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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18. 2024

현재, 여기를 벗어나려면

우선 내가 현재, 여기에 있어야

사차원의 네 번째 차원은 시간이라고들 합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간이라는 차원을 이해할 수 없다죠. 아니지, 시간이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거겠어요. 현재라는 고정값에 갇혀서 다른 시간을 볼 수 없고, 안 보이니 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4차원 세계에서는 시간의 다른 값인 미래도 이미 존재하지만 3차원 존재인 우리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일 뿐이며, 또 다른 시간 값인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다른 값을 가진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게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 같아요.


* 우리는 가보지 않은 곳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진 않으니, 얼추 공간은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추가하면 또 어려워져요. 어제의 그곳이 존재한다, 좀 이상하죠. 어제의 그곳이 있었다(지금은 없다), 가 그나마 들어줄만합니다. 여전히 이상하지만요.


'지금', '현재' 이게 다 무슨 말일까요? 고정된 현재를 산다는 말이 낯섭니다. ‘현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어요. 지금 제 몸은 앉아서 글을 쓰고 있고 제 머리는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몸이 현재에 있는 건 맞을 텐데 맘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주 언급하듯 저는 머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판타지 상상도 아니고 지난날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거나 곱씹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언가가 너저분하게 정적으로 가득 로드되어 있어요. 서로 다른 과거 시점의 어떤 것들이 마치 책을 읽다 만 듯, 혹은 읽으려다 만 듯 애매하게 펴진 모습입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들이 끊긴 채로, 가족과 친구들, 강아지가 딱히 새로운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 채로 있습니다. 큰 움직임이 없는 동사이고 강한 감정 없는 부사이자 형용사인데 명사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와도 제 생각의 방이 너저분한 정도나 아이템이 크게 변하지는 않아서, 현재는 과거를 대체하지 않아요. 그때 싫어했던 음식은 지금도 (싫어할 거라 확신하며) 배제하고, 그 시절의 기억으로 지금의 친구를 대합니다. 이렇게 내 생각은 온통 그 시절 그 공간에 있고 제 몸은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미래의 위험을 줄이는 의사결정을 합니다, 그게 현명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미래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이번까지만 하고 조만간 일을 줄여야지, 이제 슬슬 그만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전환해야지 등등 자주 생각했고 입 밖으로 냈습니다. 예상보다 오래 일을 했고 실제로 일이 줄어드는 상황이 됐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스럽습니다. 분명 속상하거나 그런 부정적 감정은 아니에요, 수입을 보완할 준비가 아직 안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렇다면 그때 생각한 '조만간'은 뭐, 언제를 생각한 걸까요. 그냥 의미 없이 뱉은 말일까요. 의미 없이 뱉었다면 제가 의미를 부여한 미래는 뭘까요. 지금의 내가 현재보다 더 우선시하며 준비하는 미래가 진짜 다가올 미래 혹은 내가 진짜 오길 바라는 미래가 맞긴 할까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현재를 내어주고 있는 걸까요.


암튼 현재를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고, 여기에 있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집에서 거의 비슷한 자세로 보내는데, 제 의지로 집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단 한 번도 들지 않고 별일을 하지 않아도 너무 시간이 잘 갑니다. '혼자 여기'에 있다는 감각을 하지 못해서 인 것 같아요. 그동안 '왜', '무엇을', '어떻게'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누가', '언제', '어디서'는 빈칸만 채워 넣으면 되는 항목 정도로 치부했어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게 대체 뭘까요.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감각하는 너는 너일까요 나의 과거일까요. 쓰다 보니 시간과 공간 모두에 대한 감각이 어렵습니다.


저를 압도하는 생각들을 잠시 외면할 수 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제겐 학창 시절 동아리실이 그랬습니다. 여전히 학교라는 공간이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학교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동아리실에 있을 때에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혹은 흐르지 않는 기분이었고 제 머릿속에 로드되는 방이 분명 바뀌었어요.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색다른 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동아리실을 간다고 해도, 지금 동아리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겠죠.

여행은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공간이어도 저에게 다른 감각을 주지 않았고, 노래방에 가거나 춤추러 가면 로드된 생각의 한편이 약간 흐릿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 일을 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 분들 계시죠? 그게 심신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 일상의 그 공간을 일하는 곳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공간 이동을 하지 않아도 공간의 용도 변경을 할 수 있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집중하는 그 자체로 공간의 모드가 전환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상의 시공간 감각을 전환해 주면, 현재-여기-나를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영화에 푹 빠지는 것, 아름다움, 공포 등 강력한 (그러나 위협적이지 않은) 감정에 압도되는 것, 새로운 공간감을 안겨주는 음악을 듣는 것, 가보지 않은 길에서 일부러 헤매는 것, 어떤 일에 집중하는 것 등이 생각납니다. 누군가에게는 게임일 수도, 쇼핑일 수도 있겠죠. 내가 주로 감각하는 시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잡아당겨지는 경험,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경험까지. 이 경험은 단순히 감각을 자극하는 것 혹은 현재를 회피하거나 과거를 반추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거예요.


실제로 과학과 엔터 산업에서는 VR이나 4D 등의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을 타임머신에 버금간다고 해석하기도 하더라고요. 나에게 새로운 공감각을 가져다 주니 뭔가 있긴 합니다. 가상의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 있다는 감각이 분명 선행되어야 할 거예요. 가상과 현실을 ‘왜’ 구분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요.


과거나 미래에 종속되지 않은 현재가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과거로 '인한' 현재, 미래를 '위한' 현재 말고 조금 더 독립적인 현재를 감각하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현재에 머물라'는 명상인 거겠죠. 진짜 현재를 알게 되면 잊지 않고 글로 남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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