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열 병장은 아프니까 청춘인가?
<D.P. 2> (2023)
목욕탕은 일종의 시련이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지독한 습기. 만약 그곳이 인류 진화의 터전이라면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아가미를 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금질하다니. 고행도 이만한 고행이 없다. 이 모든 고역을 견뎌내는 까닭은 내가 아닌 것을 벗겨내고 뽀송뽀송한 본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시련은 수단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 목적이 변변치 않다면 시련은 가치 없다.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맞는 군대처럼.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시즌 2도 이른바 "군대를 안 가야 할 101가지 이유" 같은 제목의 책을 눈앞에 들이민다. 다른 점이 있다면 넓어진 세계관이다. 영리하게도 세계관의 확장에 딸려 오는 장르적 허용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엉성한 얼개가 초래한 위협을 이리저리 헤쳐나간다. 박성우는 1년 만에 몸짱이 되어서 왔다는데, 나의 벌크업은 왜 늘 살크업으로 끝나고 마는지 모르겠다.
시즌 1을 다큐가 아닌 장르로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은 한호열의 몫이 크다. 그는 풍선이 터지기 전에 공기를 빼내야 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걸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함께 능숙하게 해낸다. 이 드라마가 그저 한호열이 없이 다큐로 남아있었다면 아마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전에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시즌 2에서 한호열은 풍선이 되어 점점 부풀어 오른다. 이는 얼핏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이전 여정에서 그가 마주한 장면들은 그야말로 말을 잃게 만드는 현실들이니까.
캐릭터에게 큰 시련을 부여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캐릭터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환점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캐릭터의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시련이라면 더욱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한호열이 태블릿에 미리 적어놓은 대답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자신이 처한 상태마저 웃음으로 풀어내는 듯하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뭘 할 수 있는데... 마치 보여줄 의도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들켰다면서 퀘스트 진행에 필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npc처럼.
그 시점부터 한호열은 트로이 목마가 된다. 트로의 목마의 핵심은 기만인데, 누구도 대놓고 침범하려는 악성코드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기만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목마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이든 모든 목마를 악성코드를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호열이 실어 날랐던 코드도 다운로드가 완료되기 전에 백신 프로그램이 삭제해 버렸다.
한호열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