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막내 생활
내 첫 아르바이트는 스무 살 겨울에 화장품 드럭스토어에서 시작됐다. 면접을 본 뒤 단번에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눈이 왔던 것 같다. 보라색 컨버스 위로 스며드는 얼룩진 한기를 맞으며 당시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는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했다. 축하해. 너랑 잘 어울려.
사실 나는 내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조차 헷갈려할 정도로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객으로도 자주 드나들지 않던 곳이라 무모한 환상이 더 크게 피어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보면 어쩐지 어린 시절에 레고로 만들어내던 알록달록한 공간들이 떠올랐다. 화사하고 아기자기하고 선명한 분위기. 제멋대로 만들어낸 이미지 속이라 더 대책 없는 시작이었다.
나는 나이로도 경력으로도 막내였다.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막내는 못 되었고, 우당탕탕 와장창창 뛰어다니던 막내. 평소에는 덜렁거리는 편이 아닌데 왜 출근만 하면 포스 전선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재고와 비품을 혼동해서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울에 유리 세정제 대신 락스를 뿌릴 뻔한 적도 있었다. 나의 수많은 실수들은 다행히도 대부분 ‘할 뻔’에서 끝이 났다. 분사 스프레이를 누르기 직전에, 다다다 달려가 락스와 유리 세정제가 다른 거냐고 멀건히 묻는 나에게 같이 일하던 언니는 대답했다. 당장 내려놔. 네 손가락이 위험해.
30초마다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라는 문장을 기계적으로 뱉어냈지만 정작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건 손님이 아니라 나였다. 모르는 게 줄어들기는커녕 자꾸만 늘어나서 민망할 때에는 도움 멘트를 외치는 언니 옆에 슬쩍 쪼그려 앉아 말을 붙였다. 저 도움 필요한데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한 번은 두 번이 되었고 두 번은 두 번으로 끝난 적이 없었지만 언니들은 귀찮은 기색 없이 웃으며 앞장을 서 주곤 했다.
같은 시간에 근무하던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어른 같았다. 다른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여유는 나이와 전혀 무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성인이 아닌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으니.
언니들은 내 수많은 처음에 기꺼이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제품 셀링을 하는 법, 교대 정산을 하는 법, 물걸레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그렇게 낯선 사람 앞에서 얼어붙는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쳤고, 대걸레는 지그재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생활 지식이 놀라운 수준으로 부족했던 나는 눈 오는 날 매장 앞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넓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배운 것들은 일뿐만이 아니라 그 뒷면에 담겨있는 마음들이었다. 제품 위치를 암기하는 게 느렸던 내가 점장님께 싫은 소리를 들을까 봐 대신 미리 변명을 해두는 것. 그럼 네가 따라다니면서 가르쳤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꾸지람을 대신 받아내고도 내색하지 않는 것. 그런 마음들을 나는 늘 한 박자씩 늦게 알아채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 대신하기에는 따뜻하고 단단해서. 나도 그 단단한 방패 뒤를 벗어나 비슷한 온도를 되돌려주고 싶어서.
언젠가 테스터 제품 청결화를 맡게 되었을 때, 내 키에 닿지 않는 상품들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적이 있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클렌징 티슈를 꺼내던 나에게 언니는 말했다.
사다리 위에 올라가 봐요.
거기 있으면 손님들이 말을 잘 안 걸어요, 엄청 바빠 보이거든, 하고 씩 웃어주는 언니의 말에 나는 푸흐 웃으며 사다리를 잡았다. 대단한 높이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며 걸음을 조심히 내디뎠다.
지상에서 고작 몇 미터 떨어졌을 뿐인데 공기는 너무도 고요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우리의 인사말과 손님들의 발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약간의 비현실과 약간의 해방감이 뒤섞인 먹먹함. 언니가 보여준 세상은 허공을 떠도는 비눗방울 안에 잠시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사다리를 내려오는 나에게 언니가 다시 다가왔다.
나는 저 위에 올라가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정신없는 와중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 그러니까 다음에는 올라간 김에 좀 쉬다 내려와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매뉴얼에는 없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라는 말을 늘 덧붙여서 인사하던 사람이라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질 것 같은 분위기를 내뿜던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에게는 이 일이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 착각했나 보다. 그렇게 내 오만을 한 글자 고쳐 나갔다.
학원 조교로 주 5일 출근하게 되면서 예정보다 이르게 이 일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점장님께 다정함을 많이 배워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점장님은 다시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말로 대답해 주셨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나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시급도 높고 육체적 피로감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꽤 자주 그곳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단순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기보다는, 뭐랄까, 나는 그 세계를 좋아했다.
볼 터치용 브러시로 먼지를 터는 세계라서 좋았다.
같은 인사말을 각자의 어조로 울리는 세계라서 좋았다.
도움을 계산 없이 주고받고 웃음으로 답례하는 세계라서 좋아했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보면 엄마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느냐는 딸의 물음에 너희 엄마는 나에게 세상을 주었거든, 하고 대답하는 아빠의 모습이 나온다. 내가 그곳을 좋아했던 이유도 아마 같을 것이다. 내 첫 아르바이트가 나에게 가르쳐 준 세상은 매장을 비추던 하얀색 조명보다 밝고 화사했다. 마냥 환하지만은 않아서 오히려 안심되던 세상이었다.
며칠 전 같이 일하던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귀엽게 자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의 연락이라 그런지 한참이나 기분이 좋았다. 만날 날짜를 정한 뒤 언니는 덧붙였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요. 빌려줄 테니까 편하게 읽고 돌려줘요.
책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라 좋았다. 다시 만날 때는 내가 책갈피라도 꽂아서 돌려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내 세상은 또 한 칸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