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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May 07. 2024

20대, 신용불량자가 되다.

우울증 8년차의 회생일지


3시에 마치는 파트타임 알바를 끝내면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1시간 가량 침대에 누워 뒹굴거린다. 5시반이 되면 준비물을 챙긴다. 물, 휴대폰 2개, 블루투스, 담배, 오토바이 키. 그리고 배달을 한다.

분명 비가 안온다고 했는데, 나갔더니 비가 오고 있어 들어와 브런치를 켠다. 포트폴리오도, 이력서도.. 해야할 게 산더미지만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크다.


벌써 해고를 당한지 한달이 됐고, 알바를 시작한지 3주차가 되어간다. 아무것도 안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만 써서 이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알바 + 배달을 겸하며 돈을 버는 이유는 한가지다.


개인 회생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초등학생


가난하진 않았지만, 부자도 아니었다.


내 한 주 용돈은 일주일에 2천원이었고, 2천원과 세벳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그 해에 7단으로 기어를 변경할 수 있는 자전거를 처음 내 돈으로 샀다.

13만원이나 한다니.. 내 가장 큰 첫 지출이었다.

매주 용돈을 받아도 만원이 안되었지만 그 땐 제법 큰 돈이었다. 불량 식품이 100원이었고, 과자가 500원이었으니. 나는 내 11년, 아니 만으로 9살까지 9년간 모아온 모든 돈을 자전거 한 대에 썼다.


우리 엄마는 그 해에 경제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식탁에 앉혀놓고 나에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집에 빚이 1억 8천만원이 있다고. 나는 1억이라는 단위는 학교 수학시간에 들어보기만 했다.

13만원에 벌벌 떠는 나는 1억이라는 숫자가 가늠도 되지 않았다. 1억 8천만원이라는 빚이 있고, 아빠 월급은 얼마고, 거기서 생활비 얼마를 쓰고 나면 빚을 갚는데 다 들어간다고 하더니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우리집은 가난하구나.

가난한 엄마가 우니까 슬퍼서 가난한 집의 첫째 딸인 나는 함께 울었고, 꼭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3살이 되어 휴대폰을 샀다. 시에서 주는 글쓰기 상에서 금상을 받은 덕에. 휴대폰 가게에 가서 고르는데 내가 갖고 싶거나 친구들이 쓰는 폰은 다 너무 비쌌다.

엄마가 다음번엔 꼭 갖고 싶은 거 사줄테니 공짜폰을 우선 쓰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내가 돈을 벌어 폰을 사기 직전, 그러니까 부모님이 바꿔주는 폰은 다 공짜폰이었다.



중학생


중학교 무렵 한창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유행했다. 당시에도 꽤나 비싼 가격인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나는 사달라고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가난하니까.

엄마한테 나는 괜찮으니까 2만원짜리 짝퉁을 사달라고 했다. 그거 얇은데 비싸기만 하다고. 어차피 그거 메이커 로고만 있으면 다 똑같다고.

비가 오는 날 뛰다가 건물에 비를 피하고 분식집에 들어가 주변 친구들 옷을 보고 알았다.

나는 교복이 다 젖었지만, 친구들은 바람막이에 빗물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방수였구나.

나는 그 날 춥다며 겉옷을 벗지 않고 떡볶이를 먹었다.


빅뱅이 유행했을 때 하이탑이 유행이었다. 생일 선물로 하이탑을 받았는데, 눈이 와 바닥이 너무 더러웠다.

눈이 오다가 또 질퍽해지고, 새하얀 내 하이탑이 더러워질까봐 3주를 신지 못했다.

새 하이탑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그 3주를 내 머리맡에 두고 자기전에 보고, 일어나서 보고.. 그렇게 보냈다.



고등학생


체대입시를 하게 되고, 학원을 다녀야 했지만 다니지 않았.. 못했다.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체대입시를 하게 되었는데 담당 체육 선생님이 뛸 때 필요하니까 운동화를 하나 사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말하고, 카드를 받아 나이키에 갔다.

119,000원. 주황색에 예쁘지도 않은 신발이 뭐가 이리 비싸?

