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13:22-35)

천국에 이르는 길

by 나무

사람은 누구나 천국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천국 문은 좁다. 누구나 가려 하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그러면 왜 문이 좁은 것일까?


천국 문을 누구나 넘을 수 있다면 이 세상과 천국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시기하는 사람은 여전히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여전히 미워하며, 무시하는 사람은 여전히 무시하는데 새로운 환경이 찾아온다고 무엇이 크게 바뀔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천국 문을 열기 위해 애를 쓴다.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 삶을 상정하고 그 삶을 이루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다한다. 입시와 취업이 대표적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그토록 애쓴다.


그러나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상이 실현될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입시의 문, 취업의 문, 결혼의 문을 열어도 여전히 천국은 묘연하고 오히려 지옥이 시작되기까지 한다. 좁은 문을 열어도 천국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천국을 누릴 수 있을까? 예수는 천국에 주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 주인이 문을 열어줘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주인의 든 사람일까?


천국에 이르지 못할 사람들이 소개된다. 선지자들을 죽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선지자들을 죽였을까? 그들은 그들의 천국을 지키기 위해 선지자들을 죽였다. 탐욕, 부정, 부패 등으로 쌓은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얼마든지 타인을 죽을 수 있는 자들. 바로 헤롯과 같은 자들이다. 헤롯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이려 든다.


사람이 누구나 천국 문을 넘고 싶어 하지만, 사람의 모든 노력이 천국에 이르는 노력이 되는 건 아니다. 그중 가장 헛된 노력을 꼽자면, 타인의 삶을 짓밟는 일이다. 자기의 천국을 위해 타인의 천국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전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에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보다 어떻게 그 문을 넘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는 듯하다. 이 문만 넘으면 천국이 나타나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문을 넘기 위해서라면 남보다 더 애쓰고, 남을 돌볼 새도 없이 정진한다. 그런데 정작 그 문을 넘었을 때 내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면 어떤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여건, 일과 쉼의 균형, 교육 환경 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든 선지자는 무엇이 달랐기에 그들은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는가? 신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민족에게 임하는 복을 약속하였고, 선지자들은 백성을 착취하는 자들을 향해 신의 심판을 경고했다.


천국에는 주인이 있다. 그 주인이 바라보는 천국은 함께 누리는 천국이다.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가운데 누리는 천국이다. 헤롯과 같이, 선지자들을 죽인 권력자들과 같이 자기만의 천국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은 그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좁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헤롯과 권력자들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매우 드물게 걸어서 좁아진 길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길을 걸어야 한다. 함께 누리는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keyword
이전 09화겨자씨(13: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