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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24. 2024

자기 고민은 나누지 않는 상담맛집

상황은 알아도 마음은 모른다?

학창 시 친구들은 제게 속 깊은 얘기를 자주 털어놓곤 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대화 중 맥락에 맞는 리액션을 잘하지도 않고, 이상적인 말이나 교과서적인 뻔한 말을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어떻게 고민 상담 맛집으로 선정되었을까요? '무심하다'는 핀잔을 듣는 걸 보면, 아마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저의 성향이 친구들에게는 말할 공간이 된 것 같아요. 말은 하면 할수록 다음 말이 생겨나잖아요? 친구들의 얘기는 여기저기로 튀었지만 울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고, 저는  말들을 끊지 않았고, 잘 기억하지 못했고(!), 소문내지 않았어요.


그런 저는 막상 고민을 잘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지 말아야지, 이 말을 해도 되나 이런 게 아니라 뭘 얘기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걸 보면 원래 그런 성격인가 봅니다. 친구들이 고민을 얘기할 때 제 고민을 얹어서 전하곤 하는데, 제가 먼저 화두를 꺼내는 건 확실히 지금도 잘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의 얘기는 잘 듣지만 내 고민을 먼저 나누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고 그 역할이 그럭저럭 작동하는 줄 알았는데요-


며칠 전 대화 중, (이제는 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어떤 결정을 했던 순간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 순간들이 저도 기억납니다. 그때도 그 친구들과 아주 가까웠고, 대부분의 진행 상황에 대해 듣고 있었거든요. 그때의 마음들을 구체적으로 들으니 좀 이상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과 후에 친구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상황은 알지만 마음은 모른다, 이상한 거 맞죠? 제가 친구들에게 전혀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 저는 '왜'라는 질문을 조심하는 것 같아요. 많은 일들이 언제나 논리적-이성적-구체적인 이유를 기반으로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왜'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의 선택에 대해 상대를 설득하는 상황이 불편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라는 질문이 적절하고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을 텐데, 저의 '왜'가 상대에게도 괜찮은 '왜'인지 확신이 없어요. 그리고 '왜' 말고 다른 질문을 할 정도의 센스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 저는 질문하지 않는 게 친구가 내린 결정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었나 봐요. 얘기해 주면 듣지만, 얘기하지 않으면 듣지 않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고민이 상대의 것이니 적극적인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에 대해 말할 상황을 만드는 것 역시 친구의 역할이 아닐까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물론 말하지 않을 자유를 온전히 상대에게 준 상태로요. 친구들이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그 마음을 말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 이유가 제게 있는지 그들에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생각만 하는 건 맴돌게 마련입니다. 똑같은 생각에 갇히고 비슷한 감정이 반복해서 일어나요. 그러다가 '답답하니 더 생각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하죠. 말, 글이라는 다른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면 뒤편에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친구라면 그 미디어를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혼잣말을 하고 일기를 쓰는 것과는 또 다르게, 그걸 듣고 읽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다른 콘텐츠와 표현들을 불러내니까요. 표현의 한계로 온전히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나는 압니다. 


고민을 나누는 가장 큰 이유는 해결과 해소일 거예요. 마음이 무거워질 때, 그것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들 하고요. 고민을 말로 잘 나누지 않는 제 성향은 아마도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주저리주저리 여기에 뭔가를 글로 남길 거예요. 그리고 이대로는 상담맛집 명성을 잃게 생겼으니 그것도 좀 개선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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