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같은 사람(14:25-35)

예수를 따르는 자의 마음가짐

by 나무

갈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도 예수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그랬기에 그가 가는 길에는 늘 무리가 따랐다.


하루는 예수가 돌이켜 그 무리에게 말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는 제자들이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후였다. 제자들은 어느 때보다 들뜬 마음으로 예수를 따르고 있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수의 기적은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막연한 기대가 아닌 따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원했다.


이전에 예수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그를 찾아왔었다. 그때 예수는 "내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었다. 즉 예수는 가족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게 우선임을 공표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만물의 회복, 생명을 살리고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의 기적은 늘 한 사람의 존엄을 세우는 기적이었고, 존엄을 훼손하는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예수의 삶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소금. 소금은 음식을 짜게 한다. 그런데 소금이 제 기능을 하려면 소금의 형체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의 기대는 소금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소금은 필요한 만큼 써야 의미가 있고, 남용하면 음식을 망치게 된다. 또한 제 기능을 할수록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그들은 감추기보다 돋보이고 싶어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예수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 어떨까? 예수가 빛나는 보석이 아닌 소금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예수는 그들이 잘 따져보기를 바랐다. 건물을 지을 때 미리 비용과 시간을 계산해야지, 대충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기초공사만 끝내놓고 건축을 포기한다면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사랑을 실천할 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면 그도 나를 사랑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하고 낙담하며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할 수 있다. 감정에 사로잡혀 모든 걸 줄 수 있는 듯이 굴다가 금세 지쳐서 도망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잘해주려고 해 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라는 식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생각보다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 각국의 헌법이 인간의 존엄을 명시하고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비방과 정죄, 시기와 질투, 음해와 모함, 편견과 차별 속에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우하며 존엄한 삶을 지켜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다짐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고난을 겪는 경우가 많을 테다. 예수는 그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결국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금과 같이 형태를 상실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런 예수의 뒤를 한껏 들뜬 마음으로 따라오고 있는 제자들과 무리를 보고 예수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예수를 따른다는 것. 소금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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