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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31. 2024

눈밭에서

늦게 철 들어서 다행이다

눈이 많이 왔던 중 3 겨울이었다.


중 2 때까지만 해도 핸드폰이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는데 일 년 새 하나 둘 핸드폰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의식이 되진 않았다. 우리 집은 늘 문명에 늦게 접촉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도, 초고속 인터넷도 다른 친구들이 다 구비를 한 후에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남은 학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삼분의 이 이상은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 그러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도 핸드폰이 가지고 싶었던 거다.


"핸드폰 좀 사주세요." 

"핸드폰이 왜 필요하니?" 

"우리 반에서 나 빼고 다 핸드폰 들고 다닌다고요" 

"필요할 때 사줄게." 


핸드폰이 필요한 이유를 찾지 못했으면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때 나는 철이 없었다. 중요한 건 핸드폰을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였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긴바지에 긴 티 하나만 입은 채로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시골의 밤은 깜깜하다. 가로등도 없이 집 창문의 불빛이 전부였기에 멀리 가기엔 무서웠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서 보니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투쟁 중이라고. 나의 의지는 결연하다고. 나는 애꿎은 벤치 의자를 패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고 있으며 마음이 단단히 상했다는 걸 알려야 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아빠의 손에는 두꺼운 파카가 들려있었다. 


"감기 걸려. 이거라도 입고 있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의 굳센 의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 즉시 파카를 외면하고 도망을 쳤다. 아들을 찾는 아빠의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골의 밤은 작은 소리조차 선명했고, 고요함이 추위를 배가시켰다.


제자리 달리기를 했다가, 발차기를 하다가, 주먹을 휘둘렀다. 한 참을 추위와 싸우고 있을 때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무 격하게 몸을 썼더니 현관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민망한 모습을 보일 뻔했다. 나는 재빨리 길을 건너 눈이 쌓여있는 언덕 아래로 몸을 숨겼다. 집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논으로 이어진 언덕으로 경사가 제법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밭 위에 누워야 했었다.


아빠가 결국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드디어 엄마가 나왔다. 


"아들. 핸드폰 사줄 테니까 빨리 들어와라."


결과를 얻고 나니 왠지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눈물이 났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핸드폰 그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한 건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는 엄마의 원칙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사랑하면 늘 논리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듯하다. 나는 약은 아들이었다.


자식을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중 3 정도 되는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는 많이 있었다. 철 없이 생각하고, 철 없이 말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철이 늦게 들어서 다행이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를 조금 더 넉넉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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