대학은 가야 하니까 엄마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배구화를 샀어야 했지만 난 몰랐고, 결국 그 신발은 계속 신고 다녔다.

이 신발은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가 사준 가장 비싼 신발이니까.


체대입시 학원을 결국 다니게 되었고, 다들 휘황찬란한 스포츠 브랜드 옷들을 입고 다녔다.

배구화도 몇 달만에 어떻게 그렇게 새 신들을 사오는지 신기했고, 신상이라며 옷도 항상 바뀌었다.

나는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사달라고 할 수 없었고, 배구화는 길들여야 해서 힘들다며 그 배구화를 대학때까지 신고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애인이 생겼고 나는 한 달에 20만원의 용돈을 받은 그저 그런 이과생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모범생에 가까웠던 거 같다. 물론 실상은 아니었지만? 애인은 나보다 4살이 많았고, 대학을 가진 않았지만 프랜차이즈 커피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돈이 없었고,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애인이 부담했다. 20살이 되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꼭 데이트 비용 내가 다 낼게!" 라는 호기로운 10대의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20살은 마법같은 단어였다. 뭐든 다 될 것 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렸다 싶지만. 그래도 기념일이 되면 용돈을 아끼려 자정에 과외가 마치면 한겨울에 공공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무언가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20대


18살에 만난 사람과 3년을 만나고 21살.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찾아온 그 날, 애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가 20살 되면 데이트 비용 다 낸다며. 나 힘들어 내 나이 또래(당시 애인은 24살) 친구들은 다 레스토랑 가서 고기 썰고 한다는데 나는 어린 너 만나서 아직까지 떡볶이 먹으러 다니고 알바해야 돼고. 나 진짜 스트레스 받아. 우리 그만하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을, 18살짜리가 뱉었던 그 호기로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품고 있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20살 여름방학부터 알바를 하고 있었고, 그 돈으로 내 등록금을 부담해야 했다. 1학년 1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 돈으로 등록금을 충당했다.(이것도 엄마에게 내가 20살되면 벌고 싶은 만큼 벌어서 쓰겠다고 했기에 그 말을 책임지느라..) 그 사정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내가 돈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헤어지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바람핀 것도 있었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쓰리잡을 시작했다.

평일 오전 7시 ~ 오후 2시까지 편의점 오픈

평일 오후 3시 ~ 11시까지 카페 마감

주말 오전 8시 ~ 오후 2시까지 편의점 오픈


혹시 내가 돈이 생기고 많아지고 비용을 다 내면 그 사람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악몽에 시달려 잠들지 못하는 밤에 지쳐 쓰러져 잠들길 바랐기에.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메이커 옷을 사들였다.

데상트라는 비싼 스포츠 브랜드는 티 한장에도 5만원이 넘었고, 겉옷은 20만원을 훌쩍 넘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저 내가 벌어 내가 쓸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었다.


버는 돈은 정해져있지만 쓰는 돈이 많으니 당연히 통장잔고가 비었고, 나는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

엄마에게 1억 8천이라는 돈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절대 대출이라는 걸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학자금 대출도 받기 싫어 대학을 휴학하며 등록금까지 벌었지만 갖고 싶은 게 눈 앞에 있고 더 이상 터치를 받지 않으니 나를 걷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사치에 빠지고, 그 상황에서도 우울증은 걷잡을 수 없었다. 집이 답답하니 자취를 시작하고, 금리 19.9%에 대출을 받아 차도 샀다. 흥청망청. 딱 4글자로 표현이 됐다.


중간에 생과 사를 오가는 선택을 하자, 엄마와 아빠가 앉히더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사정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여러곳에 나누어져 있던 금액들을 갚아주었다.

또 짐이 생겼다. 나는 이 돈을 가난한 우리집에 갚아야 한다.


하지만 사치가 그 한 순간에 잡힐리 없었다. 우울증도 잡히지 않았다. 또 은행 빚이 사라지니 대출을 미친듯이 받고, 차도 바꿨다. 정신없이 돈을 쓰고 우울증이 조금씩 나아갈 무렵 내 미래를 보니 현실이 보였다.


부모님게 빌린 돈이 3000에 은행 빚이 8000이 넘었다.

1억 2천.


내 나이가 만으로 2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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