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고 싶다
사랑하면 단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어지러운 것은 늘 나의 마음이다. 복잡한 생각 속에 빠져있다 보면 차라리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그리 불편한지 한 참 짜증을 내다가도 어느덧 세상모르고 잠든 어린아이가 부러울 때가 있다. 아이라고 복잡하지 않겠느냐마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티를 내는 그 투명함이 커다랗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투명함을 닮을 수 없다. 아이도 언젠가 투명함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세상은 사람을 투명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기 싫은 사람과도 함께 지내야 할 때가 있고, 나가고 싶지 않은 곳에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속에서 열이 나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그만두고 싶어도 버텨야 할 때도 있다. 나의 마음이 투명하다면 필시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테다.
그러니 처세가 필요하다. 가면을 쓰고 기꺼이 웃을 수 있어야 버텨낼 수 있다. 까짓것 웃어버리고 지나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억지웃음이 티가 나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수련이 필요하겠는가.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새도 없이 치열하게 살다 보면 어지럽혀진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가 어느새 새벽이 온다. 한 번 가면을 쓸 때마다 힘에 겹고, 머릿속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겨우 한 마디를 뱉게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편안하게 잠들 순 없을까?
보기만 해도 미움이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무례함과 옹졸함이 반복될수록 미움의 크기가 자라났다. 어느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괴롭게 되었다. 뻔히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뻔뻔해지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다. 갑의 위치를 그만큼 누리려면 뻔뻔함이 습관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을 향한 미움으로 나의 모든 날이 괴로워져 갈 때 즈음에, 길을 걷던 그를 보았다. 그날따라 그의 어깨가 왜 그렇게 처져 보였었는지 모르겠다. 그를 지나쳐 가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그 사람 앞에서는 진심으로 웃지 않겠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를 향한 나의 마음 중 가장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제법 오랫동안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보았다. 우연히 만난 길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먼저 다가가 반가운 체를 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도 누군가의 환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환대가 왜 나여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문득 찾아온 마음이 꽤 오래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왔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처음 본 얼굴을 보게 되었다. 멋쩍으면서도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표정이 또 오래 간직되었다. 밤 중에 생각하기를 '그냥 나의 착각이었겠지.' 싶기도 했다. 다음에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의 표정에서 반가움을 발견했고, 착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한 번의 사건이 그의 삶의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미움이 조금은 옅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큰 성과였다.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복잡한 생각들이 확연히 줄어들게 된 점은 제법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그는 여전히 무례하고, 뻔뻔한 채로 있었다. 다만 그의 얼굴이 이전만큼 미워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억지로 친절을 베풀지는 않게 됐다.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는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 웬만한 부탁은 기꺼이 들어주는 아량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더 사랑하기 위해 애쓰지는 않는다. 딱 그만큼.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남겨놓았다. 딱 그만큼 단순해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단순하게 사는 삶은 타인을 사랑하는 삶이 아닌가 싶다. 불편한 내색을 다 하고 살 수 없어서 괴로운 것이라면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도 필요할 수 있겠다 싶었다.
복잡한 밤 중에, 딱 그만큼의 사랑을 구하는 기도가 나를 조금 더 단순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