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부자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던 한 청지기가 직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가 재산을 낭비한다는 사실을 주인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직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청지기는 앞으로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그는 농사지을 힘도 없었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꾀를 내었다. 청지기는 장부를 빼앗기기 전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사람은 오십 말로 고쳐주고, 밀 백석을 빚진 자는 팔십 석으로 고쳐주는 식이었다. 그는 자기의 돈도 아니면서 멋대로 아량을 베풀었다. 그는 불의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주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당연히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했다. 그는 청지기가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주인은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비유를 마친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십시오.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초대할 겁니다."
무슨 말일까? 역사적으로 사유재산제도가 명확해진 시기는 여러 시점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17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로크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사유재산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간주했고, 그 내용이 미국 독립선언서나 프랑스 인권선언에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어땠다는 걸까? 국가가 전쟁하기 위해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내줘야 하는 시대였다. 권력의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상 왕이 재산을 독점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왕이 재산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 땅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본래 땅의 주인은 누구일까? 최초의 인간? 그렇지 않다. 땅은 사람보다 먼저 있었고, 사람은 땅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조상들은 땅을 어머니처럼 여기기도 했었던 거다.
그러면 사람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사람은 땅의 주인이 되려 했을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기에 땅의 주인 행세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농업혁명 이후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농작물을 지켜야 할 필요가 생겼을 거다.
그러면 누가 땅을 차지했을까?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고 하늘에 가까워지기 위해 탑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문명의 주인이 되려고 했던 시도를 설명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래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성경은 창조주가 땅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국 재산은 신의 것을 빼앗은 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땅이 아닌 다른 것들은 어떤가? 신이 창조주라는 건 만물이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신은 왜 세계를 창조했을까? 신은 창조 세계 안의 생명들이 충만하게 살아가는 안식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 세계가 참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누가 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렸는가? 신의 것을 빼앗은 사람들. 세계를 자신의 재산으로 삼은 자들이 세계를 신의 세계를 틀어놓았다. 그들은 본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던 것들에 소유를 주장했다. 땅, 짐승, 사람. 그렇다면 불의하지 않은 재산은 무엇일까? 애초에 신의 것을 빼앗아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그 무언가를 사고파는 일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재산은 처음부터 불의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은 불의한 재산 없이 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왕 이렇게 됐으니, 불의한 재산을 계속 쌓아가야 할까? 어차피 너도나도 불의하니 마음껏 빼앗으면 되는 걸까?
사유재산은 불가침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필요로 만들어진 말일뿐이다. 필요로 만들어진 것은 필요가 다하면 유명무실해진다. 천국에서는 재산이 필요하지 않기에 사유재산제도도 필요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천국에 더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재산을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인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인가? 청지기의 비유를 들려준 예수는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참된 것이 맡겨질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면 불의한 재산으로 충성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예수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재물을 섬기는 자는 불의한 재물을 늘려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불의한 재물이어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데 불의한 재물을 사용했다. 그의 마음까지 의로운 마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는 재물을 나누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부자는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 부자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다면 그는 필시 불의한 재물로 가난한 자를 섬기려 들것이다. 그러면 부자는 청지기를 벌하지 않을 수 있다. 부자가 하려는 것을 청지기가 미리 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비웃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나 사실은 재물을 섬기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