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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기 위해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글 머리에 붙임

by 이상은

나의 직업은 광고 영업자다. 지금도 잡지 광고 영업을 한다. 잡지가 사양산업이다 보니 영업 매출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쳤고 지금도 바닥이다.

네 식구의 가장이었던 나는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엔 까막눈이고 마땅한 기술도 없는 나이 든 여자가 할 수 있는 알바는 별로 없다. 주로 3D 업종이었고 힘든 일에 비해 수입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각종 알바를 전전해야 했다.


내가 처음 시작한 알바는 식당의 주방 보조였다. 주부들이 쉽게 시작할 순 있지만 힘이 무척 드는 알바다. 아마 몸과 마음 모두 가장 힘든 알바 중에 하나일 듯하다.


광고영업은 그래도 외양은 사무직에 가깝다. 잡지를 잔뜩 싣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는 필수다. 알고 보면 생계형 자동차이지만 하루 종일 운전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언뜻 나를 보면 운전 실력이 좋아서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나의 광고 영업 대상은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었다. 보안이 철통 같은 어마어마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특급 인재들을 만나고 다녔다. 알고 보면 나는 '을'에 불과하지만 사무직 근처에는 살고 있었다.


반면 주방 보조는 하루 12시간 꼬박 서서 설거지를 해야 했다. 손이 움직이는 게 안 보일 정도로 빨리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밀려드는 설거지를 다 처리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손가락이 무척 아팠다. 게다가 주방 초보이다 보니 선배들의 직설적인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듣곤 했다. 그런 날 밤이면 손가락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아서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렇게 잠이 안 오는 밤에 내 자존감을 일으켜 보고자 알바 에피소드들을 글로 쓰곤 했다. 처음엔 나 스스로 '나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인생이고 결국은 아무도 쳐다보는 이 없이 쓸쓸히 늙어갈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면 나만이라도 나의 걸음 하나하나를 직시하며 걷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발견을 했다. 그 글들은 나의 어려운 시기를 단순히 기록만 한 게 아니었다. 힘든 시기를 무탈하게 넘기게 한 나만의 극복기였다. 그런 글들과 아직 못 쓴 이야기들을 모아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을 테고 그런 사람들과 글을 통해서나마 수다를 떨고 싶었다.


나의 꿈은 작가였다. 타이틀만 작가인 것 말고 글을 써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 실은 치열한 노력은 안 하고 평생 꿈만 꿔온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작가를 꿈꾼다. 브런치에서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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