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30일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한글도 숫자도 엄마 등에 업혀서 배웠으니까. 세 살 무렵 외출을 하면 나는 길거리에 보이는 간판과 자동차 번호판을 죄다 읽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단 한 번도 귀찮음이나 싫증을 목소리에 흘려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세상의 언어를 익혔다.
비가 오면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비 맞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으니까. 여덟 살의 장마철에 엄마는 고작 10분 거리인 등굣길에도 늘 우산과 수건으로 나를 감싸 안고 다녔다. 나에게 단 한 방울의 빗물도 닿지 않도록.
사실 나는 여름 비를 싫어하지 않았어. 그렇게 안겨서 학교 가는 길을 꽤 좋아했어. 비 오는 날마다 엄마가 입혀주던 분홍색 원피스는 목둘레가 너무 좁아서, 입고 벗을 때 힘이 들어서, 그래서 어린 마음에 괜히 짜증을 냈던 거야.
우리는 분명 다르지만 그럼에도 나에 대한 출처 표시를 적어본다면 첫 문장은 당신이겠지. 그렇게 챙김 받아본 덕분에 적어도 그걸 감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자란 것 같다. 내가 우산을 펴는 짧은 시간 동안 뒤에서 조용히 비를 가려주는 마음을 알아채고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자랐다. 그 모든 걸 기억하고 돌려주겠다고 감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늘 노력하고 싶어 진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잠옷 차림으로 나란히 소파에 앉아 토마토를 먹던 아침이었다.
엄마, 있잖아.
선물 받으면 인증 사진 찍어서 상대한테 보내주라고 내가 처음 생일선물 받아온 날부터 그렇게 가르쳐줬잖아.
스무 해를 넘게 살고 그제야 둘러보니까 나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더라고.
사실 요즘에는 나도 어느새 잊고 미루면서 살아가는데,
그래도 나는 엄마가 나한테 그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아직도 낡은 서랍 당기듯 그녀가 가르쳐준 세상을 가끔씩 꺼내본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그저 조용히 웃었다. 토마토는 입맛이 다른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