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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Nov 20. 2022

여행, 언제나 그리운

그곳에 내가 있었음이 꿈만 같아


훌쩍 떠나고 싶어질 때

  우리는 무얼 위해 살까? 참 열심히들 산다. 힘들어도 지쳐도 버티며 산다. 유명한 해외 여행지를 가면 느낀다. 우리나라 사람들 왜 이렇게 많지? 다 거기서 거기 유명한 곳을 가니 이렇게 다 약속이나 한 듯 만나는 걸까? 우린 여행을 갈망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여행이었을까? 여행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까? 열심히 살았으니 여행을 떠나는 걸까? 아무렴 뭐든 상관없다. 우린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줘야 한다. 돈도 시간도 부족한걸?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떠난다. 왜? 왜 그렇게까지 여행에 목을 매? 글쎄. 우린 여행 노래만 들어도, 기차,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해도, ‘출발’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니깐? 지겹도록 같은 일상에 때려치웠어야 했는데 하며 숨이 막혀올 땐, 답답한 이곳 벗어나 자유롭게 숨쉬려고? 이유는 달라도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어질 때 꼭 있다. 그건 똑같다.


여행의 시작 photo by 현꿈


이 그림, 어때?

  이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기차가 보인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떠나고 있는 걸까? 여행지에 막 도착한 기차면 좋겠다. 막 도착한 기차 문이 스르륵 열리면 새로운 이곳 공기 한 번 들이마시고, 기다렸다는 듯 얼른 내려 제일 먼저 땅을 밟고 싶다. 증기 기관차 굴뚝에서는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칙칙폭폭 뿌-뿌-’ 소리와 함께 만들어진 연기와 수증기가 둥실둥실 뭉게구름 같다. 순식간에 피어올라 흩어진다. 언제 나왔는지 모르게 섞여 들어간다. 역 전체를 휘감아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섞였다 이내 사라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진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지 않을까? 요즘 흔히 보는 기차역과는 사뭇 다르다. 옛날 그때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 예스러운 기차역에서 여행의 시작에 막 올라탄 것만 같다. 어느새 꿈과 모험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됐다.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기차의 도착』, 1877


  안개가 자욱한 아침을 보는 것 같다. 빛과 만나서일까 그냥 흰색이 아니다. 증기 기관차가 뿜어내는 색이 다양하다. 대체로 푸른빛이 많이 돌며 회색, 흰색, 살구색, 민트색 등이 섞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기차보다는 공기, 하늘에 더 눈이 간다. 위 천장 유리창으로 옅은 햇살이 비치고 밖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것 같다. 기차가 뿜어내는 연기 뒤편에 가려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건물도 궁금하다. 푸른색 연기에 휩싸여 어렴풋이 보여 더 신비롭다. ‘모네’는 빛에 따른 색의 변화를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니 새벽 아침 빛에 따른 기차역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기차’하면 어딘가로 떠날 것만 같아 ‘기차역’을 보고 있으니 왠지 느낌이 좋다. 여행에 들떠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던 내가 떠오른다. 파리 가르 듀 노르드 역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난다. 유럽 여행의 시작이었던 영국에서 파리로 넘어올 때였다. 파리의 신사분께서 큰 캐리어 2개를 낑낑대며 옮기는 나를 보곤 도와주시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꼭 잡아주셨다. 그때 잠깐 대화를 나눴었는데 참 따뜻했다.

“프랑스는 처음이야?”
“어디에서 왔어?”
“나도 한국 친구가 있어. 한국에 언제 가보고 싶어.”

먼저 내가 도와줘도 되냐고 물으시고는 자기가 여기 이렇게 딱 잡고 있으니까 캐리어가 넘어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그 스윗한 매너에 녹았었다. 꼭 다음에 한국에 오라고 짧은 담소를 나누다 에스컬레이터 끝까지 올라와 발을 뻗어 땅을 밟으려니 두 팔 벌려 “파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하신 게 아직도 생생하다. 잊을 수가 없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의 환영을 받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이런 행운이 있을까? 프랑스 땅을 밟자마자 만난 그분 덕에 프랑스에서의 시간이 너무 기대되었다. 첫 시작부터 좋았다. 뭔가 좋은 일만 있을 것만 같은 설렘이었다.


