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등하원 도우미
등하원 도우미를 할 때 내가 돌본 아이들은 둘 다 여아였다. 여섯 살인 큰 아이는 유치원에 다녔고 네 살짜리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었다.
큰 아이는 처음에 나를 낯설어했었다. 작은 아이는 어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가 수시로 안아줘서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큰 아이는 유치원에서 집에 올 때면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서 나를 힐끗 쳐다볼 뿐 울적한 표정으로 유치원 가방을 나에게 주곤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10여 명쯤 되었는데, 내 느낌에, 다른 아이들은 전부 부모 중 한 명이 나오거나 친 외조부 중 한 명이 나와서 아이들을 반기는데 자기만 도우미 할머니가 오니까 그런 것 같았다. 아이의 위축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아이의 마음을 좀 펴주고 싶었다.
아이들 돌보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노하우는 없었다. 다만, 아이들과 내가 우선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려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 갈등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모든 걸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먹이고 몸단장을 시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의 대부분을 나는 아이들이 선택하게 했다.
아이들 엄마가 누룽지를 끓여놓고 갔어도 나는 아이들이 붕어빵을 먹고 싶다 하면 그렇게 해줬다. 큰 아이는 불편한 걸 못 참아서 치마를 싫어했다. 작은 아이는 무조건 공주 원피스만 찾았다. 그래서 큰 아이는 바지와 티셔츠만 입으려 했고 작은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겨울왕국 원피스를 아무리 더러워져도 며칠을 계속하여 입곤 했다.
아이들 엄마가 입힌 옷을 보면 아주 세련되었었다. 엄마와 타인의 차이인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의 외양이 어떻게 보일지와 같은 고민은 무시하고 아이들이 입고 싶어 하는 것만 입혔다. 그랬더니 큰 아이는 며칠 만에 내가 내놓는 옷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입었다. 둘째에게는 내가 몇 개의 원피스를 내놓고 매번 자기가 선택하도록 했었는데 둘째도 어느 날 아침 나에게 말했다.
"할머니, 나 선택하는 거 싫어해."
"그래? 그럼 할머니가 맘대로 입혀 줘?"
"응."
그날 이후 옷 입히는데 드는 시간이 월등히 줄었다. 물론 내가 원피스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머리도 애들 엄마는 한 가닥으로 묶어 주었었는데 나는 두 가닥으로 높이 묶는 삐삐 머리를 해줬다. 큰 아이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도 불만이 없었다. 옷과 머리가 자기들 마음에 들면 아이들은 갑자기 쾌활해지곤 했다.
유치원 버스가 서는 곳은 아이들 집에서 아파트 경내를 한참 걸어내려가야 했다. 나는 양손에 아이들 손을 꼭 잡고 걸으면서 티브이나 유튜브, 친구들에 대해 함께 떠들었다. 아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영리해서 할 말도 많았고 물어보는 것도 많았다. 우린 10분 이상 걸리는 길을 걸으며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었다. 둘은 서로 먼저 나에게 말하겠다고 싸우곤 했다. 누가 먼저 운을 뗐는지 내가 가려줬고 아이들은 인정했다. 신통하게도 아이들은 내가 공정하기만 하면 서로 갈등을 풀었다.
유치원 버스 정류장은 아파트 정문 근처에 있었다. 버스는 원생들이 전부 올 때까지 정류장에 서있었다. 때로 10분 이상을 서 있었는데 그동안 먼저 온 아이들은 모두 버스 안에 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부모나 할머니 등 보호자들은 버스에 탄 자기 아이를 향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뭔가를 얘기하고 웃어주고 챙기고, 온몸으로 갖가지 사랑의 표현들을 했다. 그 시간 동안은 다른 데는 절대 안 보고 버스 안만 쳐다보고들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니, 애들을 해외 유학이라도 보내는 거 같네. 유치원 보내면서 뭔 작별 인사를 저렇게 절절하게 하나.'
하지만 곧바로 나는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도 창밖으로 자기 엄마를 보며 웃고 소리치며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우리 큰 아이는 나와 동생을 보며 손만 흔들 뿐 웃지를 않았다. 다음날부터는 어색하지만 나도 다른 보호자들과 똑같이 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큰 애를 향해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작은 아이를 팔에 안아 들고 언니한테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시켰고 작은 아이와 함께 온몸으로 하트를 그렸다. 큰 아이가 버스 안에서 활짝 웃으며 자기도 사랑해하고 말하면서 손가락 하트를 그렸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웃으며 뭔가를 계속 얘기했다. 그렇게 아침 행사를 한지 이틀 만에, 큰 아이는 오후에 집에 오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서 할머니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나에게 안겼다.
얼마 후 큰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 나 할머니한테 반말하면 안 돼?"
"아니. 해도 돼."
"근데 내 친구가 할머니한테 반말하면 안 된대. 다른 집 어른이라고."
"아니야. 할머니는 네가 반말하는 게 더 좋아. 친할머니 같고 좋잖아."
"히히, 알겠어. 나도 반말하는 게 더 좋아."
아이들과 나는 무척 친밀해졌다. 작은 아이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말할 때 나를 꼭 포함시켰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아이들을 안 볼 때는 외할아버지가 돌보았는데 그런 때 외할아버지는 가끔 아이들에게 장난감 같은 선물을 사주곤 했다. 아이들은 나에게도 장난감을 사 달라거나 과자를 사 달라고 했다. 나는 하루 몇 천 원 이내에서는 아이들에게 뭔가 사주지만 그 이상은 돈을 못 썼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사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보통은 히잉, 하고 넘어가는데 가끔은 아이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저녁 식사 후에는 티브이를 보는데 내가 아이들이 원하는 걸 대부분 해주기 때문인지 티브이 보는 시간을 늘려달라거나 유튜브 어른 프로를 보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이런 경우, 말로 설득이 안 될 때 나는 엄마카드를 쓰곤 했다.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에게 코치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엄마는 무서워하니까 그럴 때 엄마한테 말한다고 하면 바로 말을 듣는다고 했다.
며칠에 한 번은 꼭 엄마카드를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특히 큰 아이가 왜 엄마를 무서워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회초리를 드나? 혹은 어마어마한 엄포를 놓나? 궁금해서 아이한테 물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무섭니? 막 혼내셔?"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무서운 건 아니야."
"그래? 근데 너, 떼쓸 때 엄마한테 말한다고 하면 바로 말 듣잖아. 왜 그러는데?"
"엄마는 너무 오래 얘기한단 말이야."
"..."
아, 지루한 게 무서운 거구나.
혹시 2010년대 생들의 주요 특징은 '지루한 시간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브런치 글도 짧게 써야 하는데 내 글은 너무 긴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