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리를 택하여 앉을 것인가
예수가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았다. 그 자리를 함께 떡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마침 예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무리를 향해 물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는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우리는 얼마 전 예수가 안식일에 등 굽은 여인을 고쳐주었던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때 예수는 회당에서 가르치다가 여인을 고쳐주었는데 당시 회당장은 예수의 치유가 안식일에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화를 내었다.
그런데 예수가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은 날 하필 예수 앞에 수종병 환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여러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아 있었다. 무슨 상황일까?
얼마 전 예수가 안식일에 등 굽은 여인을 치유한 사건은 금방 소문이 났을 테다. 그러면 당시 예수에게 화를 내었던 회당장은 누구를 찾아갔을까? 자기보다 더 영향력 있는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를 찾아가 그 문제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회당장의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먼저 질문했고, 그들이 잠잠하자 수종병 환자를 데려다가 고쳐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예수는 "당신들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어도 끌어내지 않았겠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즉 너와 관계된 생명이었다면 율법을 생각하기 전에 생명부터 살려 놓지 않았겠냐고 따졌다.
그러고 나서 예수는 한 가지 비유를 언급한다.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가서 앉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왜 그런가? 내가 먼저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이 와서 더 높은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라고 말하면 창피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먼저 끝자리에 앉으면 주인이 와서 올라가 앉으라고 말할 것이고 그때 올라가 앉으면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러울 수 있다. 즉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를 높이는 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예수는 수종병 환자를 고친 후 그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당시 예수는 그 집에 떡을 먹으러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는 왜 그 사람과 함께 먹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냈을까?
예를 들어 한 학급에 키가 매우 작은 친구가 전학을 왔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반에는 그만큼 키가 작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 되자 몇 친구가 나와 그 키 작은 친구와 전학해 온 친구를 부르며 "야, 너희 키 한 번 재봐."라고 말한다고 하면 어떨까? 두 친구는 심각한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종병 환자는 하필 예수 앞에 앉아 있었다. 즉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그를 일부러 데려다가 앉힌 거다. 그렇다면 그가 평소에도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되는 사람이었을까?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자기들의 필요로 급히 데려다가 앉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이토록 무례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즉 꽤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기에 이토록 무례히 행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들일까? 예수는 자기를 초대한 바리새인에게 "당신이 점심이나 저녁에 베풀려면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을 청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또한 예수는 한 가지 비유를 더 했다. 어떤 사람이 큰 자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는데 잔치에 올 사람들이 사정이 생겨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알려 왔다. 그러면 그 주인이 어떻게 하겠는가? 예수는 주인이 가난한 자와 몸 불편한 자들과 시각장애인과 저는 자들을 데려올 거라고 말한다. 즉 평소에 초대받지 않는 사람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상석을 차지하는 건 수종병 환자다. 즉 땅에서 초대받지 못하고 이용당하며 상처 입고 슬퍼하는 자는 신의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사랑의 신에게는 당연한 결과이다. 더 힘들게 고생하는 자녀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참 같잖을 때가 많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이유, 먼저 알았다는 이유 등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을 확대해서 우위를 점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는 수종병 환자를 데려다가 병을 고쳐주고 돌려보낸다. 예수는 그의 불편함과 모욕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가 더 이상 수종병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고,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 마음을 이해하는 자들. 그들은 스스로 낮은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