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or someone like you
늦은 3월의 아침에 익숙한 번호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늘 날씨 딱 네가 엄청 좋아할 것 같은 날씨야. 창문 잠깐 열어봐.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커튼과 블라인드와 햇빛까지 한 겹 걷어냈던 기억이 있다. 나무에 벚꽃이 옅게 피어나기 시작하던 날이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텁텁한 봄의 공기를 잊게 만들어줄 정도로 새하얗게 눈부시던.
벚꽃은 늘 나에게 끝을 생각하게 했다. 과연 내 눈에 언제까지 예쁠까, 꽃잎은 언제 떨어질까. 그래서 그날도 화사함과는 거리가 먼 문장들 사이를 헤엄치며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너는 언제까지 나에게 그런 문장으로 인사를 대신할까,
언제까지 나를 좋아할까 하는.
언젠가부터 표정이 잘 읽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 눈에 띄는 당황함, 지워지지 않는 피곤함 등등.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 애 생각이 자주 났다. 좋아하면 닮아간다던데 나는 왜 이제서야 뒤늦게 점점 투명해질까. 진작에 내가 너를 닮았다면 나는 나를 좀 더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누군가를 좋아할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묻는다면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늘 그랬다. 네가 말하는 영원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일을 기다리게 되고, 나의 내일에 네가 있을 거라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주 웃게 되고. 연애 감정과 우정의 차이가 무엇일지 아주 오래 고민했는데 그 답은 이러한 불안하고 흐릿한 설렘이었다. 싫증을 쉽게 내는 나에게도 단 한 번을 지겨워지지 않던.
언젠가 그 애가 내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고, 내 팔에 스쳤던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는 그 모습이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내 현실이 영화보다 아름다운 때가 있다면 그 시절이었을 테고, 그럼에도 영화와는 다르게 평범하고 평범한 순간들의 연속이라 그게 참 좋았다.
내가 끝을 이야기했을 때 그 애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자신은 평생 기억할 테니 나도 잊어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했던 부탁이 끝인사로 남아서일까. 나는 그가 아니면 그와 닮은 사람이라도 필요했고,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감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고작 일 년을 조금 넘게 만나고 그 잔상을 평생 동안 지고 가는 미련한 짓을 내가 하고 있어도, 그가 옅어지는 것보다는 그냥 그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드디어 완전한 끝이 났구나, 라고 깨달은 순간은 우스울 정도로 단순했다. 현재의 시간을 사는 그 애의 아주 작은 조각을 발견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이 절대 다시 못 볼 얼굴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을 때 신기하게도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며칠 전 새로 산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맞추면서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익숙한 숫자들을 나열했다. 그 애의 생일을. 그 숫자열이 자각의 범위를 벗어난 지는 한참이지만,
습관이지 너는, 나한테.
우리 아빠 전화번호 끝자리는 내 생일로 끝나는데, 내 휴대폰 잠금화면 비밀번호는 아직도 그 애 생일로 끝나서. 나는 그게 늘 미안했다.
그와 내 생일 사이에는 딱 벚꽃이 피고 질 만큼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 그 시간을 너무 오래 빌려 썼으니 돌려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물쇠를 돌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번호를 비밀번호로 맞췄다. 그 번호가 날짜가 된다면 늦은 여름의 어느 하루이겠지. 봄이 아닌 여름의 시간을 자물쇠에 새겨 넣었다. 그제서야 나의 계절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벚꽃이 깜빡 흩날린다. 어떤 꽃은 그렇게 피고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