  프랑스 기차가 도착하고 다시 출발하는 그 짧은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한 모네 덕분에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프랑스 기차역에 막 도착해 따뜻한 환영과 함께 기분 좋은 인연을 만났던 그때, 그곳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여행의 시작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때가 기억난다. 어스름한 새벽 아침, 고대했던 여행지에 막 도착한 기분이다. 시원한 아침 공기가 느껴지는 듯 상쾌하다. 출발해볼까?



이 그림을 보며, 나는

  인상주의 화가 하면 대표적인 화가, 모네다. 클로드 모네는 빛을 쫓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빛은 곧 색채”라며 빛에 집착했다. 온종일 관찰하곤 빛이 변함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같은 곳도 빛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빛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왜 하필 파리의 생 라자르 역(Gare Saint Lazare)이었을까? 파리의 생 라자르 역은 어떤 곳일까? <생 라자르 역> 연작이 모두 12점이나 있었다. 슬슬 이곳이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찾아보니 프랑스 기차역 7개 중 두세 번째로 번화한 기차역이라고 한다.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 생 라자르 역은 교외와 파리를 잇는 기차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산업혁명으로 프랑스 철도가 활발하게 건설되던 때, 도시 사람들이 떠났던 가까운 바다 노르망디로 출발하는 기차역이 생 라자르 역이었다고 한다. 이걸 알고 보니 정말 휴일을 즐기러 떠나는 기차 같다.


Claude Monet, 프랑스, 1840. 11. 14. ~ 1926. 12. 5.


  산업화의 상징인 증기 기관차의 증기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역 정경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유리 지붕을 통과한 빛과 기차가 뿜어내는 증기가 한데 어우러져 나타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을 보아도 사람이 주가 아니다.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증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왜 모네가 증기 기관차에 매료되었는지 알겠다. 증기를 내뿜으며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좋다. 해리포터의 런던 킹스크로스 역이 떠오른다. 이 기차를 타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것 같다. 유럽 여행 중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여기가 바로 그 해리포터 역이라며 신나서는 사진을 찍었었는데 증기기관차는 그 모습도 소리도 신비롭다. 나도 기차역에 앉아 기차가 오고 가며 만들어지는 풍경을 보고 싶다. 기차역을 오고 가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은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들이 궁금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은 어디론가 분주히 떠나는 기차역의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1877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노르망디 기차의 도착』, 1877


  여행을 떠날 때, 돌아올 때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이 그림에서는 기차가 여행의 시작이자 마지막 아니었을까? 영국에서 파리로 넘어갈 때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 북역 가르 듀 노르드 역(Gare du Nord)에 내렸었는데 생 라자르 역은 가보지 못해 아쉽다.


  유럽 여행 중 미술관과 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다. 파리하면 미술관이다. 3대 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워낙에 유명한 모네라 모네 작품을 가장 기대했었다. 모네는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자연을 묘사한 화가라 사물보단 자연을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모네의 그림이 좋았다. 미술책에서만 보던 유명한 그림을 두 눈으로 보며 역시 직접 보는 건 다르구나 싶었다. 모네의 그림은 참 부드럽게 느껴졌다. <생 라자르 역>도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다시 앨범을 열어 그때 사진을 보니 내가 파리에 있었구나. 정말 오르세 미술관에 있었구나. 새삼 신기하다. 참 행복했던 그때의 기분, 내 마음만 기억나고 어디를 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옅어지고 있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다시 떠올라 감회가 남다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시계탑에서 photo by 현꿈

  

내 기억 속, 그때 그 여행

  혼자 떠나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한 유럽 8개국 여행기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에서의 한 달간의 여정이었다. 대학 생활 마지막을 새로운 추억으로 장식하고 싶어 계획했었다. 지금까지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여행을 고민하다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은데 첫 유럽 여행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모르는 사람과 여행 메이트가 되어 각자 다니다 같이도 다니는 건 어떨까? 다양한 후기들을 찾아보고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발품을 팔아 결국 선택했다. 사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렘을 좋아한다. 같은 학교, 지역도 아니고 같은 분야도 아닌 사람들, 정말 생판 모르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 궁금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 신기하고 나와 다를 테니 더 재밌지 않을까? 어쩌면 달라서 더 잘 맞는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맞지 않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이겠다 생각했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떠났지만 처음 보는 사람, 나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달라서 더 좋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친구가 좋다. 현지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다. 친한 친구와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다시 봐도 기분 좋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혼자일 때는 자유로워 좋고, 함께일 때는 든든해 좋았다.


