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은 Jan 10. 2023

5등급 어르신 요양보호사가 부족한 이유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요양보호사

올해 초부터 치매 5등급 어르신 댁에 가기 시작했다. 5등급은 확실히 치매 정도가 경미한 수준이긴 했다.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다. 어르신은 성격도 원래 화통하신 분이었는지 까다로운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난감한 건 있었다.


갈 때마다 반찬을 챙겨주시는 것이었다. 도라지오이무침톳나물 무침, 병아리콩 조림, 조기 8마리, 쑥송편 10개 등 매일 뭔가를 싸주셨다. 어르신이 자꾸 뭔가를 주시려 하니, 나도 보답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소고기 미역국을, 한 번은 김밥 줄을 가져갔다. 혹시 맛이 없을까 봐 미역국은 멸치 육수를 낸 후, 한우 소고기를 넣었고, 김밥에도 국산 참기름을 발랐다. 어르신이 종일 내가 가져간 음식만 드셨다 하니 기분은 좋았다. 문제는 이렇게 주고받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할까 봐 걱정이었다. 혹시 이것도 치매 증상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어르신, 이렇게 자꾸 싸주시지 마세요. 그러면 저도 보답을 해야 하니까 뭔가 싸 오게 되잖아요."

"그래? 알았어. 이젠 내가 절대 안 줄게. 아무것도 안 줄게."

어르신이 화를 내시는 것 같아서 나는 황급하게 덧붙였다.
"아니... 절대 하시지 말라는 건 아니고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버릴 것 같은 것만 저를 좀 주시면 제가 집에 가서 먹을게요. 그런 거 말고는 이렇게 따로 하시진 마시라고요."

어르신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일단 오늘은 가져 가."

나를 주시려고 싸 놓은 세 통이나 되는 반찬통을 가방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어르신, 혹시 나물 좋아하세요? 저희 엄마가 나물을 좋아하셔서, 제가 나물을 잘 무쳐요. 다음에 한번 가져올게요."

"나물? 너무 좋아하지."

"어머나 잘 됐네요. 이번 주 중에 나물 반찬 할 예정이었거든요."

머릿속으로는 취나물 말린 걸 국산으로 사려면 엄청 비싼데, 하면서도 나는 환히 웃었다. 생각해 보면 잘 된 일이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취나물을 엄마한테도 해 주면 되니까.


사실, 음식을 주고받는 일이야 일은 아니다. 어르신이 과하긴 하지만 내가 횟수를 조절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돌봄 1주일이 지난 지금, 나로서는 하루 한 시간 반드시 어르신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 인지교육이 더 버거운 일이 되었다. 인지교육에는 기억력 향상 훈련이나 계산능력 유지 훈련 등이 포함되는데,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시간이 나는 너무 많이 걸렸다. 애를 써서 준비한 자료도 어르신이 거부해서 제대로 써먹을 수도 없었다.


치매교육 프로그램이라고 개발해 놓은 자료가 있었다. 신문을 이용하는 훈련법들인데 전부 24가지나 됐다. 나는 신문을 아직 끊지 않고 있어서 이것저것 활용해 봤다.


'날짜 계산기'라는 게 있다. 자신의 나이나 그날의 날짜 등을 선택해서 숫자를 네 자리씩 세 줄을 만든다. 그 12개의 숫자를 갖고 이리저리 더하고 곱하고 그걸 다시 더하고 곱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계산 능력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표준 활동지를 인쇄해서 신문과 함께 가져갔다.

"어르신, 오늘 어르신 운세 한번 보세요."

"어, 그래? 어디 봐."

"유쾌, 상쾌, 통쾌래요. 하하."

"에이, 나한테 그런 게 어디 있어."

"이거 한번 계산해 봐요. 이 숫자들 네 개 다 곱해 봐요."

"에이, 나 안 해. 옛날에도 곱하기 못했어."

"그러면 더하기만 해 봐요. 자꾸 해 봐야 몇 년 지나도 안 잊어버리죠."

"에이, 머리 아파. 맨날 시장 보고 병원 가서 돈 계산 하는데 뭘 또 해."


어르신은 계산하기 싫어하시고, 인지 교육을 한 증거 자료는 만들어야 했기에, 집에 와서 96세이신 엄마에게 표준활동지를 드렸다. 엄마는 시간은 걸렸지만 끝까지 다 했고 나는 격하게 칭찬을 했다. 엄마는 입에 웃음이 걸린 채로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내가 하지."

하지만 두 번 째는 절대 안 하셨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신문에서 보청기 광고를 잘라 그걸 12조각으로 오린 뒤 퍼즐 맞추기 하는 훈련을 어르신한테 가져갔다.

