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천국(15:1-32)

죄인들과 함께한 식사

by 나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왔다. 그들은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환대했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는 세 가지 비유를 들려준다. 잃은 양에 관한 비유, 잃은 동전에 관한 비유, 잃은 아들에 관한 비유였다. 첫 번째 비유에서 예수는 말한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두 번째 비유에서 예수는 말한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


어떤 의미일까? 세 번째 비유를 살펴보자. 옛날에 한동네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요청은 아버지보고 빨리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요구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들어준다. 아들은 창피한 줄은 알았는지 재산을 들고 먼 타국으로 떠났다.


타국에 간 아들은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고, 재산을 탕진한다. 거기에 흉년까지 들어 더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은 일을 시켜 놓고, 품삯은커녕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 들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왜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그 나라의 백성들이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의 마음만 중요하게 여겼다. 마찬가지로 둘째 아들의 주인은 그의 배고픔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형편을 살피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들뿐 아니라 하인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종으로 사는 삶, 아버지의 집에서 종으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매몰찬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아들은 거지꼴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버지가 동네 어귀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아들을 발견하자마자 목을 감싸고 입을 맞춘 후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아들은 준비한 대로 말한다. "아버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아들이라고 불리기도 염치가 없습니다. 저를 품꾼으로라도...."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렀다. 제일 좋은 옷과 좋은 가락지와 신발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즐기자고 말한다. 잔치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하인들은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기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밭에서 돌아온 첫째 아들이었다. 그는 하인을 불러 물었다. "무슨 일이지?" 하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첫째 아들은 화가 났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염소도 잡아주지 않았으면서 저런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까?"


그는 왜 이토록 화가 났을까? 그는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아, 넌 나와 항상 함께 있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었다가 되찾았는데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는 동생과 겸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하고는 겸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와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잔치를 거부했다.


아버지의 고통을 외면하는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의 궁핍을 신경 쓰지 않는 주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죄인의 회개를 받아들이지 않는 첫째 아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 가다.


예수는 과거를 따지기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천국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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