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아는 언니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도서관 갈 건데 언니는 어디로 갈 거야? 립밤을 찾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며 묻자 언니가 나는 저녁 한 번 더 먹으려고, 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립밤을 찾지 못했음에도 시선을 돌려 언니를 바라봤다. 아까 제대로 못 먹었어? 양이 부족했나? 걱정을 담아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나에게 언니는 그게 아니고, 하며 대답했다.
최근에 하숙집에서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저녁 먹는 시간밖에 없거든. 얘기할 겸 한 그릇 더 먹지, 뭐.
아, 얕은 감탄사가 튀어나왔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든 뒤 나보다 키도 체구도 작은 언니가 아까 얼마만큼 먹었던지 잠시 되짚어보았다. 저런 비효율을 감수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마음이 모여야 할지 생각하며.
열세 살 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 대해 한 가지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 직전의 아주 추운 하굣길이었고 집 방향이 달랐던 우리는 주로 학교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골목에서 헤어졌다. 그날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골목 앞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우리 학교 주위로 딱 한 바퀴만 더 걷고 갈래. 나는 그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교문 앞 분식점 아주머니는 팔짱을 꼭 끼고 걷는 우리가 정말 사이가 좋아 보인다며 웃으셨다.
우리는 걷고 걸어서 결국 한 바퀴가 아니라 다섯 바퀴쯤 빙빙 돌았다. 그날의 추위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고, 도대체 어떤 대화를 그렇게 길게 나누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마지막 타원을 걸어 나갈 때, 분식점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물어보셨던 한 마디만이 떠오른다.
너희 벌써 몇 바퀴째 걷는 거야.. 그렇게 좋아?
그 당시의 나는 그게 그 친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걸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애와 더 오랜 시간을 같이 있고 싶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체온이 낮은 나는 결국 그날의 한기를 이겨내지 못해 아주 오랜 감기를 앓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 따위는 조금도 따져보지 않은 채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속도가 학창 시절보다 더디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씩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밥은 같이 먹는데, 따로 만나기에는 시간이 없고, 이래서 어느 세월에 친해지지, 하는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엄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나 어릴 때는 친구 한 명이 심부름 있다고 하면 우르르 다 같이 따라가고 그랬거든.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데, 그렇게 뭐든지 같이 해서 더 친해졌던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너도 그렇고 요즘 대학생들은 누군가에게 선뜻 시간을 내어주기에 너무 바쁘잖아. 그게 좀 아쉽네.
그렇네, 하고 순간 깨달은 건 그저 그 사람을 덜 좋아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한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시간은 빈틈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늘 그 사이를 비적비적 벌려놓았다. 거창하게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친해지고 싶다면.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장 타고 있던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편 열차로 달려가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장르의 영화를 같이 보겠다고 꾸역꾸역 앉아 있는 식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다가 결국 영화의 끝에 졸아버릴 때면 스스로가 어이없고 웃기기도 했다. 말끔한 모습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로와 헛걸음을 숨겨두었는지 스스로는 아니까.
그래서 반대로 내가 그런 마음들을 받을 때는 더 소중하게 끌어안게 되는 것 같다. 관심 없는 공연을 내가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부산까지 가 주었던 친구와, 울고 있을 때 달래주려 아르바이트 시간을 바꿔가며 달려와준 사람과, 입이 짧은 나에게 식사양을 맞춰주고 집에 가서는 다시 제대로 된 밥을 먹던 그 애처럼.
나도 좋아하는 사람과 걷는다면 최단 거리를 무시하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는 수고가 아까워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전부터 먹고 싶던 케이크가 있다며 다음날 만나자고 연락을 보내온 날도 비슷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내일의 계획을 완벽하게 짜 놓은 데다, 케이크 가게는 우리 집에서 꽤나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러자고, 내일 보자고 답장을 남겼다.
그날 아침에 분홍빛 수색의 향수를 뿌리려다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완전히 박살이 났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을 찡그리고 실눈으로 향수병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깨어진 유리가 단 한 조각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텅 빈 향수병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보니 깨진 바닥면이 병 안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한테는 한 조각의 유리파편도 닿지 않도록, 스스로를 긁으며 티 나지 않게 안쪽으로.
나도 어쩌면 생색내지 않으려 노력할 뿐 조금씩 깨져가는 중일지도 모르지. 상대방에게 시간을 쓴 만큼 나의 잠을 줄였고, 아픈 날에는 만나기 전에 진통제까지 먹어가며 무리하던 날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깨물어 버릴 정도로, 그 정도의 가치를 갖는 일들이었다. 그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늘 하나의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가끔씩 상대방이 “사실은...”하고 말줄임표 뒤에 꺼내는 말들을 좋아한다. 사실 나 아이스크림 별로 안 좋아해. 사실 나 밴드 음악에 관심 없어. 그런데 그냥 네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나도 같이 하고 싶었어. 그런 귀여운 고백들은 내가 충분히 세심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숨어 있던 애정을 발견하게 해 준다.
그 말에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밝게 웃어줄 거라는 확신이 생기면, 우리가 그 정도는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케이크를 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나도 가볍게 털어놓아 보았다. 나 지금 너 보려고 한 시간 이십 분 거리를 버스 타고 왔다고, 집에는 도서관 간다고 해놓고.
친구는 세상에나, 하고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