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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30. 2023

갈망이 만들어낸 허상을 지키기 위한 불안

갈망은 좋은데 실현은 위험한가? 짝사랑은 짝사랑일 때 아름다운가?

너: 딸이 요즘 부러움, 동경, 시기, 질투 이런 감정들을 알아가는 거 같아. 음, 그걸 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아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점점 엄마인 나의 의견보다 친구들이 영향을 주더라고.


나: 오 그래, 아이들의 사회화란 참 흥미로워.


너: 아무리 다양한 관점을 심어주려 노력해도 얘는 (집에서는 본 적도 없었던) 핑키핑키 시크릿쥬쥬에 꽂히고 말아. 시크릿쥬쥬에 꽂히는 건지, 그걸 가지고 노는 친구들에 꽂히는 건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 자체에 꽂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물론 복합적이겠지. 언젠가 나의 씨앗도 자라날 거라 믿으며 집에서는 내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나: 부러워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아직은 일방이 아닐 텐데 어느 순간 고착되잖아, 누군가는 조금 더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고 누군가는 조금 더 부러움을 받는 입장이 되고..


너: 조만간 내 아이가 부러워하는 입장에 서서 상대는 마구 크게 자기는 무자비하게 작게 만들며 스스로 공격할 생각을 하니 속상하다. 물론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겠지. 잘 거치길..


가끔 친구들이 ‘너를 부러워했다’ 고 얘기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기억이 안 나. 누군가가 나를 부러워했다면 분명 나도 어느 정도 알았을 텐데 말이야. 그 친구들은 그 부러웠던 기억이 아직 남은 거 보면 부러움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게 더 강렬한 감정인가 봐.


나: 네 말대로 진짜 상대가 어떻든 간에 상대를 크다고 상상하는 대상들이 있는 거잖아? 그 상대가 되는 아이는.. 우쭐한 기분이 머물다가 그 포지션을 지키기 위한 불안함이 싹틀 것 같아. 그래서 너도 기억을 없앴나?


너: 그런가. 학창 시절에 그런 부분에 감정을 크게 쓰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해. 그렇지만 매우 자극적인 감정인 건 확실한 듯. 아니, 그러면 부러워하고 부러움 받는 상황에서 누가 행복한 거야?


나: 파리신드롬.. 그건 좀 다른가? 파리를 가기 전까지 파리를 꿈꾸는 게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다가 직접 갔을 때 자기 기대에 못 미쳐서 우울해진다며. 아무래도 갈망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허상이 많으니까.


너: 갈망은 하는 게 좋고, 실현은 위험하고? 짝사랑은 짝사랑일 때 아름다운가 정말? 허상과 현실 사이에 격차가 클 땐 진짜로 그럴 수 있겠어. 언제 격차가 큰 지 알 수야 없지만.. 갈망에 투입할 게 많을 때 격차가 큰가? 비용이든 감정이든..


나: 진짜 집순이인 나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어디 살고 있는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 몇 번 더 신으면 저 양말 구멍 나겠는데, 화요일은 슈퍼마켓 할인하는 날이니 장 볼까, 오늘은 하얀 빨래 돌리는 날이다, 점심은 뭐 먹지.. 이런 생각하면서 살아, 내가 어디에서 살았어도 똑같았겠지.


너: 그래, 다 비슷하지 뭐.


나: 엄마는.. 내가 ‘여행지’에 사는 게 재밌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내가 다른 곳에 살았으면 별로 하지 않으실 것들을 많이 하시거든. ‘우리 딸’ 집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다,는 코멘트를 반드시 붙이면서 사진을 여기저기 공유하신다던지 뭐 그런.


너: ㅎㅎㅎ 그렇지, 야 자랑해야지 그럼.


나: 근데 그게 너무 반복되니까 내 맘이 불편해.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 하는 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 나는 그냥 여기서 삶을 사는 것뿐인데 그게 자랑거리가 되는 게 암튼 이상해. 그러니까 내가 어떤 상징이 되는 것 같아. 사실 그 배우는 숨이 차고 신발이 불편하고 옷이 덥고 동료들과 갈등이 있고 그런 뻔한 크고 작은 고민이 있을 텐데 겉으로는 웃어야 하잖아, 엄마가 나를 자랑하면 내가 자랑거리로서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서 웃어야 할 것 같거든. 게다가.. 내 자랑도 아니고 내가 사는 곳 자랑이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 워워, 그냥 사진 보고 멋지다 그러고 말겠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나: 알면서도 내 맘이 그러더라. 굳이 엄마한테 너무 자랑하지는 말아 달라(^^;)는 어이없는 부탁까지 몇 번 했다니까. 하지만 그런 메시지 하나 보내고 답 받는 게 엄마의 즐거움이라 내가 어쩔 수는 없어.


너: 네가 거기 살고 그게 상징이 된다고 한 들, 가이드도 아니고 프로그램 진행자도 아닌데 뭐 어때. 그곳에 살고 있는 너라는 허상을 네가 키우고 있는 거 아니냐.


나: 그래.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불편한 건 안 하고 그러면 되지 머. 엄마는 여행으로 오셨던 거고. 아마 나는, 뻔한 일상 속 나의 공간에 가족들이 특별한 시간을 보내러 온 게 영 어색했나.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는 남편의 여행을 담당해야 해서 그것도 보통일이 아냐.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지 뭐 싶다가도.. 그러려고 여행을 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다시 의무감이 생겨. 근데 그런 건 다 괜찮아, 그저 자랑거리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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