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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5. 2024

서울의 아픔

배움이 늦어 안타까울 때

나는 서울에 가고 싶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기도 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왜 그랬을까? 할아버지는 늘 집안에 큰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반도 귀퉁이를 붙잡고 흔들면 휘청일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이야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리지만, 당시에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걸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나에게 화려하고, 웅장하며,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큰 무대와 같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큰물에서 놀다 보면 나도 큰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대감이 어떻게든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주었던 듯하다.


기어코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그 기대가 모두 현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학교 밖을 자주 벗어나지 않았어도, 일주일에 네 번은 술에 취해 있었어도 뭔가 막연히 채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은 차갑게 다가왔다. 막연한 기대는 다시 막연해져 있었고, 오히려 서울이 삭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은 용돈의 한계였을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는 태도의 문제였다.


서울을 사랑하는 듯했지만, 나는 서울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 단지 서울에 있다는 기쁨에 취해있었을 뿐이었다. 한강을 거닐며 한참 동안 야경을 살펴본 적도 없었고, 삼각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지도 않았었다. 구석구석 동네 길로 다녀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름난 곳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나는 왜 그토록 서울을 갈구했음에도 정작 서울을 사랑하지는 못했을까?      


어쩌면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보고 웃는 그녀의 미소에서 환대를 읽어내기보다 오로지 겉모습에만 도취해 있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이 나를 향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고, 그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안도감을 느꼈다.


이후 나의 태도는 서울을 대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기쁨이 있었을 뿐 그녀를 깊이 알려고 들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나는 쉽게 판단하고 결론지었다.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했고, 더 이상 궁금해할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나의 주장을 펼쳐 놓기에 바빴고, 은연중에 그녀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서울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서울이 별것 없다는 듯 굴었던 태도를 그녀에게도 보였다.


나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을 떨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돋보이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다녔던 듯하다. 서울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무시한 채, 그저 서울에 있음이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착각을 했다. 그렇게 서울은 나에게 무시를 당했고, 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받게 되었다.


치기 어린 건방짐이든 오랜 세월 쌓인 교만이든 결국 스스로 돋보이고 싶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었다. 다행히 서울은 나의 건방짐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그러질 못했다. 환심을 사기 위해 앞에서 재롱을 떨다가 별 것 없다는 듯이 그녀를 대했던 나의 오만함은 그녀에겐 너무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녀와 헤어지던 날 그녀가 용기 내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이마저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았을지 모르겠다. 허영에 가득 찬 마음은 나 자신의 삶도 갉아먹겠지만 나를 스쳐 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상처를 내는 악독한 마음이란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배움이 늦어서 여태 무거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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