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와 세리(18:1-14)

천국을 경험하는 자들

by 나무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과부와 세리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는 거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간절히 원했을까?


먼저 과부는 억울한 일을 겪었다.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가부장제가 극심했던 당시에는 성인 남성이 여성의 권리를 대신 주장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부는 사회적 약자였다. 그러면 세상은 약자를 어떻게 대우할까? 성경은 약자를 보살피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약자를 핍박한다. 왜 그런가. 부자의 돈을 빼앗는 것보다 과부의 재산을 빼앗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부에게 기도해 주고 그 대가로 과도한 헌금을 요구한다든지, 과부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는 일,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돈을 빌려주고 과도한 이자를 받는 방법 등이 있겠다. 이런 방법들은 아마 여전히 성행하고 있을 테다. 약자의 처지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있기 때문이다.


과부는 누군가에 의해 억울한 일을 겪었다. 그렇다면 과부의 삶은 어땠을까? 억울한 일을 겪으면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게 된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정의가 실현되고 억울함이 풀려야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과부의 억울함을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


과부는 재판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재판관이 하필 불의한 재판관이었다. 그는 과부의 억울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과부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재판관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귀찮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랬다.


두 번째 주인공은 세리다.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그는 바리새인과 함께 기도한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다. 자신은 불의한 자들처럼 살지 않기에 감사하다고. 즉 세리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아 감사하다고 기도한 것이다. 이에 세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성전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 가슴을 쳤다. 그는 속으로 '신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였다.


세리를 괴롭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죄책감일 테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도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한다. 죄책감도 억울함과 마찬가지로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세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용서다.


그러니 과부와 세리는 서로 다른 걸 구하고 있었지만, 결국 같은 걸 구하고 있었다. 과부는 정의를 구하고 세리는 용서를 구했지만, 결국 그들은 구원받기를 바랐고, 천국을 원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상황에 맞는 천국을 구한다. 각자가 겪는 괴로움, 곧 각자가 겪는 지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억울함, 누군가는 모욕감, 누군가는 상실감에 빠져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괴로움을 겪는 자들이 원하는 건 천국이다. 괴롭지 않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각 사람에게 필요한 천국은 무엇인가? 과부의 재산을 강탈한 자들은 돈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을 거다. 그들은 자기의 천국을 위해 과부를 지옥에 떨어뜨린다. 또 바리새인이 바라는 천국은 무엇인가? 그들은 특별함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삶, 누구처럼 못 배우고, 찌질하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생각, 그 우월감이 그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천국일 수 없다. 천국은 특정한 사람을 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은 만물의 창조자이자 만물의 구원자이다. 즉 누군가는 이뻐하고, 누군가는 미워하는 신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과부와 세리가 원한 하나님 나라는 어땠을까? 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동시에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천국이었다.


과부의 억울함이 풀리게 되면 사회적으로 정의가 실현되기에 다른 억울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 세리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또 자기의 선택과 관계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몇 번 잘못했다고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은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잘못을 들키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서와 관용이 없는 세상은 서로에게 괴로운 일이다. 즉 세리와 같이 자기의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또 타인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더 이롭다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천국은 무엇일까? 각자에게 필요한 천국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괴롭히는 대상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과부가 억울함에 괴로워했고, 세리가 죄책감에 괴로워했듯이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소외감일 수도 있고, 질투와 시기일 수도 있으며, 억압으로 인한 무력감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아야 한다. 정의, 용서, 사랑, 감사 등 우리의 마음을 개운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냥 대충 살아가고 적당히 사랑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위해 날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처럼, 탄식으로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던 세리처럼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한다.


간절히 구하는 자들에게 천국이 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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