 것만으로도 기쁩니다"라는 말을

해주신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의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료보다 아이들의 눈빛과 마음이 담긴 시 한 편의 값을

더 값지게 여기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시를 어려워하던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자,

"선생님,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학생.

"선생님, 다음에 또 오시나요?"라고 묻는 학생.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은 시집을 만든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산이 많지 않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많이 해주고 싶지만 해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때면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도대체 그 많은 예산들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 것일까?

가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부가 부를 탄생시키며 낳는 부조리들 속에서

교육이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저 평범한 어느 중학교의 국어 교사인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어딘가에 파랑새는 있다"는 희망이다. 


세상은 점점 메마른 사막처럼 삭막해져 가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두려움 앞에서

꿈을 포기하고 삶에 좌절한다. 


14세의 내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

14세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전히 성장해 나가고 있다.


양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삶의 기적"


나는 그 기적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을 걸어가게 해 줄 것이라고.....


어느 추운 겨울날, 

어린 촛불 하나가 이 세상을 등진 날을 매년 기억하고 찾아가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양 선생님이었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분의 강의를 듣게 하고 싶었다.




시인은 많지만, 우리는 시인을 알지 못한다.

시는 많지만, 우리는 시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알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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