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엘리카메라 연남점)

나의 아지트 소개 1

by 윤굴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아지트, 도피처 같은 곳이 필요하다. 현실을 잊고 위로받을 수 있는 소설 속의 나무집 같은 장소가 있어야 다시 현실에 와서도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곳을 올해 발견했다.


나는 작년 초에 필름카메라를 샀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필름 카메라 상점에서 구매를 했는데 내가 상상한 그대로 따뜻했던 곳이었다. 필름카메라를 파는 그곳은 1, 2, 3호점이 있는데 내가 카메라를 산 것은 2호점, 그리고 내가 많이 방문하는 곳은 1호점이다.

1호점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카메라를 구경할 수 있는 쇼룸인데, 이 1호점이 바로 내가 올해 봄, 여름, 가을 동안 힘들 때마다 혼자 가서 위로받고 힐링 받고 오는 곳이다. 그 쇼룸 안에는 많은 사람이 기증한 카메라, 상점 주인께서 몇 년을 걸쳐 모으신 카메라, 그리고 그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남동 골목과 골목을 지나, 따뜻한 노란 불빛의 상점 안으로 들어가면 몇십 년 전 누군가의 소중한 사진을 찍었을 카메라들이 반겨준다. 상점에 들어가서 카메라들도 한번 만져보고, 내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맡기고, 직원분들과 함께 카메라와 사진 찍기에 대한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필름 몇 통을 사고, 마지막으로 방명록에 이름을 작성하고 나온다. 짧으면 20분, 길면 30분 정도 이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 무척 따뜻한 기억이자 위로로 남는다.

엘리카메라에서 내 카메라와 찍은 사진


이 상점은 나에게 여유를 준다. 사회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변화한다. 사람들도 그래서 더욱 빠르게 살아가려고 한다. 효율과 신속함을 추구하게 된 사회에서 나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여유로워진다. 필름 카메라로 신중하게 한 컷씩 찍고, 현상을 맡기고, 몇 시간을 기다려서 사진을 받는다. 상점에서 이렇게 천천히 찍은 사진을 현상할 때 나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상점은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을 때 카메라 상점의 사장님은 “세상에 나쁜 카메라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더 화질이 좋고, 기능이 많고, 가볍고, 쉽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카메라를 찾는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는 이렇지 않다. 필름카메라는 사실 요즘의 필요와 맞지 않는 물건이다. 사진을 찍자마자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36장 정도를 찍고 딱 그 필름을 현상해야만 사진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찍던 중간에 필름에 빛이 새도, 필름이 끊겨도 확인할 수 없는 매우 번거로운 카메라다. 성능도 좋지 않다. 선명한 화질도 없고, 줌을 당길 수도 없다. 사진을 확인하려면 현상을 맡기러 카메라 상점까지 와서 필름을 맡겨야 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현상한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필름 한 롤 가격도 거의 만원이기 때문에 사진을 원하는 만큼 많이 찍을 수 있지 않다. 하지만 카메라 상점의 사장님과 그 손님들이 필름카메라를 원하는 이유는 필름카메라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그 특별한 특징을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어서인 것 같다.


내 카메라의 렌즈는 줌도 안되는 카메라지만 보케가 예쁘게 맺힌다. 내 카메라는 매우 무거운 수동카메라여서 모든 설정을 직접 해야 하지만, 이 카메라로 직접 천천히 초점을 맞춘 후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조절하고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 때 더 재미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내가 쓴 필름은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유통기한이 지나서 더 예쁜 필름만의 색감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는 특징들이지만 나는 이 특징을 가진 특별한 내 카메라를 사랑한다. 아마 이런 것처럼, 여러 다양한 카메라들을 다 좋아해 주고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의 공간이어서인지 이 공간에서 더 따뜻함을 느끼는 것 같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칠 때, 한 번쯤 이 필름카메라 상점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특별한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이 카메라들을 사랑하시는 사장님과 직원분들을 만나면 나한테도 그랬던 것처럼 여유와 따뜻함, 그리고 지친 사람이라면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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