영국 세븐 시스터즈에서 photo by 현꿈


  나라별로 유명한 곳은 다 가보았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었던 근교 여행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국 브라이튼, 세븐 시스터즈에 갔었다. 자연 절경인 하얀 절벽을 배경으로 다가왔다 멀어지는 파도를 보며 바다멍을 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에트르타, 옹플뢰르, 몽생미셸에 갔었다. 몽생미셸은 바다로 둘러싸인 바위섬이 디즈니 영화 같았다. 전날 디즈니랜드에서 봤던 것보다 더 동화 같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갑자기 비바람이 매서워지며 날이 급격히 안 좋아져 꼼짝없이 갇힐 뻔했는데 겨우 버스를 타고 빠져나왔다. 모두 비바람 쫄딱 맞으며 날아갈까 꼭 잡고 함께 살아 돌아왔다고 환호했었다.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나. 옹플뢰르의 알록달록한 건물과 항구의 배들이 예뻐 그냥 찍어도 예뻤었는데 이때 지베르니에 갔었다면 모네의 집과 예쁜 정원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영국에서 photo by 현꿈
프랑스에서 photo by 현꿈

 

  모네의 <생 라자르 역> 작품을 보고 있으니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로 가는 기차를 탔었던 것이 기억난다. 눈앞에 보이는 게 다 하얀색이었다. 정말 깨끗한 새하얀 눈 세상, 겨울왕국에 와있는 것 같았다. 푹신한 하얀 눈밭에 누워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도 새하얗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내리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도 좋았고 눈을 밟으면 나는 뽀드득 소리, 몸에 내려와 닿는 눈의 차가움도 좋았다. 융프라우에서 눈썰매를 타다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었다. 다시 빠져나오는 길은 못 찾고 너무 가파른 길이라 썰매에서 두 발 내밀어 천천히 기어갔는데도 빨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동행친구는 썰매를 놓쳐 절벽으로 떨어뜨리고 난리였다. 결국 힘들게 걸어 내려오다 노부부 은인을 만나 직접 썰매도 찾아주시고 말동무도 하며 같이 내려왔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다음 날 기차역에서 찰나의 순간 우연히 마주쳐 서로 알아보고 정말 반갑고 인연이란 이런 걸까 싶었다. 많은 사람들 중 지나치지 않고 눈에 들어와 어제의 감사 인사를 또 한 번 전할 수 있어 좋았다.


스위스에서 photo by 현꿈


  독일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의 정원 풍경은 꿈만 같았고 체코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는 동화 마을 같았다. 체코 프라하 카를교에서 보는 야경,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하우스 야경,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도 참 예뻤다. 이탈리아 베니스, 피렌체, 로마 야경 투어, 바티칸 투어 모두 좋았지만, 남부 투어로 폼페이, 소렌토, 포지타노에 갔던 게 가장 좋았다. 포지타노의 높이 솟은 언덕에 옹기종기 모인 알록달록한 마을도 참 예뻤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잊을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색이었다. 파란색도 푸른색도 아닌 정말 신기한 색이었다.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겨울인데도 햇살이 참 따사로웠다. 눈이 부셔도 가만 앉아 바다와 마을을 한참 바라봤었다. 마지막 여행지여서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모든 유럽 여행 통틀어 이탈리아 남부 투어가 가장 좋았다. 아직도 내 휴대폰 잠금 화면 사진이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photo by 현꿈
체코,  헝가리에서 photo by 현꿈
이탈리아에서 photo by 현꿈


