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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Dec 13. 2022

100년 동안 행복했던 날은 1년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요양보호사_95세인 엄마를 돌보며

엄마가 95세가 되니 엄마 친지들 중에 아직 살아 계시는 분이 별로 없다. 전화로나마 엄마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엄마는 하루 종일 수심에 찬 표정 그대로 멍하니 누워 있거나 티브이를 잠깐 보거나 잠을 잔다. 그나마 나와 함께 뭔가 얘기를 나눌 때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래서 최근엔 같이 밥 먹을 때 말고도 하루 한 번은 엄마와 얘기를 나누려 한다.


처음엔 주로 손주 손녀에 대한 얘기를 했다. 혹은 오늘은 뭐 해먹을지, 요즘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가끔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엄마의 말은 항상 똑같다.

"내가 빨리 죽어야 네가 편할 텐데..."

"아니지. 엄마 죽으면 엄마 기초연금하고 내가 엄마를 돌보는 가족 요양비 하고 63만 원이 날아가는데 그만큼 난 일을 더 해야 하잖아. 좀 더 살아줘."

"그래?... 아직은 내가 조금 도움이 된다는 거네..."

"그러엄. 그보다 엄마 죽으면 나 혼자 너무 무서울 거 같아. 좀 더 힘내 봐."

"..."


엄마는 죽으면 화장해서 강산에 뿌려 달라는 말도 자주 한다.

"돈 쓰지 마. 괜히 항아리 안에 넣어서 납골당에 가둬두지 말어."

"그럼 엄마 보고 싶을 때 난 어쩌라고?"

"네가 좋은 곳에 뿌려."

"요즘엔 아무 데나 뿌릴 수 없어. 수목장은 어때?"

"그것도 땅속에 있는 거잖아. 돈도 들고."

"영혼은 어디든 갈 수 있겠지. 육체만 흙에 녹아드는 거 아니겠어?"

"그냥 아무 데나 뿌려."


엄마를 허공에 뿌리고 나면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을 때 진짜 어떻게 하나. 그래서 나는 엄마와 얘기할 때마다 녹음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언제든 틀어놓고 엄마를 느낄 수 있도록.


엄마는 내가 녹음을 하는 줄 모른다. 다만 나와 얘기하는 일이 뭔가 정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건 아는 것 같다. 최근 엄마가 가장 얘기하기 좋아하는 건 먼 과거의 기억들이다. 뇌가 노화할수록 최근의 기억들보다 오래전 기억이 더 선명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과거를 뒤적뒤적하듯 얘기한다. 침대 머리맡의 방바닥에 앉아 엄마와 눈을 맞추고 있는 나에게 간간이 눈길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먼 과거를 바라보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나직이 얘기한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평생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던  남편 얘기를 했다. 나는 엄마가 첫 남편과 육이오 때 사별하고 나서 한참 후에 두 번째 남편을 만나 낳은 딸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는 엄마가 나만 키우며 홀로 사셨다.


"오늘은 그 사람이 자꾸 눈에 어려."

"누구?"

"첫 남편..."

"그래?... 같이 오래 살았어?"

"아니. 한... 일이 년 살았나..."

"엄마 몇 살 때 결혼했어?"

"내가 스물 하나였고, 그 사람은 스무 살이었고..."

"꽃 같은 나이네."

"그렇지... 나를... 진짜 좋아했는데..."

"그래? 그러면... 엄마 첫날밤도 기억해?"

"응. 근데 그 사람이 내 이마를 이렇게 자꾸 쓰다듬으면서 '미안해요, 응? 용서해요, 응? 그러기만 하고 몸에는 손도 못 대더라고."

"첫날밤을 못 치렀어?"

"응. 밖에서 친척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밤새도록 놀리고... 그러니까 나한테 자꾸 미안해요, 용서해요, 그러면서 이마만 만지다가 밤을 다 새웠어."

"그래서 언제 첫날밤을 치렀는데?"

"몰라... 기억이 안 나."

"아기가 있었잖아."

"응. 태어나고 얼마 후에 홍역 앓다가... 죽었지... 내가 임신했을 때, 그때 육이오 때여서 맨날 비행기가 왜앵 하고 지나가곤 했거든. 그러면 그 사람이 막 달려와서 내가 놀랜다고 나를 도장방으로 데리고 가서 꼭 껴안고 있고 그랬어. 내가 놀랠까 봐. 걱정하지 말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나를 정말 위해줬어."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그때... 인민군 패잔병들이 밤낮없이 지나가니까 동네 애국 청년횐가 하는 데서 경비를 선다고 사람들하고 나갔어. 금방 오겠다고 하고 나가서는 행방불명됐지. 시어머니하고 근처 산을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는데 시체도 못 찾고 소식도 모르고... 근데 사람이 하루 종일 눈에 보여. 꿈에서도 문을 열고 들어오고... 꿈에서는 엄마도 보고 언니도 보는데 언제 만나나..."

"... 근데 엄마, 만일 저 세상 가서 외할머니도 엄마 보고 오라고 하고, 우리 아버지도 오라고 하고, 첫 남편도 자기한테 오라고 하면 누구한테 갈 거야?"

"흐흥. 첫 남편한테... 평생 그 사람만큼 날 위해준 사람이 없어." 

"... 그렇네."


나는 엄마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도 나의 아이들을 돌봐 주셨기 때문에 같이 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아 수많은 얘기들을 했는데, 정작 엄마의 인생에 대해서는 깊은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걸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100년이나 사셨는데 그중 행복했던 날은 1년뿐이 안된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정말 불효 막심한 인간이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나중에 내가 거기로 가면... 엄마 그 분한테 있을래, 아님 나한테 올래?"

"네가 나한테 와야지."

"...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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