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DOG+BRANDING 03
필자는 12년 전쯤 모 대기업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브랜딩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솔직히 그 당시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을 대부분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잘 모를 때였다. 참고로, “스페셜티 커피”는 북미의 ‘스페셜티 커피 어소시에이션(SCA, Specialty Coffee Associations)’이 정한 기인 공인 커피 테이스터(SCAA) 또는 면허를 소지한 Q 그레이더(CQI)에 의해 100점 기준에서 80점 이상의 등급을 받은 커피를 지칭한다.(특히 커피의 풍미, 향미, 밸런스 같은 맛의 기준 외에도 대규모 공장식으로 커피를 생산, 포장 유통하는 방식이 아닌 로컬의 소규모 커피생산자들이 전통적인 방식등을 사용하여 커피를 생산하는 지속가능한 커피 산업을 일반적으로 지향한다.) 더 간단하게는, 일반적인 스타벅스 커피보다 1.5~2배 정도 비싼 프리미엄 커피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진행 당시 지금은 꽤 유명해진 블루 보틀, 그리고 한국에는 조금 덜 알려진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등 3개의 브랜드에 주목했는데, 스텀프타운과 인텔리젠시아 브랜드는 몇 년 뒤 떠오르는 프리미엄 커피시장인 스페셜티 커피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독일의 거대 식품기업 JAB Holding Company에 차례차례 인수되었다. 그리고 블루 보틀 역시 그 이후 JAB의 경쟁기업 네슬레에 앞의 두 브랜드와는 규모가 다른,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되었다. 필자가 오래전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리서치를 진행하던 때는 시카고의 힙스터들에게 인기 있었던 나름의 화려함을 가진 브랜드, 인텔리젠시아가 매우 매력적이다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달리 블루 보틀에 대해 깊은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인텔리젠시아의 2 개위 윙, 중심의 커피잔, 그리고 그 위의 별이 있는 스웩으로 가득 찬 브랜드로고는 프리미엄 커피 산업의 새로운 루키로서 화려한 스타 탄생을 보는듯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브랜드 네임과 이름 그대로의 스카이블루 컬러의 파란 물병(블루 보틀) 로고는, 필자가 보기에 너무나 얌전하게 자신의 브랜드를 드러내길 주저하는 것 같이 보였다. 오늘 소개할 블루 보틀의 브랜드는 스스로의 겸손한 브랜드 뉘앙스와는 다르게 북미나, 일본, 한국에서 핫한 커피 브랜드로서 포지셔닝되어있다. 그런데 필자가 12년 전 느꼈던 블루 보틀에 대한 이미지는 지나칠 정도로 미니멀하였고, 그 브랜드 네이밍의 기원이 커피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지금이야 블루 보틀은 “커피업계의 애플”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있기도 하지만, 파운더인 전직 오케스트라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 제임스 프리먼은 어떤 생각으로 그러한 브랜드 네임을 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궁금증은 블루 보틀의 오피셜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그 스토리는 1600년대 말 중부 및 동부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한 터키군에 포위된 비엔나, 그리고 궁지에 몰린 비엔나를 구하기 위해 폴란드로 지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파견된 비엔나의 전령, 프란츠 콜시츠키의 영웅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커피 여정이다. 터키어와 아랍어에 능통한 콜시츠키가 이후 폴란드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전 후 터키군들이 남기고 간 콩자로(커피자루)를 알아본 콜시츠키가 비엔나 시장에게서 받은 상금으로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블루 보틀-Bule Bottle)를 열어 비엔나에 커피 컬처를 소개하였고, 제임스 프리드먼은 그로부터 319년이 지난 후 콜시츠키의 용감한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의 가게를 블루 보틀 커피라고 네이밍 하여, 그의 커피 브랜드를 전개하였다.(정말 놀라운 스토리다.)
그런데 잠깐! 어딘가 비슷한 전개 방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장구한 역사의 기간과 비즈니스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애플의 브랜드 로고 - 성서 속 이브가 한 입 배어 문 사과 – 와 비슷한 결이 느껴지는 인문학적 스토리다. 애플과 블루 보틀은 다른 산업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꽤나 긴 시간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인 프리미엄, 오직 핵심에 집중하는 미니멀함을 추구한다는 점이 꽤 비슷하다. 특히 블루 보틀 같은 스페셜티 커피는 높은 가격으로 인한 소비자의 가격저항선이 있는 편이지만, 그로 인한 영업이익률이 높아질 테니,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퀄리티 있는 좋은 원두로 승부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커피란 카페인이 들어있는 기분을 환기시키는 캐주얼한 음료로 맥심 인스턴트 커피에 대체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일반적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브랜드 커피 산업의 대세는, 적절한 브랜드 콘셉트와, 적절한 디자인을 만든 다음, 최대한 신속하게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여 10개, 100개, 1000개, 또는 그 이상의 숫자를 목표로, 마켓을 정복해 가는(마치 블루 보틀 스토리의 터키군이 유럽을 정복해 가듯) 전쟁과 같은 형태의 사업전개 방식이 일반적이다.(당연히 커피의 퀄리티나 맛, 브랜딩은 여기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지구라는 환경적 이슈를 빌어오자면, 커피도 땅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땅에서 수확되는 커피의 양은 제한적이다. 커피란 작물은 또한 사과와 같은 과수처럼,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극심하게 받는다고 한다. 커피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온도는 18~20°C 사이이며, 그 이상의 온도 상승은 커피 나무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온다고한다. 특히 2050년도에 이르면, 현재 커피 경작지의 50% 이상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환경 분야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다. 커피를 깊이 사랑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것을 원하겠지만, 로컬 커피 생산자들이 세계의 각 지역에서 정성 들여 경작한 원두를 좋은 철학과 기술을 통하여 로스팅한 제대로 된 커피 한잔을 원하는 디테일한 취향과 더불어 환경에 대한 사려깊게 공감하는 소비자도 늘어나리라 기대해 본다. 마찬가지로,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업가에겐 커피란 테마가 단순히 신속한 사업확장의 수단이기보단, 긴 호흡을 통하여 가슴에서 우러나는 묵직한 한방이 있는 커피 브랜드를 전개하는 것도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블루 보틀의 이야기로 돌아와, 성수의 블루보틀을 방문하면, 심플한 커피 메뉴 구성, 눈에 거의 잘 뜨이지 않는 그레이시한 화이트 배경의 옅은 스카이 블루 컬러 로고가 마킹된 커피 패키지등, 마케팅 전문가가 보기에 지나치게 심심할 정도의 매장 환경이 보일 것이다. 이미 성공의 대열에 오른 블루 보틀이야 당연히 그러한 미니멀한 전략이 얼마든지 통한다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작은 브랜드든 큰 브랜드든, 그다지 화려하지 않고 업의 핵심과 진정성에 집중하는 브랜드는, 홍보하기에 긴 시간의 고통과 노고가 필요한, 쉽지 않은 방식의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치열해지는 경제, 환경, 자원 이슈를 고려할 때, 앞으로는 업에 대한 진정성을 브랜딩 디자인에 겸손하고 효율적으로 녹여내는 방식이 주류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고언 하자면, 브랜드에 담긴 생각과 콘셉트의 정수와 긴 호흡의 실행이 화려한 브랜드 로고나, 현란한 디자인의 패키지보다 몇 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에 소개하지 못했지만, 그런 긴 호흡으로 자신만의 커피 아이덴티티를 단단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한국의 매뉴팩트와 테라로사 같은 브랜드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