  역시 나는 자연이 좋다. 아직도 유럽 여행을 떠올리면 누구나 아는 명소에 갔던 것보다 근교 여행의 바다, 해변, 호수, 공원, 숲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갔던 때가 좋았다. 혼자 공원길을 걷고 싶어 샌드위치와 음료수 사서 공원 의자에 앉아 바람도 느끼고 여유롭게 사람들 구경도 하고 많이 걸었었다. 저 높은 하늘에 닿을 듯 길쭉한 나무들 사이로 내려오는 따스한 햇볕 쬐며 새 지저귐도 듣고 호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우아하게 떠다니는 백조와 오리를 찬찬히 보았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이국적인 풍경을 두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여유롭게 보고 느끼고 즐기며 이곳만의 분위기와 차오르는 감성을 기억하려 애썼다. 내가 진짜 유럽에 와있구나 물씬 느끼며 여행 기분을 제대로 만끽했다. 시간이 더 많다면 일정에 허덕이지 않고 한곳에 오래 머물러 여유롭게 길을 거닐고 여기 사람들처럼 한달살이도 해보고 싶었다.


이탈리아 소렌토, 포지타노에서 photo by 현꿈


여행의 끝, 나는

  어떤 여행이든 여행이 안 좋을 리 있겠냐마는 이때 유럽 여행은 좋았던 기억만 몽실몽실 떠오른다. 나에겐 참 소중했던 여행이다. 참 무모하고 겁 없었다. 정신없이 참 다사다난한 여행이었다. 딱 코로나가 터질 때쯤에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코로나가 국내에도 시작되면서 불안한 마음에 여행을 취소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항공, 숙소, 차량은 이미 오래전에 예약되어 취소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되면서 항공사, 여행사, 숙소에서 환불 및 취소를 해줬다고 하지만 이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며 어렵게 모은 그 큰돈을 한 번에 다 날릴 수는 없었고 다들 아무 문제없다며 속행했다.


  “그래,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고 비행기 안에서도 그 답답한 마스크에 의지하며 13시간 정도를 날아갔다. 불안한 마음에 어디든 마스크를 쓰고 다닐 작정이었지만 영국에 도착하니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마스크를 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에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썼다면 여기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아픈 사람처럼 여겼다. 그래서 마스크 없이 내내 다니다 여행의 막바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이탈리아에서 코로나가 급격히 떠오르며 다시 마스크를 썼고 코로나의 위험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바로 다음 날 이탈리아가 국경을 봉쇄했다는 뉴스가 떴다. 갑자기 확진자,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더니 이탈리아가 코로나 치명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랐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추억들로 장식해줘 가장 행복했었던 곳이 이렇게 코로나로 큰 아픔을 맞이한 게 가슴 아팠다. 한편으론 하마터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며 마음을 쓸어내렸다. 만약 외국에서 코로나에 걸린다면 병원 치료는 어떻게 하며 외국에서 격리당하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 긴 유럽 여행 동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와 나쁜 기억 하나 없는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아직 코로나 여파로 유럽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을 때 유럽 여행을 다녀와 대학 생활을 이 추억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을 보고 이 글을 쓰며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여행을 떠난 그때 나는 가장 나다웠다. 호기심 가득 모험심 넘쳐 낯섦에 성큼 다가갔고 두려워하지 않고 즐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처음, 새로운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힘도 체력도 남아났다. 가장 생기 있었다.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체중이 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걸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 걸었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돌아와 살아낸 일상에서는 그렇게 자주 아팠는데도 말이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내가 동화 속에 있나? 영화 속에 들어왔나? 싶은 순간이 참 많았다. 여행하는 동안은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온 주인공 같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이곳저곳 다니며 모든 게 신기했고 놀라웠다. 힘들어 지칠 때면 또 휴양지를 찾아 떠나야겠다. 여행은 마법 같다.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시종일관 즐겁고 재밌다 느끼게 만드는 마법이다. 그렇게 들뜨고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마법에서 풀린다. 내가 그곳에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정말 한여름 밤의 꿈같아서.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내가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듯 사진에서 나는 활짝 웃고 있다. 다시 또 훌쩍 떠나고 싶다.

여행을 앞둔 두근거림, 여행의 출발선에 선 그 설렘과 기대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

여행은 찰나의 순간도 영원으로 만드니.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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