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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Dec 10. 2023

조용히 걷고 느끼는 여행

[여행] 일본마쓰야마 (2023. 12. 4 - 12. 8)

  내 몸에는 떠돌이 DNA가 있을지 모른다.

여행을 안 가고 몇 개월이 지나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며 껀수(?)를 잡으려고 기회를 호시탐탐 보다가 적절한 때가 오면 바로 떠난다. 이번에 꽂힌 것은 일본 소도시 여행.

도쿄, 오사카/교토, 후쿠오카/유후인. 일본의 큼직한 도시는 그래도 몇 번 다녀왔기에 이번엔 사람도 적고 조용하다는 소도시를 노려보기로 했다.


마쓰야마는 마침 제주항공과 연계하여 한국인 관광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도시였고,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도고온천이 있는 곳이어서 쌀쌀한 날씨에 온천이나 열심히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이번 나의 여행지로 선정되었다.




  마쓰야마의 첫인상은 아주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모두 함께 제주항공을 타고 온 한 무리의 한국인들을 토해놓은 공항셔틀버스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신의 숙소를 찾아 떠나고 나자, 이후부터는 여행 전체적으로 조용함이 지배했다. 관광객이 길거리 사람들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명 관광명소들과는 달리, 이 도시의 길에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이나 장바구니를 들고 조용히 걸어 다니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이거지! 이게 소도시 여행의 묘미지! 다소 과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안도 타다오라는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건축하였다는 아름다운 건축물 '언덕 위의 구름' 뮤지엄과 '반스이소'라는 1922년에 지어진 프랑스풍 대저택, 마쓰야마성을 여행의 첫 목적지로 삼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촉촉한 날씨에 우산을 들고 걷는 것도 운치가 있었다. (구글 맵 보랴 사진 찍으랴 우산 접었다 폈다 하랴 손이 4개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언덕위의 구름 뮤지엄
반스이소
마쓰야마 성에서의 전경




나는 일본 유적지를 가서 뭔가를 볼 때마다 어쩐지 심사가 좋지만은 않다.

'이 대저택이 1922년에 지어졌다고? 흥. 우리나라 국민들은 나라를 잃고 힘들어하던 때인데... 이런 대저택을 짓고 사교활동을 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를 더 짓누르고 아시아를 정복할지 궁리를 했겠군!'

'저 갑옷은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싸우던 그 나쁜 넘이 입었던 갑옷이랑 똑같은데? '

'신사? 식민시기에 우리한테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정신을 지배하려 했었지!'

이런 비뚤어진 생각이 들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를 앞에 두고 입을 삐죽거리고 돌아다닌달까...


그렇지만 일본도 일본만의 역사와 그들만의 해석 또한 있는 법이겠지. 현세의 자손들이 그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앞으로의 역사를 써 나갈지도 그들의 몫일테고.

한낱 여행자인 나는 그냥 주어진 대로 보고 주어진 대로 느낄 뿐이다. 역사 앞에서 입을 잠시 삐죽거리며 꼬인 심사가 잠깐 나왔다가도 고즈넉하고 깨끗하며 한치의 과함이 없게 느껴지는 일본의 단정함이 좋아 금세 은근히 웃고 있는 여행자.




  둘째 날에는 소도시 마쓰야마의 근교 소소도시(?) 우치코, 오즈를 둘러보았다.

기차를 타고 어제 내린 비로 아직 안개가 내려앉은 시골 풍경들을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행자의 낭만을 충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치코에서는 옛날극장이라는 우치코자, 상업생활박물관, 가미하가 저택, 고쇼지 등의 볼거리가 있었다. 역사적 의미가 막대하거나 규모가 큰 유적지는 아니지만 소소한 작은 도시 내에서의 역사의 흔적들을 구경하며 조용한 시골길을 걷는 시간 속에서는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의미 있었다.

 사람 한 명 보기 힘든 작은 길에서 갑자기 향긋한 빵냄새가 피어올라 조그만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니 엄청나게 맛있어 보이는 빵을 구워내고 있었다던지... 그 빵을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다음 기차 시간을 놓칠 위기에 놓여 미친 듯이 달리기를 했다던지 하는 소소하고 귀여운 추억.





  오즈에서는 가류산장, 반센소, 오즈성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도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어떤 장소를 보았다라기 보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집에서 사용하는 물이 어디서부터 내려오는지를 꼭 설명해 주고자 번역 어플을 동원해 가면서 우리를 안내해 준 관리자 아주머니를 만났다거나 그냥 지나가던 골목에 있던 아주 예쁜 카페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오는 다리 세 개의 소타상 의자를 만났다거나 하는 우연이 여행에 색채를 더해주었다. (이 집 크레페는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하루에 두 번씩 온천을 했다. 피부가 벗겨지는 건 아닐지 걱정했던 바와는 다르게 피부는 오히려 점점 맨질맨질하게 좋아졌다. 여행자 특유의 긍정적 믿음을 바탕으로 온천물이라서 다르긴 다른가보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물에 몸을 담갔다.

얼굴에는 찬 공기를 맞으며 뜨끈한 물에 허리까지 담그고 앉아 있자니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예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 대중목욕탕이 나왔다는 설명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뜨끈한 물속에 몸을 지지는 걸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걸까? 본능에 충실한 여행!

도고온천 별관 아스카노유


  여행 내내 호텔에서 나오는 조식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타이메시 맛집에도 가고 모츠나베집에서 퇴근한 일본인 아저씨들의 회식자리 옆에 껴서 귤향하이볼을 곁들여 식사를 하기도 했다. 원래 야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호텔에서 밤에 라멘을 공짜로 준다길래 늦은 시간에 라멘을 먹고 얼굴이 호빵맨처럼 붓기도 했다. 호빵맨이 되더라도 여행에 식도락이 빠질 순 없지.

타이메시
모츠나베


  조용히 길을 걷던 시간들이 소중했던 소도시 여행이었다.

아침시간에 선생님과 쓰레기 줍기 활동에 나선 어린 학생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선생님이 시킨 듯) 얼결에 같이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반대방향 교통질서에 적응이 안 되어 자꾸 뒤통수에서 갑자기 차가 나타나는 통에 흠칫흠칫 놀라기도 했고, 평소엔 당이 높다고 잘 마시지도 않는 오렌지 주스를 너무 맛있게 홀짝홀짝 마셔댄 약간의 소심한 일탈도 있었던 이번 여행이 돌아갈 나의 일상에 연료가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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