"어르신, 퍼즐 스크랩이라는 거예요. 원래대로 맞춰 보세요."

"안 할래, 이거. 풀이 손에 쩍쩍 붙잖아. 나 지금 손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해. 목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서 책도 읽지 말래. 그러니까 댁이 내가 한 것처럼 만들어 놓아."

결국 내가 마무리를 했다.


그다음 날은 기사 제목을 늘어놓고 그 안에서 글자를 이리저리 맞춰가며 여러 단어를 만드는 훈련을 가져가 봤다.

"어르신, 오늘은 칙칙폭폭 단어 잇기 게임이에요."

"안 해. 교육 같은 거, 다 안 해도 돼."

"어르신이 인지 교육 안 받으시면 제가 어르신 돌보고 받은 돈을 나중에 다 토해내야 한대요."

"그러면, 교육 다 했다고 그래."

"교육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대요. 나중에 공단에서 검사 나오면 어떻게 해요."

"내가 다 했다 그럴게."

"잊어버리실 거 같은데..."

"에이, 참, 안 잊어버려."

"..."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은 비교적 쉬운 것들이었다. 이외에도 문에 난 그날의 기상 정보를 보고 온도가 높은 순서대로 도시를 이어가며 도형을 그리기, 삼행시 짓기, 신문 기사 제목을 외우고 그걸 다시 거꾸로 외어 말하기, 글자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숫자로 바꿔 쓰기, 기사 안에서 두 글자를 바꿔 읽기, 신문 기사의 초성만 읽기 등등 신문 기사를 쥐어짜서 각종 훈련 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가르치려는 나조차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의욕이 안 났다.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본 지 10년은 되지 않았나? 신문 기사를 갖고 프로그램을 짠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든다는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센터에서는 이 같은 고충을 다 알고 있었다. 손쉬운 방법이라며 어린이 동화책 10권을 줬다. 그걸 매일 함께 읽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재미없는 동화를 어르신이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센터장은 하루 한 시간은 인지 교육을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므로 보조 자료로 동화책을 갖고 있으라고 했다. 물론 읽은 티가 팍팍 나게 해야 했다. 증거가 부족하면 나중에 급여를 전부 환수당할 수 있다고 했다. 동화책 10권을 집에 갖고 와서 엄마에게 보였다. 엄마가 책을 좀 보다 밀쳐내며 말했다.

"이건 나한테 너무 쉬운 내용이야. 재미없어."


다음날, 어르신한테는 그날의 신문 기사 중에서 어르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를 하나 선택해서 그 내용을 이야기해 드렸다. 읽는 것도 싫어하시고 글자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을 토대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함께 했다. 증거 자료는 내가 따로 꾸몄다. 인지교육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난감했다. 아, 5등급 어르신을 위한 요양보호사가 품귀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구나.


요양보호사들이 5등급 어르신을 기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은 복잡하고 수입은 적기 때문이다. 5등급 치매 환자는 하루 3시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요양보호사를 부를 수 있다. 반면 4등급이 되면 월간 4일을 더 사용할 수 있어서, 요양보호사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를 수 있다. 요양사 입장에서 보면, 2023년 시급이 주휴수당 포함하여 12,100원이니 145,200원을 더 벌 수 있다는 얘기다. 3등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한도는 더 늘어난다.


치매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들은 대개 가족이 5등급을 받은 경우인 것 같다. 이 경우 가족을 데이케어센터에 보내면서 자기가 돌보는 시간은 가족이 데이케어센터에 가 있는 시간의 앞 뒤로 배정해서 겹치지 않게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데이케어센터에 보내는 날은 치매 교육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르신한테 인지교육을 하는 자료를 준비하는 일, 설사 그게 단순히 증거 자료를 만드는 일이라 해도 나의 경우는 집에서 1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자꾸 하다 보면 시간이 짧아지긴 하겠지만 매번 똑같은 교육을 할 수 없으니 어쨌든 한 시간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니 4시간 일하고 3시간 시급을 받는 셈이 된다. 더욱이 추가되는 한 시간 동안은 무척이나 난해한 일을 해야 한다.


어쨌든 나는 이미 시작했으니 성실하게 한번 해 봐야 하리라. 시중에는 치매 어르신을 위한 학습지가 몇 개 나와 있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그런 민간 자료를 정기적으로 구입해서 관내 어르신들에게 제공하는 곳도 있었다. 나는 돈을 들일 순 없으니 직접 만들어 가야 할 것 같다. 문득 드는 생각, 기존의 프로그램을 조금씩 변형하고 단순화시켜서 사용하다 보면 새로운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고, 그러면 이거 팔아도 되는 거 아니야?






작가의 이전글 꿈꾸는 비용 월 30만 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