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어울리는 사람
천국은 어떤 나라일까? 정의가 실현되어 억울한 일이 없는 나라, 누군가의 특별함을 위해 누군가가 위축되지 않는 나라, 누군가의 자유를 위해 누군가의 자유가 희생되지 않고 함께 자유로운 나라, 먹고살 걱정은 없는 나라 등 각자가 더 원하는 천국이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천국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 천국일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겠지만, 어느 정도 천국을 닮은 부분도 많을 거다. 타국의 식민 지배를 받거나 신분제도와 같이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는 제도도 사라졌다. 또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집 걱정, 돈 걱정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법과 제도, 공권력이 잘 작동해서 크게 억울한 일 없이 살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그러나 누구나 어느 정도의 천국은 경험하고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한 평화와 안식은 아니더라도 불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천국의 단면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 태어나길 잘 태어난 게 가장 큰듯하다. 식민 지배나 신분제도가 사라진 시대,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난 환경, 큰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 억압과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정치제도 아래 사는 것. 또한 부모님을 잘 만나 큰 걱정 없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는 큰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든 사람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삶을 지켜내고자 의학을 발전시키고 최선을 다해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들 등 그밖에 선한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어서 지금의 누군가가 그 혜택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현재에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어떤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러기에 예수는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했다. 즉 어떤 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부분적으로는 천국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천국을 경험하고, 영원한 천국을 누리며 산다는 건 어떨까? 한 부자 관리가 이에 대해 예수께 물었다.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합니까?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관리는 왜 예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을까?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마음을 추측해 보자. 예수께서는 관리에게 십계명을 잘 지켜 행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관리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왔다고 말한다. 아마 관리는 실제로 그랬던 것 같은데 예수가 그의 말을 부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했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오세요." 그러자 관리는 크게 마음이 괴로워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청년은 왜 기다렸다는 듯 계명을 잘 지켜왔다고 말했고, 재산을 나눠 주라고 하니 괴로워 떠나갔을까?
관리가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보기에 예수가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또한 이를 마음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굳이 드러낸 것은 그가 예수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에 그랬을 거다. 계명을 잘 지켜 왔으니,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예수는 관리에게 부족한 게 있다고 말한다. 예수는 왜 재산을 팔아 나눠주라고 했을까?
우리는 앞서 우리가 누리는 부분적 천국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아봤다. 마찬가지로 청년이 부잣집에 태어나 율법을 잘 지키는 관리로 성장한 것도 다르지 않다. 청년이 누리는 천국은 그가 율법을 잘 지켜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거저 주어진 천국을 누리고 있는 부분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거저 주어진 천국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면 그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감사한 자는 받은 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국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는 영원한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관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괴로워졌다. 그는 자기의 천국만 중요했지, 타인의 천국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나만 구원받고 행복하면 됐지, 다른 이가 가난해서 배를 주리든 억울해서 울든 큰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예수가 생각한 천국은 어떤 나라인가?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에게 왔다. 자기의 아이에게 안수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예수가 여러 사역으로 힘든 상황에서 어린아이까지 귀찮게 하는 게 못마땅했을 거다.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며, 어린아이들과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에 빚진 천국을 누리며 산다. 궁극적으로는 신이 거저 준 세계를 누리며 살고 있다. 즉 내가 율법을 잘 지키고, 열심히 노력해서 천국에 합당해지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거저 주어진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면 된다는 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저 주어진 나라를 확장하지 않는다. 자기의 천국만 중요하고 남의 천국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의 확장을 거부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천국을 확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