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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pr 27. 2023

죽은 새를 묻어주는 마음

[Book] 작별인사, 김영하

(책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미리 알고싶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고양이를 고양이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사람과 똑같은 외형을 가지고, 적절하게 탑재되어 있는 공감능력과 지적호기심이 있으며 삶의 유한함에 대한 함수값을 입력시켜 유한한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잘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라면, 콕 집어 "넌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어떤 근거를 댈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이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바깥세상과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지적 사고를 할 수 없으며 적절한 자극에 감동이나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면, 그는 사람으로서의 필수조건을 잃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 본연의 존엄이 있으며 그것을 존중받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를 두고 살아간다. 

  심지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인권이란 거추장스러운 단서를 달아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인가. 그리고 그 존엄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람은 삶을 선택할 수 없다.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고통을 받고 힘겹게 살아간다. 어떤 종교에서는 우리가 태어나서 고통받는 것은 인류의 기원에서 저지른 원죄 때문이라고 하며 우리의 힘겨운 삶에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기도 한다. 

  기계의 세계는 다르지 않은가. 불필요하거나 연약한 육체에 얽매일 필요 없이, 하나의 정신으로서 존재하며 스스로 발전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는 인간의 세계보다 훨씬 비파괴적이고, 비소모적이고, 덜 잔인하고, 쓸데없는 고통이 적은 합리적인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째서 존엄하며 인간다움은 의미를 지니는가. 

  왜 사람과 거의 흡사한 슈퍼 울트라 휴머노이드가 개발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걸까? 




  이 책의 주인공 철이. 

  거의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진 철이는 아빠인 줄로만 믿었던 제조자와 함께 자신이 인간임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살아왔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이 사실은 기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며 혼란을 겪는다. 

  철이는 기계세계의 지도자 달마를 만나며,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들이 의식의 세계에서 '집단 지성'을 이루며 스스로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육신의 거추장스러움 없이 자유로이 살아가는 정신으로서 영속할 수 있다는 선택권을 갖게 된다. 


  철이는 어느 날, 사고로 몸을 잃게 되고, 정신만 남아 뜻하지 않게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철이는 행복했을까? 배고픔도, 졸림도 없이 24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사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효율적이고 낭비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살랑이는 바람, 끝없는 생각을 중단할 수 있게 해주는 육체적 활동,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느껴지는 부드러움,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며 잠드는 순간. 이런 것들이 없이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철이는 집단 지성의 일원으로 영속할 수 있었지만, 복제인간 친구 선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다시 육체 안에 자신을 가둔다. 그리고서는 비로소 "인간다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자신이 인간인 줄만 알았던 때에는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기계의 지성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일들. 매일을 봐도 매일 다르게 느껴지는 지는 노을과 밤하늘의 별, 선이의 냄새, 모닥불의 따뜻함, 개를 산책시키는 시간. 기계의 눈으로는 불필요하고 에너지 소모적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감상 속에서 철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사고로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집단 지성의 일부로 영원히 사는 길을 버리고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계로서 살기 싫었던 기계, 철이. 이것이 철이의 작별 인사.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이미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한다. 선이가 늘 하던 이 말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파랗기만 하던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다. 노을이 진하니 내일은 맑을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석양이 기세를 잃고 이제 검고 어두운 기운이 하늘 한가운데에서부터 점점 넓게 번져가며 거칠고 누른 땅을 덮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첫 챕터를 다시 읽었다. 

  철이가 죽은 새를 땅에 묻어주던 장면. 

  철이는 사람과 기계의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결국 기계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으로서 죽어가길 선택한다. 죽은 새를 보면 왠지 묻어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 고통과 힘듦이 연속되는 유한한 삶일지언정 태어나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 그것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로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는 주제에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북극곰이 바다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눈물짓는 이중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 인간, 약하디 약한 하찮을 지경의 육신을 가진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그렇게 싫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인간답길 원했던 기계 철이가 죽음 앞에서 의연히 선택했던 인간의 삶이 나에게는 공짜로 주어져있다. 힘들어도 가보자. 내 이야기의 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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